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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Nov 30. 2023

아일랜드 유랑기(6)

현지인 친구를 만났다.

한국에서 지낼 때 알게 된 아일랜드 여성동무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시오반이었고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고기를 먹으면 탄소 발생이 많이 돼서 지구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처자였다. 그래서 김밥을 먹을 때도 햄은 빼고 먹었다. 아일랜드로 가기 전 그녀에게 연락을 미리 해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약속한 날짜에 나를 만나러 먼 길을 와주었다. 오코넬 스트리트에서 만났는데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그녀는 내가 가보지 못한 더블린 곳곳의 명소를 구경시켜 줬다. 저 사진에 보이는 템플 바라는 곳이 꽤나 유명한 장소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오랜만의 선물로 한식을 사주고 싶었다. 우리는 먼 거리를 걸어서 한식당에 도착했고 비빔밥 두 개와 김치전을 주문했다. 그녀의 비빔밥에서는 고기가루를 뺴달라고 했다. 그녀는 된장국과 비빔밥 그리고 김치전을 맛있게 먹으며 하는 말이 한국에서의 기억들이 상기돼서 참 행복하다고 했다. 난 이미 햄버거와 빵 스파게티 같은 것들이 지겨워서 고개를 돌솥에 박은 채 허겁지겁 먹느라 별 생각이 없었다. 전에 가르마파마를 한 적이 있는데 그녀가 기분이 좋으라고 한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더러 휴 그랜트 같다는 말을 했었다. 유럽의 여자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니 기분이 참 좋았다. 현실세계에서는 연속의 거절 철퇴를 맞는 찐따지만 말이다. 

시오반과 거리를 걸으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영화'Once'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음악을 향한 꿈이 있는 가난한 두 남녀의 이야기 말이다. 트램이 오기 전에 들리는 종소리는 마음을 참 편안하게 했다. 우리는 그날 더블린 곳곳의 거리를 말없이 걸었다. 침묵이 주는 편안함이 우리의 우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골목을 보며 영화 'Sing street'가 생각이 났다. 주인공 코너가 이런 골목을 배회하며 밴드를 모집하고 라피나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를 뮤직비디오의 배우로 캐스팅하여 그녀와 함께 촬영을 하던 장면들 말이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좋은 장면과 생각들을 떠올렸다. 이제 골웨이로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었다. 그리고 시오반과 나는 골웨이에서 한번 더 만남을 갖기로 했다. 

시오반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기차역 방향까지 같이 걸었다. 골웨이로 이동할 때 기차를 탈지 버스를 탈지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고속버스를 타면 한결 수월할 것이라는 결론에 시오반이 모바일 티켓을 발권해서 나에게 보내주었고 그것은 식사에 대한 답례였던 거로 기억이 된다. 이렇게 더블린에서의 4번째 밤이 저물었다.


쓸쓸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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