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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06. 2020

에프킬라가 불을 뿜었다.

이것은 실화다.

내 친구 승맹이는 더위를 참 많이 탔다. 습기가 없이 아주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되는 2004년의 일이다. 달궈질 대로 달궈진 자취방에서 선풍기 하나로 버텼던 승맹이는 하루에도 찬물 샤워를 몇 번이고 해댔다. 그렇게 며칠이고 더위와 사투를 벌이던 승맹이는 자취방에서 매우 떨어진 읍내까지 버스를 타고 발품을 몇 시간이고 팔아 철물점에서 나일론 망과 조그만 못 그리고 각목을 사다가 학교 스튜디오를 작업장 삼아 3일에 걸쳐 미숙한 실력으로 모기장을 완성해냈다. 삐뚤빼뚤 모기장이었지만 완성된 그것은 8평 남짓한 승맹이의 자취 방문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런데 사고는 그 모기장을 3일에 걸쳐 힘들게 완성시킨 날 터지고 말았다. 모기장을 힘겹게 완성한 승맹이는 기분 좋게 자취 방문에 끼워 놓은 채 잠을 청했다. 나는 완성된 모기장을 구경하러 늦은 밤에 승맹이의 방으로 갔고 그때 나는 얼큰하게 취해있었다. 내가 모기장 밖에서 승맹이를 바라보자 승맹이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는지 나를 거절하는 눈빛을 보냈고 나는 그런 승맹이를 무시한 채 모기장을 뺐다가 승맹이의 방에 들어간 후 다시 모기장을 문짝에 맞추어 넣었다. 취기가 있는 나에게서 불안감을 느꼈는지 승맹이는 잠을 청하지 못한 채 계속 나를 예의 주시했다. 이불 위에 주저앉아 고개를 양 옆으로 돌려가며 흡사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처럼 나에게서 시선을 멈추질 않았다. 그러나 우려했던 사고는 이내 터지고 말았다.
 
취기에 정신이 몽롱했던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나일론 망사는 과연 불을 통과해도 멀쩡할 것인가?’
 
 
취기에 나는 나일론 망과 철망이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을 했다. 승맹이가 한 눈을 판 사이 나는 에프킬라와 라이터를 들고 모기장으로 향했다. 라이터에 불을 올리고 곧장 에프킬라를 누르는 찰나 승맹이의 외침이 들렸다. 절규에 가까웠다.
 
“안 돼!”
 
하지만 이미 크고 큰 화염은 나일론 망을 향해 발사되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말이다. 나는 얼른 화염 방사를 멈췄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모기장 정중앙에는 ‘신고배’만 한 큰 구멍이 생겨있었다. 나는 내 등 뒤에서 활활 타오르는 승맹이의 분노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있던 에프킬라와 라이터를 내팽겨 쳤다. 그리고는 문에 박혀있던 모기장을 빼내고 도주하려 했다. 그런데 모기장을 너무 강하게 박아놔서 모기장이 빠지질 않았다. 등 뒤를 보니 승맹이가 내가 내던져 버린 에프킬라와 라이터를 챙겨 들고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순간순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승맹이가 손에 든 그것들로 나에게 어떤 짓을 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모기장을 문에서 빼내려 했지만 공포감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난 뒤돌아서며 다가오는 승맹이를 보았다. 승맹이는 30cm의 근거리에서 라이터에 불을 붙인 채 나에게 에프킬라의 화염을 쏘기 시작했다.
 
“취~이익”
 
 

정말 그 강렬한 불길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두려웠다. 두려움에 떨며 승맹이에게 외쳤다.
 
“미안해!”
 
하지만 승맹이는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테란의 시즈탱크가 불을 뿜듯 내 몸을 향해 에프킬라가 화염을 토해냈다. 몸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살려줘!”
 
정말 살고 싶어 외쳤다.
 
“너도 당해봐!”
 
승맹이가 외쳤고 승맹이의 분노는 확고했다. 여러 차례 내 몸을 향해 불을 뿜었다. 개를 도축할 적에 나는 그을린 냄새가 내 몸에서 났다. 그제 서야 승맹이는 화력을 중단했다. 나는 승맹이와 엉겨 붙어 싸우고 싶었지만 또다시 불 맛을 볼까 봐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화력이 멈춰진 후 나는 승맹이를 앉혀놓고 한참을 떠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불로 태우냐?”
 
승맹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내 자취방으로 돌아와 분한 마음을 삭히며 자리에 누웠다. 팔뚝이 화끈거렸다. 가벼운 화상이었다.
 
다음 날 저녁이 지나 밤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승맹이의 모기장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야음을 틈타 승맹이의 자취방 문 밖으로 가보았다. 뚫어진 나일론 망 위로는 찢어진 연습장이 테이프와 함께 붙어 있었고 산들 바람에 연습장은 너풀 너풀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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