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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Sep 21. 2020

9살의 용서

따뜻하고 달콤한

100원은 참 큰돈이었다. 1989년의 나에게는 그랬다. 그 당시 100원이면 불량 식품 50원짜리 두 개를 사 먹을 수 있었고 어린이들의 합법적인 도박인 뽑기를 두 번이나 베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 말로 부르는 쭈쭈바라는 것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녀석으로 말이다. 용서에 대한 이야기다. 분명 100원짜리만큼의 용서였지만 살면서 너무나 크고 너그러운 용서에 대한 기억이다.
 
1989년의 우리 학급은... 그러니까 9살의 우리 학급은 그랬다. 남자가 여자에 호감이나 친밀감을 가진다는 것은 부끄럽고 수치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혹여나 그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녀석에게는 계집애라는 낙인과 함께 며칠이 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의 무리들은 그들만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여자애들의 고무줄을 끊거나 여자애들의 치마를 과감하게 들추곤 했다. 그래야 진정한 남자요 우정 어린아이로 인정되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쁘고 고운 아이일수록 우리들의 행동은 더욱 과격했다. 사소한 말이라도 섞다가 다른 무리들에게 걸리는 날에는 그 녀석은 고추를 떼야만 할 것 같은 수치심을 경험하며 종일 놀림거리가 되었다. 선생님이 짝지어준 짝꿍과 따뜻하게 대화를 하는 것도 남자아이들 무리에서 강제 이탈되는 징계감이었다. 그런데 그 징계를 내가 받을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평소 학용품을 정갈하게 가지고 다니지 않던 나는 필통엔 연필 두 자루와 지우개만 있었다. 색연필이나 예쁜 필기구를 사는 돈은 어린아이들의 합법적인 도박으로 탕진한 지 오래였다. 그날은 공책에 산수 문제를 풀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구구단을 멋지게 외울 적에 나는 그 구구단의 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었다. 그러니 두 자리 수의 곱셈은 나에게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선생님이 곱셈 문제를 칠판에 써놓고 뒷짐을 지며 교실을 돌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아이들의 공책을 확인하며 곱셈을 잘 푸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잘 풀면 고개를 끄덕였지만 못 푸는 아이들에게는 아주 매서운 징계를 내렸다. 나와 내 친구들 대부분은 매서운 징계의 대상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날도 생각 없이 공책에 곱셈 문제를 받아 적고 열심히 푸는 척만 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흐를 것이고 선생님은 나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려니 싶었다.
 
내 짝꿍은 참 예뻤다. 눈도 컸고 부모님이 사주신 것으로 보이는 레이스가 달린 예쁜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처음에 나와 짝꿍이 되었을 때는 망국의 한이 얼굴에 서려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체념하는 듯 평범하게 지냈다. 공부도 참 잘했다. 그래서 곱셈쯤이야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적어 내려가듯 막힘없이 풀어댔다. 그렇지만 나는 문제를 보고 또 보아도 도저히 십 단위가 넘어가면 머릿속에서 수가 맞추어 지질 않았다. 손가락을 사용해봐도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20개뿐이었으니 죽을 맛이었다. 결국 그날 선생님은 나의 그런 모습을 보았고 내가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고야 말겠노라고 다짐한 듯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손에 땀이 쥐어졌고 간담이 서늘했다. 결국 내가 문제를 풀지 못하면 나의 볼은 얼얼하도록 얻어터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내 짝꿍 아이가 끼어들며 나의 문제 푸는 것을 도왔다. 내가 구구단을 안다는 듯 나의 공책에 이것저것을 끄적거려 주었고 나의 짝꿍 아이의 지혜로 극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의 친구 무리들이 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자기들 눈에는 이 로맨틱하고 극적인 상황을 보고야 만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고 그 하이에나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어 일제히 손가락질을 하고 시작했다.
 
“고추 떼라! 고추 떼라! 넌 계집애야! 왜냐고? 네 짝꿍하고 엄청 다정하니까 말이다!”
 
“아니야! 난 가만히 있는데 내 짝꿍 아이가 혼자 그런 거라고!”
 
나는 소리를 높여 말했다.
 
“고추가 떨어졌나 만져볼까?”
 
이렇게 말하며 여러 녀석들이 나의 중요 부위를 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녀석들이 나의 중요 부위를 만진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평소 적대시하던 짝꿍 아이에게 그런 호의를 받고 더 나아가서 이런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증명을 해야만 했다. 나는 여전히 남자아이들의 무리이며 우리의 우정은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나는 아이들이 보라는 듯 성큼성큼 내 짝꿍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뒤로 급작스럽게 다가가서 그 아이의 치마를 보란 듯이 들췄다. 그 순간 그 짝꿍 아이는 비명을 질렀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남자아이들의 무리 속으로 돌아와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한 것에 대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나의 무리 속에 다시 들어와서 그 여자 아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즐기려 해도 평소처럼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 같은 주체할 수 없는 죄책감이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렇지만 나는 무리 속에서 그 죄책감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또 놀림감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수업을 시작하는 종이 울렸고 여전히 내 짝꿍 아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후에 눈물은 멈췄지만 짝꿍 아이의 눈가의 눈물 자욱이 내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누어 놓았다. 그 날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랬다.
 
‘나쁜 놈’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그날 무리들과 함께 하교를 하지 않았다. 학교 공터 그네에 앉아서 내가 한 짓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 보려 해도 그럴 수 없었고 내 짝꿍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책가방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가슴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학교 앞 슈퍼마켓에서 무언가를 사고 있는 내 짝꿍 아이를 보았다. 쭈쭈바였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후 짝꿍 아이도 혼자였다. 나는 조심스레 짝꿍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다가는 갔지만 미안하단 말을 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쭈뼛거리고 있는 나를 본 그 아이는 갑자기 동전 지갑에서 100원짜리 하나를 더 꺼내더니 쭈쭈바를 하나 더 샀다. 그러더니 수업시간에 보았던 슬픈 표정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고 상냥한 얼굴로 나에게 이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쭈쭈바가 나의 것이란 것을 말이다. 그 여자아이는 따뜻하고 예쁜 얼굴로 나에게 쭈쭈바를 건넸다. 나는 멈칫거리다 받아 들고는 얼른 입으로 넣었다. 약속한 것처럼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나는 알았다. 이 아이는 그처럼 악독한 짓을 한 나를 용서할 뿐 아니라 수업시간에 베푼 호의 보다 더 크고 따뜻한 호의를 베풀기로 한 것을 말이다.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 내가 용서해달라고 말하기 전 이미 용서하며 따뜻함을 베푼 그 짝꿍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포근함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냥 내 짝꿍 아이가 베푼 용서를 마음껏 누리기로 했다. 정말 달콤했다. 그 여자아이의 마음인지 쭈쭈바인지 몰랐지만 너무 달콤했다. 나는 나란히 걸으며 다른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구구단 다 외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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