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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Dec 03. 2023

아일랜드 유랑기(8)

골웨이로 가는 길!

영국을 향한 무장투쟁의 발발은 부활절이었다. 그래서 부활절 봉기라고 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전력 자체가 상대가 되지 않았고 많은 인명 피해가 아일랜드 군 쪽에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3.1절처럼 아일랜드인들도 부활절 봉기를 매년 기념하는 것 같았다. 

(연설이 이루어지는 시청 앞이다.)

골웨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차창밖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어렸을 적 집안이 가난해서 일주일에 두 번은 꼭

라면을 먹어야 했던 가정의 아이였는데 이제는 스스로 돈도 벌고 비행기도 타고 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던 나라에 와서 대초원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 것이 참 감사했다. 아덴라이 평원을 진짜로 눈앞에서 보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불렀던 아일랜드 민요에 등장하는 아덴라이 평원이 정말 눈앞에 있었다. 골웨이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버스를 잘 못 찾고 헤매자 아랍인으로 보이는 버스기사가 매우 불친절하게 버스 타는 곳을 알려줬다. 내가 부른 'Feilds of athenry'라는 곡은 아일랜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곡이다. 유로대회에서 축구팀을 응원하거나 혹은 럭비 국제대회에서 모두 목소리를 높여 응원가로 부르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셀틱이라는 구단의 응원가로도 사용되고 리버풀이라는 구단의 응원가중 하나다. 작가 참파노가 출세의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버스 안에서 소변이 마려워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일랜드의 고속버스 안에는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난 골웨이 도착할 때까지 참다가 동전이 없어서 화장실을 못 가고 사력을 다해 참으면서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팽개치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혁대를 푸는 찰나 허벅지까지 싸고 말았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니까 방광의 근육이 약해지나 보다. 

결국 10유로를 주고 그동안의 옷을 모두 세탁했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다고 어린아이처럼 완전히 다 싸버리는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뭐 그랬다. 골웨이에 도착해서 보니 그곳은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었다. 하루면 그곳을 다 돌아볼 수 있었고 역시나 많은 펍들이 있었다. 다만 더블린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드들이 술집 문 앞에 서서 잼미니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신분증 검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햄버거집)

골웨이의 장점은 물가가 더블린보다 싸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보다는 비싸지만 루마니아 아주머니가 만들어 주는 햄버거가 콜라랑 감자칩이랑 해서 1만 1천 원 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더블린에서 자주 먹었던 빅맥보다 훨씬 정갈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단점을 말하자면 골웨이에 초밥집은 있었지만 한식당은 없었다. 그리고 숙박비가 더블린보다 쌌고 조식이 무료였다. 뷔페식으로 원하는 대로 퍼다가 먹으면 되는 거였다.

골웨이 근처에는 바다가 있었다. 타국에서 바라보는 해안은 어떨지 궁금했다. 갈매기 소리가 들렸고 가끔은 뱃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저녁에 되자 더블린에서 느꼈던 쓸쓸함과는 다른 쓸쓸함이 느껴졌다. 공허가 느껴졌지만 그 공허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친근한 외로움이랄까? 그 사치와도 같은 기분이 참 좋았다. 저곳을 걸어 다니면서 작은 주택을 하나 발견했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작은 주택이었는데 건물과 건물사이의 틈에 지은 작은 집이었다. 그 안에는 분명 행복이 살 것 같았다. 

이제 골웨이의 밤이 시작되려 한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골웨이의 밤은 더블린의 밤보다 신나고 즐겁다는 것이었다. 저곳에 많은 펍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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