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골웨이에서 첫날이 밝았다. 골웨이에도 관광명소가 몇 군데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골웨이 대성당이었다.
보는 바와 같이 성베드로 성당이나 노트르담 성당처럼 대규모는 아니다. 그렇지만 저곳의 내부를 보았을 때 장엄함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우산을 챙겨가지 않았던 나는 빠른 걸음으로 이동을 해서 성당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았고 원하는 만큼의 기부를 할 수 있었다. 들어가서 성당 안에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조용히 울려 퍼졌고 몇 명의 독실한 천주교인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중세에 지어진 교회로 교회예술의 집약체를 볼 수 있었다. 곳곳에서 보이는 모자이크와 유리들이 정말 멋있었다. 사람이 이런 것을 그리고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을 지은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오묘하시고 대단하신 분인가를 느꼈다.
매주 주일마다 이곳에서 미사를 여전히 집례 하는 것 같았다. 동서남북으로 교회의자들이 있고 중앙에 강대상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저 시대에 살던 평민과 하층민들은 교회가 저렇게 웅장하게 지어지도록 얼마나 많은 노동력과 물질을 제공했을 것이며 제공을 넘어 교회와 영주에게 얼마나 큰 착취를 당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교회는 그들의 눈물과 피위에 건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엇인가? 하면 바로 파이프 오르간이다. 예전에 미군부대에서 일할 적에 부대소속 정직원으로 일하던 아저씨 한분이 있었는데 그분 따님이 독일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전공했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독일 끝에서 독을 끝으로 레슨을 받으러 다닌다고 말이다. 물론 그 아저씨 앞에서는 칭찬을 했지만 같은 예술을 공부했던 나로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유학 다 끝나고 한국 들어오면 뭐 먹고 살려나?'라는 생각 말이다. 종종 성악을 했던 분들도 유학을 하고 교수님이나 극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레슨이나 혹은 간혹 초청되는 음악회에서 지불되는 비용으로 살던데...(그분들은 절대 슈베르트 스타일의 파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무덤을 열고 나오시는 예수님이다. 사람들이 흔히들 기독교를 생각하면 좁은 종교적 의미에서 기독교를 생각하곤 한다. 성경은 종교적 경전이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다면 이건 좀 다른 문제가 된다. 좁은 의미의 선을 행하고 내세를 약속하는 종교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합리적 혹은 긍정적 의심이 생기게 된다. 인류 역사이레로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예수님뿐이니 말이다. 단순히 사후세계를 약속하는 의미로써의 기독교가 아니라 부활이 역사 가운데 있었다면 실존적인 즉, 손에 만져지는 기독교가 된다는 말이다. (기독교를 아예 부정하고 싶은 사람은 구글에 부활이 거짓인지 검색해 보라!)
(천국의 열쇠를 받는 베드로)
골웨이 대성당을 탐방하고 나오는 길에 여전히 비는 내렸다. 또 큰 근심이 밀려왔다. 빵과 고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시간이 왔으니 말이다. 맵고 칼칼한 국물이 마시고 싶은데 없었다.
그래서 반은 성공했다. 매운맛의 파스타를 먹을 수 있어서였다. 그냥 짬뽕을 먹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집어 먹었다. 비도 오고 그래서 짬뽕이나 칼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면 그만인데 어쩔 수 없었다.(골웨이에 한식당을 차리면 대박을 좀 치려나?)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