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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요가 Oct 24. 2018

관계

관계를 맺는 것,

2018년, 아니 2008년 습한 홍콩.

연고 하나 없는 타국 생활을 겁 없이 시작했다. 1970년대~1980년대에 먹고살기 위해 타국까지 와서 산전수전 겪어가며 독하게 살아 내온(죽기 살기, 뺏지 않으면 빼앗긴다는 독기) 사람들 사이에서 낭만적 타국 생활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던 내가 하루하루를 나기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살아보기로 마음먹은 홍콩은 소곤대는 별들을 바라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모르면 겁이 없다고들 하는데, 겁 없이(준비 없이) 시작해서 힘들어했던 경험들 중에 단연 최고의 기간이지 싶다.      

홍콩도심의 빌딩들

퇴근 후 낯선 도시를 헤집고 다니는 것도, 주말마다 도시 주변의 섬들을 나다니는 것도 지겨워질 즈음이었다. 어느 날은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동료 3명이서 함께 지내는 오래된 아파트의 인기척 없는 집, 내 방에 들어왔다. 같은 집에 살지만 각자의 방에서 들어가 나오지 않는 그들의 삶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뿌옇게 흐려진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도 시끄럽던 오래된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그날따라 들리지도 않더니만 갑자기 밀려오는 온몸이 저린 듯한 서늘함. 그리고 느껴지는 것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따위에 가슴팍이 한참 동안이나 먹먹해질 때가 있었다.

 아픈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데 온몸이 저리는 느낌. 외로움.

이름도 식상한 '외로움'.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에도 겁먹지 않고 훅 들어와서 한 번씩 내 마음을 헤집어놓고 가는 놈. 그런데 2008년 그때의 그 저린 느낌이 오늘은 그립다. 힘들었다면서 왜?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관계에 대한 아쉬움. 그래, 외로움은 함께했던 이들에 대한 아쉬운 감정의 포장된 변명이다. 나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그들의 생존전략에 닿지 않았던 것 같다. 첫 직장에서 그렇게 그들에게는  잠시 스쳐간 사람으로 끝나버렸다.
  

관계 속에서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즈음 그때와는 다르지만 꼭 다르다고만 할 수 없는 지금의 내 고민과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의 욕구를 위해 비판을 잊은 관계로 지속할 수도 있고 생존 전략과 인정 욕구가  이념으로 포장되어 좋아보일 수도 있지만 나를 속이고 억지로 살고싶지 않다. 실천은 사람을 변하게도 한다지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알아차리지도 못한 그 사람의 실천은 언발에 오줌누기쯤이나 될까. 유난히 꼬인 관계가  풀리지 않아서인가. 과거의 기억을 애써 끄집어내서 위로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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