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해의 불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팩으로 된 두유에 빨대를 꽂아 쪼르륵 소리를 내며 힘껏 빠는 것이 영양 섭취의 전부였다. 그 쪼르륵 거리는 소리는 꽤나 불편했다. 호흡을 한 쿰 들이킨 뒤, 있는 힘을 다해 빨대를 빨았기 때문이었다. 생의 마감을 며칠 남기지 않았던 그는... 온몸이 마른 가지처럼 앙상했다. 그의 거처 또한 병원이 아니었다. 회생의 희망조차 그곳에서도 놓아버렸기 때문에 그의 거처는 자그마한 단칸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마지막 인사를 하러 살고 있는 마을을 벗어나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한 시간씩 두어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많이 시골이었던 삼촌의 집으로 말이다. 축사에서 냄새가 많이 나는 시골 마을이었다. 그곳의 단칸방에서 아버지는 생의 마감을 준비하고 있었고 할 수 있는 영양섭취라고는 빨대를 두유에 꽂아 힘껏 빨아먹는 것이 전부였다. 일생을 술과 함께 보낸 그는 벌이라도 받듯이 병든 몸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병든 몸 가운데서도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각오하고 술을 마셨다. 그랬더니 진짜 죽음의 장소로 갈 날을 며칠 남기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똑바른 정신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늘 술에 취해 있었기에 아내나 자녀들에게는 망상과도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폭력을 동반하기도 했었기에 아이에게 아버지는 불안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열한 살의 아이가 짧은 삶을 돌아보면 그와의 좋았던 기억은 아예 없었다. 차라리 없는 존재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적이 훨씬 많았다.
가장 무서우며 슬펐던 기억은 그의 술 심부름을 하다가 실수로 병을 놓쳐 소주를 깨뜨리고 세상의 온갖 저주와 욕을 들어야 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도 없었고 자신의 아내와 가정에 대한 부양의 책임감도 없었다. 오로지 소주를 향한 열망뿐이었다. 그런 사람의 삶에 재앙과 저주는 당연했으리라...
그렇게 그는 아이의 눈앞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모습을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자신의 삶이 후회가 되었는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여 흐느낄 뿐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그에게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미움의 말을 한마디도 꺼내어 보지 못했다. 그냥 마음에 없는 웃음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실패된 삶의 정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듯 아이에게 한마디의 말을 건넸다.
"공부 열심히 해라!"
그 말이 아이의 마음에 세겨진 일은 없다. 그 뒤로도 아이는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남자는 세상에 태어난 지 서른여덟 해만에 세상과 작별을 했다. 아이는 커가면서 자신도 그 서른여덟의 해를 넘기지 못할 거라는 강박과 불안이 찾아오곤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을 기억한다. 안방 안에 전화기가 울렸고 그 전화를 받은 외할머니는 아이에게 너의 아버지가 죽었노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듣고 슬픔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그렇게 슬프지 않다는 것도 의아했다.
아이는 살고 살면서 서른여덟의 해를 늘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보냈고 서른여덟 해가 넘어가고 마흔의 해 그리고 그 이듬해가 찾아오며 불안에 대한 기억이 넘치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 아버지는 암환자였지...'
그의 아버지는 암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