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봉기와 위스키의 향연
오코넬 스트리트에 바리케이드가 쳐있고 연설 같은 것을 진행하고 있었다. 부활절 아침이었고 무장경찰들은 그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가방을 하나하나 검사했다. 테러 때문이었다. 아일랜드는 오랜 시간 영국의 식민지였고 독립을 위해 오랜 투쟁을 해왔다. 마치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처럼 말이다. 그중에는 무장투쟁세력이 있었는데 그들을 아일랜드 공화국군이라고 했다. 아일랜드가 독립을 하면서 강경파는 북아일랜드를 내줄 수 없다고 단언했고 유화파 사람들은 타협을 통해 북아일랜드를 넘겨주고 독립을 이루자고 했다. 이후로도 강경한 IRA들이 테러나 무장투쟁을 통해 영국을 괴롭혔고 그들이 테러리스트냐 아니면 정의의 전사들이냐는 설전이 오랜 시간 오고 갔다. 대처수상은 재임시절 아일랜드 공화국군 대원으로 의심만 돼도 발포하라는 정책을 폈고 블레어수상에 와서 극적인 화해가 그들과 이루어졌다. 최근 들어서는 그들의 무장활동들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나 같이 선동되길 좋아하고 돌아이 기질이 있는 내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면 대처수상은 제명에 못 죽었을 것이다. (농담)
아일랜드는 위스키의 나라다. 물론 오늘날 위스키 시장은 대부분 스코틀랜드가 장악을 했지만 우리가 원조라는 자부심은 아일랜드인 가슴속에 살아 숨 쉰다. 주류마켓에 구경을 갔었는데 정말 보지도 못한 아이리쉬 위스키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흔하게 팔리는 제임슨이라는 위스키도 에디션별로 다양하게 판매를 했다. 저걸 한 병을 사더라도 혼자 다 못 마시기 때문에 그냥 구경만 할 따름이었다. 판매원들은 매우 친절했고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띠었다.
물론 스카치위스키도 판매를 했다. 펍에서 큰 마음먹고 조니워커 블루 라벨을 한잔 먹어보려고 펍에 가격을 물어봤으나 한잔에 4만 원 정도 한다 해서 과감하게 포기를 했다.
또 다른 아일랜드의 상징! 부쉬밀이다. 맛본 적은 없다. 근데 가격은 한국보다 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민들이 좋아하는 술에 세금을 먹이지 말고 사치품에 세금을 팍팍 먹이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잘 굴러가겠지! 그리고 얼핏 들은 거지만 종교에 따라 선호하는 위스키가 다르다고 했다.
부활절에는 무작정 걷고 걸었다. 한인 교회를 찾는 이유도 있었고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를 돌며 사람들이 어찌 사는지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막상 찾아간 한인교회에서는 예배가 끝나 한국인들은 전부 돌아갔다. 어쩐지 교회방향으로 가는데 한 무리의 한국인 무리가 내려오더라니.... 참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난 더블린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신난 강아지처럼 마구마구 반가운 척을 했지만 그들은 나를 보고도 시큰둥하거나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기도 불편해했다. 내가 이상한 건가? 대부분 유학생들이었는데 영어를 배우러 온 나라에서 한국말을 쓰기 싫어서 그런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낯선 공원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공원은 참으로 고요했다.
이곳에 서서 한동안 호수를 멍하니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과 이별을 한 직후였던지라 꽃을 보며 그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녀는 나에게 아일랜드를 같이 가자고 했었고 난 유교보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난 유교 보이니까! 안된다. 꽃을 보며 든 생각은 그녀가 저 꽃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더욱더 그녀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녀는 떠나간 것을!
내가 걷고 걸어서 찾아간 곳은 아마도 더블린의 부촌이었을 것이다. 정원이 있고 주차장이 있고 방이 여러 개인 부촌말이다. 여기서 또 나의 상상력이 발휘되었다. 나는 저 주택의 도련님이다. 어려서 악당에게 부모님을 잃고 사회정의와 폭력 그리고 선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청년이다. 그러다 어느 날 어둠의 기사가 되길 자처하여 검은 복장에 검은 차를 이끌고 더블린 경찰들이 어쩌지 못하는 악당들을 하나 둘 처단한다. 비슷하지 아니한가? 브루스 웨인하고 말이다! 참 재미있던 게 대부분의 차는 일본차가 많았다. 독일차도 많았다. 근데 한국차는 많이 없었다.
참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주택들이다. 저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며 스파게티도 해 먹고 치킨도 해 먹고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이 다소 어둡게 보일지라도 마음에는 희망이 샘솟을 것 만 같다.
알고 있던 여성들의 선물을 위해 가기 싫었지만 가야만 했던 작은 명품관이었다. 가방 같은 것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한국에서 보던 제품과는 디자인이 많이 달랐다. 나는 형편이 어려웠던 취약계층이었던 관계로 립스틱 두 개만 사서 나왔다. 가격을 보니 한국보다 비쌌다. 다음 사진들은 여성동무들을 위한 눈요기를 위한 서비스 사진들이다.
(에르메스로 추정)
(무슨 브랜드인지 모름. 아는 분 답글 좀)
(루이비통으로 추정, 특이하게 브라운색이 아니다.)
(그 유명한 채널)
이제 더블린에서의 시간이 다 저물었다. 난 이제 골웨이로 간다. 저기서 괜히 권총이 있는 척하면서 바리케이드 넘어서 시장이 연설하는데 달려들면 난 타국에서 비명횡사하는 것이다. (왼쪽으로 연설하는 곳)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