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녀는 3년 전에 처음 만났다. 좋아하는 작가를 공통분모로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모임에서였다. 모임 사람들 중 아이의 연령이 같았던 우리는 그 후로도 아이들의 숲 체험을 매개로 6개월간 매주 1번씩 만남을 지속했다. 아이들이 숲 체험을 하는 동안 우리는 주로 카페에 가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었다. 그녀는 열정이 가득한 중학교 수학교사였고 그 당시 육아휴직 중이었다. 환한 미소로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는 그녀를 보며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에 가서도 사랑을 잘 주고받으며 적응을 잘할 타입으로보였다.
우리가 만날 당시 힙합 경연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 '쇼미더머니7'이 한창 시즌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쇼미더머니7'을 보냐고 물었다. 난 힙합에 그다지 취미가 없어 그 프로그램을 안 본 지 오래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것만큼은 꼭 다 챙겨본다고 했다. 래퍼들이 즉홍적으로 랩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상대방을 디스하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느껴졌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어린 시절 그녀의 집안은 대화를 많이 주고받는 살가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히 아버지는 어린 그녀에게 엄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밝은 척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렇게 감정을 숨기는 것이 쌓이다 보니 속마음을 표현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졌다. 어쩌다 누군가와 논쟁이라도 하게 되면 눈물부터 왈칵 났다.
그녀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갈등 상황이 있을 때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다. 특히 감정이 격한 경우,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해 나중에 뒤돌아서 '이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남편과의 갈등이 생기면 장문의 문자를 이용해 생각을 전달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런 본인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라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조금씩 노력해서 표현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고 했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히려 그녀에게 수학을 배우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조리 있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숨기지 않고 직면하며 더욱 ‘나’다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내게 관계에 능숙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녀의 고백은오히려
‘나만 내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는 건 아니구나’
라는 위안을 주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 그녀가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며 자유롭길,그녀 맘 속에 있는 눈물부터 흘리던 어린 소녀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