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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요가 Jun 20. 2019

이 미친 세상에

감은 눈 다시 뜰 수 있는 용기

낯선 풍경들이 지나치는
오후의 버스에서 깨어
방황하는 아이 같은 우리
어디쯤 가야만 하는지 벌써 지나친 건 아닌지
모두 말하지만 알 수가 없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브로콜리 너마저 2집 졸업 中-


#

입시학원 재수생 때 한때 의사였다던 생물 선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힘드냐? 힘들다 생각하면 안 된다. 앞으로 얼마나 힘든 일이 많은데 이게 힘들면 쓰것어? 정 힘들면 대학병원 응급실을 한번 가봐라. 아파 죽어 나가는 사람들 보면서 너희가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아라!' 선생 말을 듣고 있던 대부분이 이렇게 멀쩡하게 앉아 공부하는 것도 감사해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생물 선생의 자신에 찬 조언에 그의 의사 이력을 다시 상기라도 하듯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

힘들다는 것도 한가한 소리수험생. 생물 선생의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그때는 몰랐다. 기준을 낮추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종일 책과 씨름하며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적성도 꿈도 온 데 간  없고 그저 시험 하나로 인생을 판가름하는 그 길목에서 숨이 차 헉헉대던 우리였다.  거기다 대고 그까짓 것  힘들 일도 아니니 정신 차리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렇게 대학 나오면 잘 살아지나? 살기가 힘든 현실에서 일하고 또 일해도 바뀌지 않는 팍팍한 삶 때문에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다. 힘들어 죽고 싶다는 이들한테도 만족의 눈높이를 더 더 더 낮추라고 말하는 사회다. 그리고 그 정도면 행복한 줄 알란다.  그나마도 힘들면, 죽음이 목전인 사람들을 보고 살아 있다는 것 그만으로도 힘을 내보란다. 온갖 매스컴은 경쟁과 자본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자본주의를  세뇌시키더니 괴리감이 느껴지는 현실에 화를 내면 그것은 병이니 화를 다스리란다. 게다가 병을 다스리는 치료약을 상품화시켜 나를 따르라는 의사들의 향연! 이 무슨 지랄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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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고서 버티기 힘든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 그런 미친 세상에, 나는 제자리 뛰기도 벅참을 느낀다. 퍽퍽 빠지고 질척거리는 삶에 지친 친구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쉽지 않고 돈에 환장한 눈들을 보며 나도 그래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에 화가 난다. '하라'는 말은 지천이고 '괜찮다'는 말은 찾아도 보이지 않아 외롭고, 사랑도 쩐(錢)이 아니면 힘든 우울한 세상이지만, 그래서 눈을 뜨기가 무척이나 싫고 힘들지만 눈을 뜬다. 그나마 제자리 뛰기라도 가능한 건 눈을 감을 줄 알고 다시 뜰 수 있는 용기가 있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뜰 수 있다는 것. 다시는 뜨지 않을 듯 눈꺼풀을 힘주어 꽉 닫아보지만 이내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보이는 세상을 또 살아간다. 살아갈 이유야 저마다 있겠지만 세상이 눈앞에 있다는 것, 어지럽지만  세상이 눈에 보인다는 것은 그래도 당신처럼 빛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았던 눈을 뜨고 내가 이 자리에 있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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