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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쓸신팝 Jan 01. 2024

[비비지] '매니악'하게 될걸, 비비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난 2021년, 걸그룹 여자친구가 안타깝게 활동을 종료하고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은하와 엄지, 그리고 신비는 다시 한번 한 팀으로 뭉쳐 재도약을 꿈꿨다. ‘비비지(VIVIZ)’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들의 2막은 여자친구의 연장선이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팀으로서의 시작을 의미했다. 각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만든 단순한 작명이지만, 언제나 당당하게 자기만의 색을 표현하겠다는 ‘VIVID Dayz’라는 뜻을 덧붙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미 정점을 찍어본 아이돌 그룹이 재데뷔를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터. 하지만 비비지의 도전에는 거침이 없었고, 음악과 무대를 향한 이들의 강한 집념은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출처] 비비지 공식 페이스북
여자친구에서 비비지로, 2막의 시작


쏘스뮤직과의 계약이 종료되고 나란히 빅플래닛메이드엔터로 향한 세 멤버는 2022년 2월, ‘비비지’라는 3인조 걸그룹으로 새출발을 알렸다. 데뷔 8년 차에 솔로 가수도 아닌 ‘경력직 신입’ 걸그룹으로서 활동을 택했다는 건 분명 흔치 않은 사례였다. 하지만 이들의 과감한 행보를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었다. 비록 멤버의 수가 줄어들었기는 하나 이들에겐 여자친구로 쌓은 탄탄한 경력과 믿고 듣는 라이브 실력, 그리고 핵심 보컬 은하와 메인댄서 신비를 필두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보랏빛으로 포문을 열었다. 데뷔곡 ‘BOP BOP!’은 청순한 콘셉트와 파워풀한 안무로 대표되었던 여자친구 활동 당시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통통 튀는 라틴풍 디스코 사운드로 발랄한 매력을 선보였고, 키치한 레트로풍 스타일링으로 비주얼마저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여자친구와 완전히 다른 음악과 콘셉트를 내세운 점에서 비비지가 단순히 여자친구의 정신을 계승한 팀이 아닌 그 이상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장착한 그룹이라는 이들의 결성 의도가 내비쳤다. 이름에 담긴 ‘VIVID’라는 의미처럼 첫 앨범만으로 비비지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냈다는 것만으로도 값진 성과였다.

[출처] 비비지 공식 페이스북
비비지만의 빛깔을 만들어가다

한 가지 색깔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보다 매번 다채로운 색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 이것이 비비지가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들고, 표현해 가는 방식이다. 여름 시즌송을 노리고 발매한 두 번째 EP [Summer Vibe]의 타이틀곡 ‘LOVEADE’는 마치 스파클링한 과일 에이드처럼 상큼한 매력이 돋보였다. 시원한 파스텔 톤의 바캉스룩 콘셉트와 살랑거리는 바닷바람 같은 세 멤버의 청아한 음색은 잠시 더위를 잊게 할 만큼 사랑스럽고, 청량했다.

[출처] 비비지 공식 페이스북

부드러운 썸머송만으로는 한 방이 부족했다고 느꼈던 걸까. 비비지는 반전의 카드를 꺼내 또 한 번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BOP BOP!’과 ‘LOVEADE’까지는 경쾌한 사운드와 밝은 색감으로 친숙한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세 번째 EP [VarioUS]를 기점으로는 강렬한 블랙을 입고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세 멤버의 색다른 매력으로 대중을 매혹했다. 타이틀곡 ‘PULL UP’의 슈트 셋업 착장과 엄지의 도발적인 랩핑, 시크한 퍼포먼스 등 요소 하나하나가 신선했고, 무언가 연상되는 대상 없이 새로운 형태였기에 비비지만의 정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듯했다.

[출처] 비비지 공식 페이스북
드디어 터졌다, 경력직의 포텐셜

세 장의 EP 앨범을 발매하며 통통 튀는 보랏빛, 화사한 파스텔 핑크빛, 쿨한 카리스마의 블랙까지 다채로운 이미지를 보여주었지만, 과거의 영광을 이어갈 만한 대표곡이 탄생하지는 않았다. 특히 2020년대에 데뷔한 4세대 걸그룹들이 흐름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온전히 비비지의 것으로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법.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잭팟이 터지며 비비지가 쌓아온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다. 지난 11월 발매한 네 번째 미니앨범 [VERSUS]의 타이틀곡 ‘MANIAC’은 코러스의 펑키한 록 사운드와 부드러운 신시사이저 선율이 귓가에 스며드는 곡으로, 비비지의 역대 타이틀곡 중 이지리스닝에 가장 적합했다. 그러나 발매 직후만 하더라도 대중의 반응은 미약했고, 오히려 커플링 곡으로 음악방송에서 선보인 ‘Untie’의 치명적인 걸크러시 퍼포먼스가 더 주목받는 결과를 낳았다.

[출처] 비비지 공식 페이스북

기회는 한발 늦게 찾아왔다. 비비지 멤버들이 발로 뛰며 여러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 함께한 ‘MANIAC’ ‘엉덩이춤’ 챌린지가 숏폼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고, 금세 중독되는 쉬운 멜로디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음원차트에서 역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한창 음악방송 활동을 진행할 당시 300위권에 머무르던 ‘MANIAC’은 지난 26일, 멜론 일간 차트 TOP100에 진입하며 데뷔 이래 최고의 음원 성적을 기록했다. 여전히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터라 비비지의 기세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이목이 제대로 쏠리고 있다.

[출처] 비비지 공식 페이스북
2023년 마지막 역주행 주인공, 이제는 도약할 때

2024년까지 겨우 며칠을 남겨둔 시점, 비비지는 2023년 영광의 마지막 역주행 주인공이 되었다. ‘MANIAC’의 흥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챌린지 열풍이었지만, 타이틀곡 선정을 위해 350여 곡을 모두 직접 들어본 노력과 이지리스닝의 매력을 극대화한 편안한 보컬, 대중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쫄깃한 춤 실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였다. 이제 비비지에게는 다시 힘차게 도약할 일만이 남았다. 오직 멤버들과 사운드의 매력만으로 역주행의 기적을 불러온 것처럼 지금의 기세라면 앞으로 이들에겐 음원 정주행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 written by tim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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