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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Oct 28. 2020

자랑

끝판 대장

손바닥에 자꾸 땀이 고여 오락기 버튼을 눌려도 계속 미끄러진다. 방향을 똑바로 가야 하는데 긴장돼서 조종기를 놓치기도 마찬가지다. 오늘 끝판대장만 잡으면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 소년의 마음은 뛰고 또 뛰었다. 알 수 없는 희열이 소년의 가슴속을 파고들었고 주위를 둘러쌓고 있는 아이들의 기대감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그 또한 기분이 좋았다. 오락을 할 때만은 소년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한글을 잘 읽을 줄 몰라 반 아이들의 조롱도 잊을 수 있었고 점심에 다 같이 도시락을 뚜껑을 열적에 반찬이 늘 김치라서 아이들이 보내는 경멸의 눈초리도 잊을 수 있었다. 오락을 할 때만은 소년은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소년을 둘러싼 아이들 모두가 소년을 우러러보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잊을 수 있는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버지의 불룩 나온 배였다. 소년의 아버지는 간암이었다. 살 가망이 없었고 가족들 또한 그렇게 받아들였다. 살리려 한들 살릴 돈이야 진즉에 없었다. 12살의 소년은 그 사실이 숨 못 쉬게 고통스러웠다. 집에 돌아가면 늘 어두운 색이 집안 곳곳에 가득했다.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었고 아버지의 수발을 드는 어머니의 얼굴에도 어두움이 가득했다.
 
“저녁밥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지! 또 오락실을 갔었구나!”
 
오락실에서 기분 좋게 돌아오면 어머니가 마음에 있는 있는 대로 쥐어짜 내어 내뱉는 핀잔이었다. 그런 핀잔에도 소년의 마음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 그런 어머니의 핀잔에 두렵게 되지 않은지 오래였다. 살색이 검은 도화지처럼 변해버린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팔뚝의 피부 위로는 주삿바늘이 들어가 있었고 노란색 액체가 봉지에 담기어져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액체는 소년의 아버지를 살리는 액체는 아니었다. 소년도 알았다. 저 액체로는 아버지를 살릴 수 없으며 저 액체를 아무리 몸에 넣어도 아버지는 때가 되면 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소년은 애써 그날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을 생각하지 않고 또 미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락실에 들락거렸다. 소년의 어머니는 TV의 너머로 차려진 밥상 위로 밥을 한 공기 얼른 떠서 상위로 올렸다.
 
“얼른 먹어라... 식기 전에...”
 
소년은 어머니의 목소리 속에서... 비록 쥐어짜 내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소년을 향한 사랑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이 굳어질 대로 굳어져 버린 소년의 마음에 한줄기 비와도 같았다. 소년은 아버지 앞에서 밥을 먹는 것을 싫어했다. 냄새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화장실을 갈 수 없었다. 그냥 있는 자리에서 똥오줌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냄새보다 더 고약했던 냄새는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였다. 아버지가 병을 앓고 난 뒤로부터 그 냄새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하지만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버지 앞에서 무덤덤하게 있는 밥을 목으로 넘기는 것이었다. 그게 그나마 소년이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저녁밥을 욕지기를 참아가며 다 먹고 난 소년은 오늘도 끝판대장을 이기지 못한 분한 마음을 떠올렸다.
 
‘끝판 대장을 이겼으면 오늘 저녁에 마음이 좀 더 편안했을 텐데...’
 
끝판대장을 이기고 돌아왔으면 집안에 차오르는 우울한 기운을 소년은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도 소년은 끝판대장을 이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동네에서 어떤 아이들도 끝판 대장을 이긴 일이 없었다. 누워 아버지의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잠을 청하는 소년은 내일을 기약하며 끝판 대장을 꼭 이기리라 다짐하고 다짐했다.
 

 
소년은 날이 밝자 졸음에 허덕이면서 아버지의 소변을 받아내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오늘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는 어머니를 확인 한 뒤 옆 방 어머니 화장대 서랍을 열어 있는 동전들 확인하고 하나를 슬쩍 집어 들고 주머니에 재빨리 넣었다. 소년은 학교로 향하며 자신의 옷에서 냄새가 안 나는가 하여 킁킁거렸다. 그렇게 학교를 가며 소년은 오늘은 끝판대장을 이기리라 다짐했다.
 
‘끝판 대장을 이기면 반드시 아버지에게 알려줄 거야! 그래서 나도 잘하는 게 있다고 자랑을 할 거야! 우리 동네 애들보다 더 잘하는 게 있다고 말을 할 거야!’
 
