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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취 Jul 04. 2021

어느 일요일 오후

  한 달 전쯤 대학 동기와 만나기로 했다. 오늘이 그날이다.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았다.

 "요금 900원이 지불되었습니다. "

하이패스 도로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니 지하철을 타고 가면 1시간 반 걸리는 시간이 40분으로 줄었다. 운전대를 잡고 에어컨을 켜고 라디오를 듣는다.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스스로가 성공한 어른처럼 느껴진다. 운전은 어른만 할 수 있는 특권, 차는 갖는데도 유지하기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 그걸 개의치 않고 이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곳은 함께 다닌 대학교.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 학교로 향했다. 자주 가던 음식점들 안부를 눈으로 확인한다.

 "어 저 냉면집 건물 세웠어. 엄청 커졌네. 계속 잘됐나 봐."

 "거기랑 라이벌이던 곳. 거긴 아예 콩국수집으로 바뀌었다. 맛은 괜찮았는데 위치가 애매했지."  

한적했던 거리는 새로 생긴 음식점과 카페들로 빽빽해졌다. 정문 입구 근처고가도로도 생겼다. 원래 있던 음식점은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기고 고가도로 그늘 밑에 공원이 생겼다. 그 덕에 학교로 가는 길이 주차장으로 변해 있다. 계곡을 정비하고 넓히면서 인기 관광지가 되었나 보다. 깜빡이를 켜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대열에서 벗어나 학교로 곧장 들어갔다.   



"졸업생이라 해도 들어갈 수 없어요. 학교 입장에선 외부인이잖아요. 재학생 하고 재학생 학부모님만 들어가서 기숙사 물건 넣고 뺄 수 있어요."

학교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는데. 들어갈 수가 없다. 계획을 바꿔 즐겨 가던 수타 짜장 집으로 향했다. 신입생 때 선배들이 맛집으로 알려줬던 곳이다. 메뉴판을 보다 코스요리 쪽에서 눈이 멈췄다. '누룽지탕'  대학생 때는 시켜본 적이 없는 메뉴. 고민하다 누룽지탕이 나오는 코스요리 B를 주문했다. 더운 날씨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보니 웃음만 나온다. 친구를 쳐다보니 애매하게 웃고 있다. 밥값을 내야 할 듯하다. 마지막으로 나온 미니 짬뽕을 절반가량 먹고 남겼다. 주인 음식 솜씨가 변했나. 신입생 때 느꼈던 감동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 짬뽕 가득 담겨있는 해산물과 손으로 반죽해 쫄깃한 면발은 그대로인데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변한 건 다.  돈을 벌고 데이트를 하고 여행을 다니며 전국에 있는 짬뽕 맛집들을 많이 다녔다.  집에서 배달 짬뽕만 간간히 먹은 고등학교 졸업생과 다르다.



 우리는 근처 전망 좋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야외 테라스 자리. 테이블 사이가 널찍해 마스크를 벗고 음료를 마셔도 안심이다. 양 옆 테이블에 아기와 함께 온 부부들이 앉아 있다. 친구는 아기를 보고 주스를 한모금 마신  나에게 말했다.

 "나는 한 게 없어. 결혼도 아이도 운전도... 할 거를 많이 안 한 기분이야. 평일, 주말은 어찌저찌 보내는데 공휴일에는 정말 만날 사람이 없어. 다들 남편, 아이와 시간을 보내니까. 코로나로 동호회 나가기도 그렇고."

 친구는 수다 떨 때 남편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게 부러울 수 있구나. 남편에 대한 불만을 가득 털어놓았던게 떠오른다. 부부 동반 모임도 가고 싶다 한다. 며칠 전에 남편과 갔던 친구 신혼집 집들이가 떠올랐다. 혼자 가려했는데 남편은 가고 싶어 했다. 남편 일터가 친구 집 코 앞이라 결국 퇴근하고 함께 갔다.



"결혼하고 애 바로 낳으면서 하고 싶은 거를 못했어. 의무만 가득한 삶. 작년부터 조금씩 어떻게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려고 시간 만들려 노력해. 새벽 5시부터 6시 반. 온전한 내 시간이야."

 친구가 말한 것들을 다했다. 이삼심대가 명절에 듣기 싫은 잔소리로 꼽는 취직, 결혼, 출산을 했고 육아를 하고 있다. 물론 하나만 낳아 여전히 둘째가 필요하단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대부분 클리어했다. 성취감보다는 상실감이 컸다.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을 갖기 힘들었다. 해야 할 것들 위주로 살다 보니 내가 사라진 것 같았다. 내 시간이 절실했다. 공기가 무겁게 잠겨있는 고요한 새벽.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책을 읽기도 하고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글도 쓴다. 친구는 퇴근하고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고 좋아하는 BTS영상을 보고 잔다고 했다.



 친구와 사진을 찍었다. 어플로 찍어야 한다 해서 친구 핸드폰으로 찍었다. 피부톤이 환해지고 눈이 살짝 커졌다.  곱게 화장하고 예쁘게 웃는 친구와 머리만 질끈 묶고 와서 어색하게 웃는 나. 다음번 만날 때는 서울 시내 힙한 바에 가서 맥주를 마시자고 했다. 나도 화장하고 예쁜 옷 입고 한껏 꾸미고 가야지. 어느덧 유리잔에 얼음만 달그락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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