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가장 성공한 여성 음악가. 여자 가수 최초 <Grammy Awards(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세 번 수상. 역사상 가장 최고 수익을 기록한 투어를 진행 중인 아티스트. 이 천문학적인 기록은 모두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 부정할 수 없는 팝의 여왕이다.
데뷔 후 17년 동안 10장의 정규 앨범, 4장의 재녹음 앨범을 발매하며 진정한 허슬러가 무엇인지 보여준 그녀는 오랜 시간 꾸준히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말을 건넸다. 컨트리 가수를 꿈꿨던 그녀가 팝의 여왕이 되기까지, 다사다난했던 긴 시간을 지나 열 세 번의 잠 못 드는 밤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메시지를 던진 그녀의 지난 날은 지나치게 다채롭고도 풍성했다.
꿈 많던 컨트리 소녀
어릴 적부터 컨트리 가수로서 확고한 의지가 있었던 테일러는 일찍이 컨트리 음악의 도시인 내슈빌에서 적극적으로 본인을 홍보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 결과, 여러 레이블과 몇 번의 컨택이 있었으나 대부분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앨범 제작을 늦추는 등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고, 그렇게 그녀의 첫 컨트리 여정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허무하게 내린 막은 그녀를 쉽게 무너뜨리지 못했다. 야심찬 계획과 달리 참담한 현실을 맛봤지만, 곧바로 좌절이 아닌 실패에 대한 분석에 돌입했고, ‘컨트리 가수라면 작곡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따라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 싱어송라이터 리즈 로즈의 작곡법에 영향을 받으며, 가사를 먼저 짓고 악기 연주로 어울리는 멜로디를 붙이는 방식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녀의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아메리카나> 또는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면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방법을 사용하여 많은 곡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작곡을 터득해가며 만들었던 첫 앨범이 바로 [Taylor Swift]이다. 발매 당시 10대였던 만큼 그때만 이야기할 수 있는 풋풋한 사랑과 우정, 불안을 주로 다뤘으며, 장르는 역시나 기타와 같은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한 컨트리였다. 그야말로 미국 시골 냄새를 짙게 풍기던 앨범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명은 컨트리 가수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 젊은 층의 청취자를 컨트리 음악으로 끌어오는 성과를 보였다.
이후 발매된 [Fearless]는 1집의 연장선으로 좀 더 성숙해진 소녀 감성으로 컨트리에 팝을 섞는 변화를 주었다. 1집이 날 것의 컨트리였다면, 2집은 좀 더 가공된 컨트리 음악과도 같았다. 기존의 컨트리 스타일에 팝과 록의 색채를 살짝 더한 것이다. 타이틀 곡 ‘Love Story’는 미디움 템포의 컨트리 팝으로 그녀의 새로운 시도와 음악적 성장을 의미하는 곡이기도 하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 콘서트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대표 곡이 되었으며, 해당 곡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는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아티스트의 이름이 인지하기 시작했다. [Fearless]는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컨트리 음반이 되었고, 제5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며 ‘최연소 그래미 올해의 음반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러나 인기는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많은 관심을 받을수록 의혹과 루머는 커져만 갔다. 당시 음악 업계에서는 “테일러는 직접 곡을 쓰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보란 듯이 전곡의 작사, 작곡을 혼자 도맡아 제작한 3집 [Speak Now]를 발표했다. 해당 앨범 역시 [Fearless]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컨트리 스타일에 팝과 록의 색채를 더했지만, 전보다 훨씬 짙은 색을 띄었다. 마치 곧 컨트리와 팝의 경계선이 희미해질 것이라는 예고장을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전곡의 작사, 작곡을 혼자 진행한 만큼 보다 진솔한 이야기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커리어를 성공 궤도에 올려놓음으로써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으나, 동시에 수많은 질타와 위험을 맞이했던 과정에서 느낀 복잡한 감정을 써 내려갔다. 이건 정제되지 않은 강렬한 양극단의 광활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고통에 뛰어들며 혹독한 시간을 버텨낸 결과물이었다.
팝의 세계로 조금씩 나아가다
2집과 3집에서 조금씩 팝과 록의 색채를 더하며 팝으로의 진출을 예고했던 그녀는 희미해지는 컨트리와 짙어지는 팝의 연장선상인 4집 [Red]를 지나 5집 [1989]를 발매하면서 팝 가수로의 완전한 전환을 알렸다. 특히, [1989]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 ‘근본’ 등의 수식어가 붙을 만큼 얼마나 완벽히 팝의 진수를 보여줬는지 알 수 있는 앨범이었다. 미국 시골 냄새를 풍기던 사운드는 온데간데없고, 세련된 도시 냄새를 한껏 머금은 곡들로만 가득했다.
