영어를 제일 싫어했는데

지금이 좋아

by 별의자리

도토리를 가지고 배경음악을 고르던 싸이월드 시절 백문백답이 유행했다. 백개의 질문들에 대해 자신의 답을 채워 나가는 건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 시절의 X세대들은 같은 질문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걸 좋아했다. 물론 개성이란 게 지나고 보니 다 비슷한 걸 쫓아가는 식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백문백답 질문 중 내게 싫어하는 과목을 묻는 질문을 만나면 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바로 영. 어. 참고로 좋아하는 과목은 기분에 따라 맨날 바뀌었다.



학창 시절 영어가 참 싫었다. 일상생활 사는데 영 쓸모도 없는데 맨날 끝없이 단어를 외워야 했다. 그게 참 의미없는 것 같고 지루했다. 21살 첫 해외여행을 가기 전에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영어로 의미 있는 문장을 말해본 건 영어학원에서 만난 원어민 선생님들과의 짧은 대화가 다 였다. 아... 한번 더 있긴 하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무악재 역사 안에서 내게 "하이 하왈유?"로 말을 걸던 덩치 무지 큰 흑인 아저씨가 있었다. 엉겁결에 나는 "파파파... 뽜인"이라고 대답했는데 자기 친구와 내 친구와 함께 놀자고 했다. 난 순간 놀라서 '노노'만 외친 후 뒤돌아 엉엉 울었다. 친절히 말만 걸었을 뿐인데 그땐 내가 너무 어렸다. 이미 내 키가 169cm이었기에 그 아저씨는 어이가 없었을 거다. 덕분에 '하왈유'의 쓰임을 정확히 익혔다.



어쨌든 저건 특별한 일인 거고 거의 7년을 영어의 쓸모를 느끼지 못한 채 단어를 외우고 퍼즐 조합하듯 문장들을 해석했다. 거기에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당연히 대학을 가고 영어와 담을 쌓았다.

'아싸!!!! 이제 영어문장 독해 안 해도 된다. 단어 안 외워도 된다. '

대학생이 되었다는 건 내게 더 이상 수능 입시를 위한 의미 없는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그런 해방 같은 거였다.



그러다 필리핀으로 21살에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친구가 필리핀 마닐라의 고아원에서 1년간 봉사활동을 해서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비행기 티켓을 사는 바람에 마닐라를 가기 위해 직항을 타면 4시간이 걸리는 곳이 2번 경유를 해 14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격도 64만 원.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가격과 비행시간이지만 그땐 뭘 몰랐다. 원래 다 그런 건 줄 알았다. 처음은 누구나 잘 모르고 서툰 거니까. 그래도 해외여행이기에 정말 설렜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안 되는 영어로 미친 듯이 말을 걸었다. 서툰 영어로 말을 거는 내가 귀찮았을 텐데 사람들은 대화를 다 받아줬다. 웃는 얼굴로 나만큼이나 얘기하는 걸 좋아하던 교수 할머니, 대방동에 사신다는 인도 돌고래 학자, 삼성 다니시던 인도분... 십 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다들 지금 잘살고 계시길.



친구를 마닐라 공항에서 만난 후엔 친구가 영어를 잘해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래서 친구 뒤에서 밝은 미소를 담당했다. 하지만 여행을 갔다 오고 나니 영어를 제대로 해서 직접 다양한 사람들이랑 의사소통을 하고 싶단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친구가 머무르던 곳에서 만난 꼬마 숙녀 한 명이 내게 영어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바로 'Marilyn' 매번 영어 수업 때마다 보던 흔한 이름이 아니었기에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매릴린이 되어 영어 모임을 전전했다. 공부가 아닌 소통을 하고 싶었기에 많은 영어능력 신장 방법 중 모임을 선택했다. 그게 영어 모임 역사(?)의 시작이었다.



대학교, 학원, 취미 모임 등에서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늘 당연한 듯 서로의 나이를 묻고 언니, 오빠 등 호칭을 정하고 존댓말을 하며 암묵적 서열을 가리곤 했다. 하지만, 영어 말하기 모임에선 나이를 물어도 존댓말을 하거나 호칭을 부르지 않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니 자연스레 나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교환하다 보니 다른 것보다 그들의 생각이나 태도로 사람들을 파악하고 알아갔다. 물론 몇몇 영어 모임에선 다른 모임처럼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나이, 성별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된 적도 있었다. 떠올려보면 그곳에선 모임이 끝나고 뒤풀이를 했고 거기선 우리말로 서로에 대한 정보를 나누었다. 약간 미팅 같다고 해야 할까? 물론 모임에서 나도 좋은 이성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순 거짓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모임들은 뭔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두번만 가고 안갔다. 결국 내가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모임들은 무엇보다 각자의 생각을 다른 요소들 간섭 없이 교환하며 다양한 생각들을 나눈 곳들이었다. 무엇보다 원래 취지인 영어 의사소통 능력 신장에 목적을 뚜렷이 곳들이었다.


내가 가장 최근 몸 담았던 영어모임이 코로나로 올해 초 대면 모임에서 카톡 모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몇 번 하다가 지금은 활동을 완전히 멈췄다. 그래도 우리는 2년 간 매주 1번은 꼭 만났다. 그 모임에서 영어능력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성장을 했다. 사실 영어실력은 모임에 나간다고 많이 늘지 않는다. 스스로 영상을 보며 쉐도잉 하며 암기하고 따라 하는 게 영어 능력 신장에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모임원들의 전문 분야인 영어교육, 예술, 종교, 항공, 유튜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그 분야에서 열심히 책임감을 갖고 사시는 분들이기에 삶의 태도 부분에서도 인간적으로 배울 부분이 많았다.



코로나로 당분간 해외여행이 불투명한 지금, 여전히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소통하는 여행을 꿈꾼다. 모임이 멈추면서 내 영어 사용도 자연스레 멈췄다. 올해가 가기 전 모임원들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학창시절 영어를 그리 싫어하던 내가 이렇게 될 걸 알았다면 어렸을 때 영어 공부가 좀 덜 지겨웠을까?나는 절레 절레 고개를 흔든다. 아니다. 사실 해야 해서 하는 공부는 지금도 싫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지금이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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