그랬다. 소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 줄 만한 것이 없었다. 한글은 5학년이 되도록 잘 읽지를 못했고 싸움도 시원찮았다. 하지만 소년은 오락으로 누구도 이겨본 적이 없는 끝판대장을 이기면 아버지에게 그래도 내가 잘하는 게 있노라고 자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여지없이 오락실로 들어간다.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은 꼭 끝판 대장을 잡겠노라고 다짐하며 훔쳐온 동전을 오락기 속으로 밀어 넣었다. 늘 여느 때와 같이 끝판 대장을 마주했다.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달려들어 보지만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평정심을 잃어 손에 자꾸 땀이 나서 보턴을 놓치고 조종기를 놓치다 보니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그렇게 끝판 대장에게 패배를 또다시 경험하자 이른 아침에 엄마의 화장대에 훔친 동전으로 인해 패배의 마음과 죄책감이 소년의 마음으로 동시에 밀고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도 멀다고 소년은 느꼈다. 아니다. 소년은 이 길이 계속돼도 좋으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멀고도 먼 길에 결국 집이 기다리고 있었고 어제보다 더 어두워진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엄마는 어디 갔어?”
 
아버지에게 좀처럼 말을 걸지 않는 소년이 물었다.
 
“장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버지가 대답했다.
 
“오늘은 끝판 대장을 이길 수 있었는데....”
 
소년은 이 말을 무심결에 하고도 스스로 자지러지게 놀랐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끝판 대장을 이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것이었다.
 
“끝판 대장?”
 

아버지가 가쁜 숨 너머로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응! 새로 나온 오락이 있는데 엄청 어려운 게임이야! 근데 끝판 간 사람은 우리 동네하고 우리 반에서 아직 나뿐이야!”
 
소년은 될 대로 되라며 곧이곧대로 이야기를 해버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의 침묵이 잠시 흘렀다.
 
“한 번하는데 얼마인데?”
 
여전히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아버지가 물었다.
 
“응! 백 원”
 
어쩌면 아버지가 동전 몇 개를 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소년의 기대감은 들어맞았다. 거동을 평소 못하는 아버지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수액이 걸려있는 옷걸이에서 바지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백 원짜리보다 큰 은빛 동전을 꺼내보였다.
 
“이거면 되냐?”
 
오백 원짜리 동전이었다. 그 보다 더 기쁜 건 동전을 건네며 보이는 아버지의 미소였다. 소년은 잽싸게 동전을 낚아채며 말했다.
 
“아빠! 내가 얼른 오락실 가서 끝판 대장 이기고 올게!”
 
말을 전하기 무섭게 소년은 동네 오락실로 달렸다. 오락실로 들어가니 동네 아이들이며 반 아이들이 오락실 안에 가득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소년이 좋아하는 오락은 비워져 있었으며 소년이 그 자리에 앉자 보란 듯이 아이들이 둘러쌓기 시작했다. 소년의 마음가짐은 여느 때와 달랐다. 오늘은 반드시 이기리라는 무한한 희망이 소년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주위 구경꾼 아이들도 일심동체가 되어 소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의 아이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하는 응원이 오늘도 다시 소년을 끝판 대장 앞으로 이끌었다. 원수와도 같은 끝판 대장이 다시 오늘 소년을 만나기 위해 나타났다. 소년은 양 손바닥을 쭈욱 펴고 바지에 문질러 땀을 닦아냈다. 그곳 아이들의 호흡 전부가 소년의 마음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평소 느껴보지 못한 우쭐한 마음이 내내 마음속으로 맴돌았다. 그 우쭐한 마음이 소년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우쭐한 마음에 끝판 대장이 눌렸는지 기대와 다르게 힘없이 소년의 보턴에 끝내 나가떨어졌다. 드디어 끝판 대장을 이겨버린 것이다.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고 아이들은 동경의 눈으로 소년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 환희를 느끼다가 소년은 이 소식을 문득 아버지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박차고 오락실에서 뛰어나와 소년은 온갖 기쁜 상상을 했다. 소년도 잘하게는 있노라고 아버지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그렇게도 멀게 느껴지길 바랐던 길이 단 숨에 내달리도록 짧기만 하다 적어도 오늘 저녁밥은 냄새가 나도 아버지에게 자랑을 늘어놓으며 맛있게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만 하다. 소년은 달리고 또 달렸다. 드디어 저 멀리 소년의 집이 보인다. 그리고 집에 보지 못했던 밝은 물체도 보였다. 소년의 몸 반 만한 노란색 등불이 밝게 빛을 내며 소년의 집 문 앞에 걸려있다.
 

 
1991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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