첫 트랙인 ‘Welcome to New York’만 봐도 컨트리 앨범에서 익숙한 어쿠스틱 기타 대신 전자음과 드럼 위주의 사운드로 구성한 점을 알 수 있다. 컨트리에서 벗어나 팝의 세계로 발을 내딛으며 달라진 점은 사운드만이 아니었다. 조금 더 과감해진 가사의 변화였다. 이전까지는 사랑이나 특정 상황에 느낀 자신의 다양한 감정을 주로 음악에 담았다면, 이번엔 타인의 질타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과 신랄한 사회 풍자를 하는 등 이리저리 부딪히며 더 견고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타이틀 곡인 ‘Blank space’ 못지 않게 많은 수록곡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대표적으로 ‘Bad Blood’, ‘Welcome to New York’, 그리고 최대 히트곡이라 봐도 무방한 ‘Shake It Off’가 그 예시이다. 테일러는 이 앨범으로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2번이나 수상한 최초의 여성 아티스트’라는 신기록을 쓰며 최고의 팝스타로 등극하게 되었다.
내가 뱀이라고? 그럼 뱀이 되어 줄게
앞서, 테일러는 한 시상식에서 칸예 웨스트 부부와의 충돌로 인해 뱀이라는 조롱을 받았었다. 컨트리 음악을 하던 시절 발생한 사건인지라 많은 시간이 지났기에 일단락된 줄 알았으나, 그의 괴롭힘은 지속되었고, 결국 조작된 영상이 부추긴 루머로 인해 전 국민이 그녀를 향해 교활한 뱀이라며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라디오 DJ의 성추행 사건까지 더해지는 등 6집이 나오기 전까지 굉장히 다사다난한 시간을 겪었는데, 그 시간은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했고, 결국 ‘천재가 각성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예시’를 초래했다.
6집 [reputation]은 기존의 테일러 이미지와는 교집합이 전혀 없는 앨범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질타를 향한 정면 승부로 발매 전 인스타그램의 게시물을 전부 내린 뒤 뱀 이미지 하나만을 업로드하는 프로모션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정면 승부를 위한 앨범인 만큼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이슈, 즉 앨범명 그대로 ‘평판’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았으며, 그 어떤 때보다 절제되고 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Look What You Made Me Do’를 통해 “옛날의 테일러는 죽었다”고 경고했다.
테일러의 정면 승부는 마치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라는 말처럼 이 사건을 계기로 뱀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삼는 결과를 낳았다. 콘서트 조형물로 거대한 뱀을 한다거나 커스텀 마이크에 뱀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이며 암묵적으로 최후의 승자가 자신임을 알린 것이다. 자신이 뱀이라면 기꺼이 뱀이 되어 독으로 강인함을 보여준 그녀였다.
열 세 번의 잠 못 이루는 밤, 그리고 시작된 시대 여행
강렬한 뱀의 독을 내뿜으며 옛날 테일러는 죽었다던 말이 무색하게도 7집 [Lover]를 통해 곧바로 본연의 색채를 되찾았다. 전체적으로 몽글몽글하고 이지리스닝의 분위기로 평판에 대해 말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엔 사랑에 대한 탐구를 진행했다. 이어 코로나 19로 만나지 못했던 팬들을 위한 깜짝 선물로 인디 포크와 얼터너티브 락 장르의 [folklore]와 [evermore]를 연달아 발매하며 또 한 번 장르에 변화를 주는 성공적인 시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 세 번의 잠 못 이루는 밤, [Midnights]에 도착했다. 아트워크에서부터 고요한 밤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만큼 오랫동안 보아야만 비로소 볼 수 있는 자신의 내면을 담은 앨범이다. 어릴 적부터 수많은 인간관계와 대중이라는 심사위원을 상대하며 빨리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이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마음 등 어두운 밤 하늘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며 정교하게 써 내려간 한밤중의 이야기였다.
다사다난했던 연예계 생활, 롤러코스터 같았던 내면.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열심히 달려오기도 했다. 이번엔 또 다른 질주이다. ‘시대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자신의 디스코그래피를 테마에맞춰 구성한 대규모 투어 <The Eras Tour>로 전세계에 걸친 긴 여행을 하고 있다. 아직 절반이나 남았지만 길었던 그 여행이 끝난 뒤, 너무 늦지 않게 또 우리를 찾아와 주길.
Written by.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