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걸으면 기억이 들춰진다.
아, 이 냄새들. 냄새의 기억은 차가운 것을 한꺼번에 먹으면 생기는 미간의 통증처럼 아찔함을 만들어 낸다.
소나무 사이를 걸을 땐 어릴 적 늦가을 할머니 댁 뒷산에서 뛰어다니며 맡았던 그 냄새가 난다. 아빠인지 고모인지 어른의 커다란 걸음과 수북이 쌓인 마른 소나무 잎을 밟는 느낌과 찰랑거리는 내 단발머리의 기억이다.
고른 숨을 빠른 속도로 쉬어가며 조금 가파른 산길을 쉼 없이 오를 때의 그 냄새도 떠오른다. 가쁜 숨을 마시고 내쉬며 느끼는 산의 냄새.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에 따라 같은 길도 달라진다. 걸음의 속도와 걸음의 모양도, 내쉬는 숨의 속도와 마시는 숲의 냄새도. 그 순간이 좋다.
계수나무의 달콤한 향기도 기억난다. 겨울의 추위가 스멀스멀 발목을 넘어서던 그 날, 가지 앙상한 나무들도 그곳을 찾은 사람들도 고요한 숲을 거닐었다. 그때 맡았던 계수나무의 향기와 수목원을 울리던 내 웃음소리.
제주 숲의 여름 냄새도 난다. 학교 기숙사에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마음껏 맡았던 그 숲의 냄새. 제주의 바다보다도 푸르게 우거진 교정의 나무들, 밤이 되면 더 밝아지던 나무 사이의 하늘, 그 여름 제주의 냄새.
흠뻑 쏟은 땀냄새를 맡으며 꿈틀대던 희망도 떠오른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이나 펑펑 울고 싶은 날 산을 올랐다. 마음 약해지는 눈물 대신 땀으로 쏟아낸다. 그리고 희미하지만 차오르는 희망을 느낀다. 흘려내 버린 땀만큼 기분 좋게 다독여진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이번 주말에도 산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