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세요. 바닥도 깨끗하게 닦아드렸어요. 좀 더 주세요. "
걸레가 지나간 물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이사 서비스 목록 중 마지막에 적혀있던 스팀청소였다. 차라리 하지 말지. 빨래가 덜 말랐을 때 나는 냄새가 방 전체에 퍼져있다. 이미 손에 있던 5만 원짜리 지폐는 그의 손에 들려있다. 이삿짐 업체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옷과 물건들이 이삿짐 봉지 안에 그대로 들어있다. 신혼여행 때 산토리니에서 산 파랗고 흰 소스통이 화장대 위에 댕강 깨져있다. 이런 젠장.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다. 도로에 차 지나가는 소리도 드문드문 들린다. 아파트 뒤쪽으로 밭이 보이고 철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간다.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았다. 동네 한적한 게 참 좋다. 다만 우리 집 꼬마가 문제다. 이제 만 2살. 새로운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가까운 곳에 없어 노란색 봉고차를 타야 한다. 걱정만 할 바엔 직접 가보는 게 낫겠다 싶어 운전대를 잡았다. 차로 10분 거리. 군부대 앞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갔다. 알록달록한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원장님이 이사를 막 해서 정신이 없는 우리와 비슷하다. 동네 재개발로 이번에 위치를 옮겼다고 했다. 예전에 다니던 가정 어린이집보다 훨씬 크다. 적응만 잘하길. 어린이집을 나오는데 오른쪽에 '00 농협 로컬 마켓 100m 전'이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로컬마켓이면 여기 지역 농산물 파는 거 아냐?"
"그렇겠지. 한번 가볼까?"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마트로 향했다. 진열대에 딸기, 파, 시금치 등이 올려져 있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남편의 표정이 탐탁지 않다. 채소 생긴 걸 보니 이유를 알 것 같다.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과 모양이 좀 다르다.
"이런 게 좋은 거야"
엄마가 말했다. 아빠가 시골에서 가지고 온 채소들은 시장에서 파는 것과 아예 달라 보였다. 복숭아, 자두는 벌레 먹은 게 허다했고, 검은 반점이 주근깨처럼 많았다. 고추, 오이, 가지는 짧거나 구부러졌거나 누렇거나 그랬다. 뭐 하러 이런 걸 낑낑대고 갖고 오나. 시골에서 집에 오려면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탄 후 전철로 갈아타야 한다. 5학년 때 집이 저당 잡힌 이후 우리 집엔 차가 없었다. 채소가 가득 담긴 카트를 끌고 대중교통으로 집에 오는 길은 무척 험난하다. 장애물을 만나면 그 무거운 걸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십 번을 반복해야 집에 도착한다.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할 즈음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꼭대기 5층이었다.
"자연에서 자란 채소, 과일은 이런 모양이 당연한 거야. 몸에 좋아."
대화가 별로 없던 두 사람이지만 아빠가 시골에서 이고 오는 채소가 많은 날에는 한 팀이 되어 채소를 손질하고 정리했다. 그때 들은 말을 남편에게 말했다.
"이런 게 좋은 거야. 약 별로 안친거고 건강에 좋은 거야." 대파, 시금치를 바구니에 넣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일을 부리나케 마치고 액셀을 밟아 어린이집에 갔다. 선생님은 아이가 반에서 제일 적응이 느리다고 했다. 유인책이 필요했다. 로컬 마트에 들러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나는 새로 나온 채소를 구경하고 저녁거리를 샀다. 가장 좋아한 건 루꼴라였다. 쌉싸름하지만 고소한 풀. 수제 피자점에서 먹어보고 반한 채소. 큰 마트가 아니면 보기 힘들었는데 동네에 생산자가 있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한 건 쌈 채소였다. 그는 천 원에 한 봉인 상추가 신선하고 양이 많다며 제일 먼저 장바구니에 넣곤 했다. 그리고 삼겹살, 마늘, 고추, 막걸리도 차례로 골랐다. 상추를 먹기 위해 고기 파티라니. 상추가 어찌나 많이 들어있는지 한 번에 먹지 못해 두세 번 했다.
비가 2주째 내렸다. 라디오에서 채소 가격이 폭등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고깃집에선 상추 대신 깻잎을 주고, 햄버거 가게에선 토마토를 넣지 않고 판단다. 어린이집 들려 간 마트 매대도 텅텅 비어있다.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수확을 못하나. 아님 다 떠내려간 건가. 아빠는 괜찮나.
"학습지 가져와"
어렸을 땐 목소리가 큰 아빠가 무서웠다. 일찍 집에 들어오는 날엔 학습지 검사를 했다. 깨끗한 페이지 수만큼 회초리로 발바닥을 맞았다. 발바닥을 맞으면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방송에 나온 후였다. 중학생이 되자 학교에서 등수가 적힌 성적표를 나누어줬다. 부모님 싸인이 필요했다. 5보단 크고 10보단 작은 숫자. 다시 발바닥을 보이며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내 등수가 사회에서 아빠 등수보다 훨씬 앞일 텐데?' 키가 크는 만큼 반감도 커졌다.
"너는 엄마가 돼서 애한테 밥도 못주냐."
나이가 들어도 아빠와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자식이 부모가 되면 이해한다는 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대화 마지막 즈음에는 늘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연락이 점점 줄었다.
택배가 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참나물 다발과 긴 두릅이 빽빽이 들어있다. 전날 뜯어서 바로 보낸 거란다. 아빠는 더 이상 카트를 끌고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2년 전 시골집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통해 듣는 아빠의 목소리.
"두릅 데쳐서 초고추장이랑 남편 주고 참나물 참기름 넣고 무쳐서 애기 줘."
"내가 잘 먹을게"
"네가 남편 잘 챙기고 아들 잘 키워야지. 시어른들한테도 잘하고."
'나도 일하면서 아이 키우느라 아등바등 살아...'
전화를 끊고 혼자 중얼거린다. 대체 직접 키운 채소, 과일을 내게 보내는 이유는 뭘까. 정녕 남편과 아이 잘 챙기라고? 아님 너무 많아서 버리기 아까워서?
두루미에게 접시에 담은 수프를 내미는 여우. 두루미는 먹지 못한다. 여우는 먹지 못하는 두루미를 보고도 계속 같은 그릇만 내민다. 여우는 두루미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수북이 쌓인 못난이 채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참나물과 두릅을 다듬고 데칠 물을 냄비에 담아 올렸다. 저녁 메뉴는 참나물 비빔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