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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08. 2020

거절감의 역사

영어는 재밌다.

숱한 거절 감은 마주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최초의 거절 감은 아마 부모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어머니의 얼굴을 6살의 여섯 살의 나이에 몇 년 동안 볼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와 대화도 할 수 없었고 응석도 부릴 수 없었다. 그 상실감은 여섯 살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어린아이가 마음속에서 고통의 비명을 내질러도 돌아오는 것은 조롱하는 듯한 메아리였다. 그리고 다수의 무리로부터의 거절 감도 있었다. 친구는 아니지만 친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무리들로부터의 거절감 말이다. 늘 환멸의 대상이었고 핍박의 대상이었다. 거절감을 넘어선 극도의 미움에 늘 맞서야만 했기에 마음은 늘 지쳐만 갔다.
 
모든 모습에서 거절감이 발견되었는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이성들로부터 거절감을 느껴야만 했다. 상처가 많은 사람도 수컷이긴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마음속에서 분명 무언가 꿈틀거렸다. 호기롭게 용기 내어 이성에게 다가서노라면 익숙한 거절감이 기다렸다. 이성들이 거절한다고 느낄 적에는 그들의 호흡부터 달랐다. 그 짧은 호흡 가운데 몇 년의 긴 세월 같은 시간을 느꼈고 기존의 친밀한 관계마저 어그러뜨리는 거절 감은 참 강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맞이해준 거절 감은 사회 안에 있는 일터라는 문턱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볼품없었기에 꿈은 원대하지 않았다. 소박하고 작았다. 하지만 그 소박하고 작은 곳에서도 일할 자리는 없었다. 외모와 목소리와 나의 숨소리에서 이미 그들은 거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지위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들의 말대로라면 일할 자리는 낮고 또 낮고 계속해서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러한 많은 횟수의 거절감들이 삶을 파괴시키는 듯했다. 감정은 무뎌져 갔고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숱한 거절감 속에서 개발되는 성품이 있었다. 바로 “오기”였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거절한 순 없었다. 자기 자신을 거절하지 않는 마음에서 오기는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포기하고 거절해도 스스로를 절대 포지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거절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이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만약 자기 자신을 거절했을 때 그동안 경험했던 고통의 몇 백배 아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거기서부터 희망의 싹은 움트며 자라기 시작했다. 살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높은 곳의 사회적 위치로부터 밀리고 밀려나서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의 청소부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곳은 미군들이 출입하는 병원이었다. 사람들이 밀어냈던 힘만큼 그 힘을 밖으로 되돌려 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첫 번째로 한일이 영어로 대화하는 법을 익혔다.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미군들에게 반복했고 알아듣지 못해도 알아듣는 척을 했다. 그러다 보니 몇몇의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좀 더 지나 문장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영어로 대화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꿈은 진짜로 잘 때 꾸는 꿈이다.) 숱한 거절 감속에서 그 힘이 휘말리지 않고 이루어낸 최초의 성과였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늘 누군가가 밀어낸다는 감정에 휘말리면 속으로 외쳤다.
 

‘그래도 난 이 감정 에지지 않고 영어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 성과가 다른 좋은 직업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자신에게 들어왔던 힘을 밖으로 배출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영어로 말할 때만큼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스스로가 너무 근사해 보였다. 고개서 뻣뻣해지고 척추도 곧아졌다. 살면서 느끼는 처음의 성취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미군이라는 사람들과 곧 친구가 되었다. 거절감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이루어진 성취를 생각했다. 때로는 미군들 앞에서 허세도 부리곤 했다. 정치 이야기를 하며 ‘조지 부시’를 칭찬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는 사람이 그 사람 한 명뿐이었으니까....
그들이 조지 부시에 대해 학을 뗄 적에는 왠지 모를 우월감 같은 것에 빠지기도 했다.
 
때로는 미국 여인들 앞에서 영화배우 흉내를 내기도 했다. 감미로운 대사를 외워두었다가 그 여인들 앞에서 날려주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휴 그랜트’가 된 기분이었다. 정말 달콤했다. 거절감을 마주하는 순간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황홀했다.
 
여전히 떠오르는 거절의 역사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게 했다. 하지만 그 미약한 능력으로 외국인과의 대인 관계를 계속 넓혀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른 후, 더 이상 거절하지 않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
 
James는 형님이라 부르며 목욕탕에 같이 갔고
Zach은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으며
Emmi는 힘들 적에 안아주었다.
 
이룬 성과들은 정말 소소했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은 것도 아니었고 만족할 만한 부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절감을 향해 소리 지르며 나 또한 그 거절감의 역사들을 거절했다.
 
그랬던 사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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