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예약해 두었던 점집에 갔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내가 직접 가본 건 처음이었다. 나와 남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더 물어볼 거 있냐는 말에 남편이 입양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내게 대뜸
"하지 마. 너 그렇게 천사같이 착하지 않아. 분명 좋을 땐 좋겠지만 넌 네가 힘들 땐 못 버틸걸"
이라고 했다.
남편의 제안을 듣고 오래 함께 고민하고 입양기관에 전화도 하고 면담도 잡았지만, 적극적으로 입양을 추진하지 않았다. 아이를 입양하면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남편보다 내가 많을 것이었다. 그것이 결국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걸 첫째 아이를 키우며 느꼈다. 아이의 양육에 있어 아이가 어릴수록 오롯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주양육자에게 책임이 온전히 쏠린다. 그러니 남편보다 퇴근시간이 훨씬 빠른 내가 분명 아이가 장성하기 전까지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며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 거였다. 그리고 입양은 남편이 원해서 한 거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 남편 탓으로 돌릴 것은 안 봐도 뻔했다. 이 모든 걸 알았지만, 남편이 원하니 강하게 반대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보다 값진 일은 없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저분의 말 한마디로 나는 내 분수를 느끼고 마음을 깔끔히 정리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넌 그렇게 착하지 않아"라는 말에서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계속 곱씹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내가 왜 이 말을 그리 반복해 떠올릴까를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착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내 행동들이 떠올랐다. 선을 넘는 기분 나쁜 이야기를 들어도 예의를 차리며 참고 넘어가거나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하려 노력하곤 했다. 혼자 상처가 쌓이다 보니 그런 내가 스스로가답답했다.하지만 그런 행동들이 오랫동안 습관으로 굳어져 무의식적으로 나왔다. 그런데 점집에 가 저 말을 듣고 나니 굳이 가면을 쓰고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착하지 않다'라는 말이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참 시원했다.
어린 시절 동화들을 참 많이 읽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신데렐라, 백설공주 같은 동화 내용의 마지막에선 나쁜 계모나 왕비는 벌을 받는다. 그리고 공주들은 왕자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 동화들의 그런 권선징악, 사필귀정 류의 결말을 보며 '착하게 살아야지'를 마음에 자연스럽게 품었다. 그런데 그렇게 의무감으로 착함이 똘똘 뭉치다 보니 무엇이 착한 행동, 선한 행동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 기준이 없었다. 그냥 막연히 다른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 거짓말 안 하는 것, 질서 및 규칙 잘 지키는 것,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 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날 독실한 크리스천이나 맏며느리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전히 규칙 준수, 예의범절, 정직, 친절 등은 함께 사는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더불어 가치 체계에 있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각자의 이해관계, 욕망 들이 때로는 상충되고 때로는 일치하기도 하며 여러 가치들이 혼재하고 있다. 거기서 한 가지 원칙만 고수하며 예를 들면 '나는 착하게 살 거야'는 순진하고 위험한 생각이다. '착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no.1 목적이 되어버리는 거다.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내가 착하게 행동해야지라고 생각한 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가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진정 원한 것은 착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닌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차라리 내 욕망을 인정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게 행복해지는 것에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착하게 살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건 매우 수동적인 자세이다. 본인이 아닌 그 누구도 나에게 행복을 대신 보장해 주지 않는다.
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남편은 내가 어릴 적 꿈꾸던 왕자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가 아닌 것도 확실하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날 돌이켜 볼 때 한 성에 오래 사는 공주는 맞지 않는다. 그리고 공주 중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되고 싶은 캐릭터가 없다. 난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걸 보고 체험하며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