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처럼 살고 싶어

by 별의자리

지난 영어 모임에서 Ted 영상을 이용해서 스터디를 진행했다. 덕분에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주에 2개씩 영상을 꼬박꼬박 보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저명한 사람들의 10분 내외로 연설을 꾸준히 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보였다.

'journey'


영어사전에서 검색하면 '(주로 장거리에 해당하는) 여행, 여정'이라고 나온다. 사람들은 연설에서 '내 여정(journey)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어요.'라고 말하며 연구를 하게 된 구체적인 일화를 이야기한다. 많은 연설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journey'라고 표현하는 게 흥미로웠다. 그들의 연구가 그들에겐 순수한 즐거움, 호기심의 대상으로 느껴졌고, 구체적인 삶의 경험들이 그들에게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표로 작용해 보였다.



내가 만약 TED의 강연자가 된다면 나는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10년 차 초등 교사였고, 그동안 고학년만 가르쳐왔다. 그래서 거기에서 뭔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건 솔직히 없었다. 돌이켜보면 난 그저 성장 과업을 충실히 이행해온 사람이었다. 초, 중, 고, 대학교를 거쳐 교사가 되고 20대 후반에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사회에서 요구한 틀에 딱딱 맞게 자라온 사람이었다. 내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호기심으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깊게 탐구하고 거기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 내게 좋아서 오랫동안 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여행이었다. 교사가 된 첫 해에 일주일간 새마을호 이하 등급의 기차를 무한정 탈 수 있는 '내일로'를 이용해 여름엔 원주, 제천, 영주, 안동, 경주, 부산을 돌았고, 겨울엔 군산, 나주, 목포, 해남, 순천, 부산, 울산을 여행했다. 교과서에서 보던 서원들에 앉아 배롱나무 꽃의 예쁨에 감탄도 하고 전라도 백반의 푸짐함에 눌러앉고 싶단 생각도 했다.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난 내일러들과의 대화도 즐거웠다. 그다음 해엔 제주도 한라산을 혼자 등반했다. 점점 자신감을 얻어 일주일간 일본 여행을 혼자 다녀왔다. 그리고 그다음엔 한 달간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결국 방학 중 여행은 학기 중에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혼자 다니는 여행지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은 정말 짜릿했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수행하는 역할을 위한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낯선 여행지가 동네처럼 익숙해지면 다른 곳으로 떠났다.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로워 보였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생겼다. 잠시 만나는 인연들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주었다. 서로에게 관계의 의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친절은 당위성이 없기에 더욱 감동이었고, 순수했다.



그 시절 여행이 정말 행복했기에 인생을 여행을 다니던 마음으로 살고 싶다.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정하고 그곳을 향해 걷고 싶다. 주어진 시간, 상황 안에서 원하는 길을 걷고 싶다. 그러다 사람들을 만나면 함께 걷고 싶다. 이야기가 잘 통하면 밥도 먹고, 다음 행선지를 함께 가는 거다. 그리고 다음 날은 서로 각자 갈 길을 가며 헤어진다. 그게 남편일지라도, 아들일지라도 영원히 함께 하는 관계는 없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머물러 만났을 뿐 각자의 여행에 잠시 마주쳐 함께 할 뿐이다. 여행을 가서 가장 피하고 싶은 건 패키지 여행객이 되는 거다.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는 건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간 곳을 충분히 느끼고, 보고 싶은 걸 보길 원한다.


나는 내 인생을 통해 무엇을 여행하고 싶은가? 나는 지금 무엇에 관심이 가는가? 나는 내게 묻는다. 이젠 그 길을 따라갈 마음의 준비가 됐다. 그러다 보면 나도 내 journey는 여기서 시작했다며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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