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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Oct 20. 2020

현대인

상상의 나래


 
현대인은 나이를 지긋이 먹었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한 세월이 꽤 오래되었으니 나이에다가 그 세월을 더한 만큼이다. 청년이 되어서부터 오늘을 당장 살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당장 필요한 돈을 충당하기에 좋은 일은 이만한 것이 없었다.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벽돌을 허리에 들어 나르고 모래를 퍼 나른 현대인의 몸이 무척이나 뻐근하고 곤고하다. 때때로 드럼통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몸을 녹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 바로 소주였다. 오후가 되면서부터 목으로 넘기는 소주의 맛이 더욱 간절해진다. 조금만 더 일을 한 뒤 일당을 받고 퇴근을 하면 소주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일당은 15만 원이었다. 현대인의 마음에 그 돈은 꽤나 묵직하고 덩치가 컸다. 수수로 1만 5천 원을 제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너무 묵직한 나머지 일당을 받을 때면 늘 기분이 좋았다. 흰 봉투 속에 보이는 지폐가 보이면 그 돈은 그날의 피로를 멀리 달아나게 만들었다.
 
현대인은 힘이 빠질 대로 빠져버린 다리를 작업화와 함께 끌며 역사 앞 허름하고 낡은 포장마차로 향한다. 그 시간이 되면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상쾌한 마음이 현대인의 마음속에 찾아든다. 자신에게 주어진 돈은 7천 원이다. 소주 한 병 3천5백 원에 매운 떡볶이가 3천5백 원이니 그 돈이면 퇴근 후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그 시간만큼은 현대인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노동을 제공받는 자로 역전이 되는 유쾌한 시간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술잔을 마주할 동료가 없다는 것인데 그럴 때면 현대인은 친구보다 친구 같은 스마트폰을 열고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흘러간 노래나 영상들을 찾아보며 마음속 깊이 감춰놓았던 옛날의 감정들을 마주했다. 이내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 감정들이 더욱더 반가워진다. 그럴 땐 조금씩 병에서 줄어가는 소주가 아깝기 그지없었다. 술병에서 술이 줄어가는 것이 아쉬워 한 병을 더 시킬까 하다가도 이내 한 병을 다 마셔버리면 골이 아파 더 마시지는 못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병을 더 마셔버리면 현대인의 집사람에게 못할 일을 해 버리기 때문에 그렇지 못했다. 계산을 치르고 나면 아직도 주머니에는 12만 8천 원이 있다. 아직도 주머니 속의 돈이 묵직하여 기분이 좋기만 하다. 현대인은 그 돈을 집사람에게 고스란히 가져다준다.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렇게 집사람에게 가져다주면 집사람은 둘이 지내는 단칸방의 월세를 다른 봉투에 모은다. 그리고 시장에서 찬을 사다가 아침과 저녁에 먹을 현대인의 밥을 차린다. 그렇게 시계가 태엽을 맞물리는 것처럼 돈이 태엽처럼 맞물리는 시간들을 산지가 꽤나 오래되었다.
 
현대인과 집사람이 나이가 있는 만큼 병원비가 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는 만들어 놓고 절대 사용하지 않기로 한 신용카드를 쓰는 날이었다. 그렇게 한 번씩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나면 둘은 허리를 바짝 졸라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고 나면 다시 하루를 숨 쉬고 살수 가 있었다. 다행히도 두 사람을 빚더미에 올려놓을 만큼의 병원비는 살면서 아직 생기지 않았고 큰돈이 들어갈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현대인의 가장 행복한 시간은 포장마차 안에서였다. 소주가 한 잔 몸속을 비집고 들어가고 또 한 잔 비집고 들어가 취기가 오르면 나이가 지긋이 든 현대인도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술이 현대인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면 현대인은 옛 생각을 하곤 했다. 집사람이 아름다운 처녀였고 현대인 스스로가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을 때를 말이다. 그 어린 남녀의 사랑의 감정을 끄집어 내 마음의 혀에 넣고 음미를 하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다른 즐거운 상상은 현대인도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정치적 소견을 가지고 나쁜 정치인들을 마음껏 욕할 수 있었다. 그때만큼은 현대인도 저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듯싶었다. 때로는 상상 속에서 멋진 사장님이 되어 직원들 앞에 넥타이를 매고 직원들이 사기를 북돋아주는 근사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삶을 산다면 신용카드를 장롱 속에 숨겨 두고 한 숨 졸이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따라서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인은 그 꿈은 너무 멀리 있고 이루려면 지나온 세월이 있기에 이내 취기 가운데서도 털어버리고 만다. 그러면 다른 근사한 상상을 대신하고는 했다. 바로 공사 현장의 관리소장이 되어보는 상상이었다. 일당이 아닌 월급을 받았고 근사한 집과 가정이 있었고 올바르게 커주는 자녀들이 있었다. 그 관리소장은 직장에서는 혀의 매서운 채찍은 언제고 내려쳤지만 아마 가정에서는 꿀보다 달콤한 말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할 것이리라. 취기가 두통으로 바뀔 때 즈음 소주는 이내 동이 난다. 한 병만 더 마시면 더 좋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 같지만 그 기쁨도 집사람과의 약속을 위해 떨쳐버린다.
 

 
다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묵직한 돈을 작업복 속에 넣고 길을 걷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작업화와 걷는데 유독 작업화 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 내려다보니 작업화가 가볍다. 밑창이 떨어졌다. 작고 깊은 바늘 같은 근심이 현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작업화를 사려면 신용카드로 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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