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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Dec 29. 2021

크리스마스 캐럴

행복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은색 봉지 속에는 소주가 들어있었다.  누추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직업은 없었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소주의 값을 지불하며 그것을 봉지 속에 담곤 했다. 그것만 있으면 잠시 동안이지만 현실과는 다른 아름다운 시간이 그를 맞이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이 없던 그에게 그보다  효과적인 친구는 없었다. 무직이라는 그의 처지도 아들에게 볼품이 없는 아버지라는 현실도 모두 바꾸어주는 진귀한 친구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그는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 더욱더 볼품없어지는 현실과 달리 소주는 그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친구로 다가왔다. 나는 그런 아버지 옆을 지키며 소주를   얻을  있는 과자를 삶의 낙으로 여기며 지냈었다.

 

어렸던 나는 아직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었다.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몰래 내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주고 다른 어린이들을 위해 떠나는 산타클로스 말이다. 아이들과 산타클로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이야기로 나누었던 기억이 났다. 누구는 게임기가 갖고 싶다고 했고 누구는 인형이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동화책이 갖고 싶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동화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어린 나의 삶의 이야기가 되길 간절히 바래서였는지 나는 동화책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매년 그러했듯이 나의 친구들을 산타는 방문을 했지만 나에게는 와주지 않았었다.

 

아버지가 소주를 사랑스럽게 즐기던 그 해 겨울에도 여전히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산타가 분명 나를 찾아와 줄 거라는 굳은 믿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겨울보다 더 차갑고 추운 현실을 이기게 해 줄 유일한 희망이란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 희망마저 버리면 나는 고장이 나 버릴 것 같았다. 마음이든 육체든 말이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그날도 소주를 사랑스럽게 마시고 있었다. 소주를 살 때 얻은 과자를 추운 이불속에서 씹으며 나는 말했다.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동화책을 선물로 주었으면 좋겠어!”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동화책이 갖고 싶구나? 그런데 산타는 없어!”

 

아버지가 취기 어린 목소리로 절망스럽게 이야기했다.

 

“아니야! 산타할아버지는 있어! 내 친구들도 다 선물을 받았다고 했어! 나만 못 받았어!”

 

순간 아버지에 대한 화를 참지 못했던 내가 소리쳤다. 소리를 내고도 이내 겁에 질려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네 친구들이 받았다는 그 선물들 말이지... 다 걔들 부모들이 사다가 준거야! 감춰놨다가 주는 거라고! 그래서 산타는 없다는 거야!”

 

솔직히 짐작했던 일이 사실이었다는 말이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자 억장이 무너졌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은 더 추워졌다. 그런데 추워진 만큼 애석하게도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싶은 현실들이 아버지의 말과 함께 더욱 비참하게 내 앞에 서서 나를 비웃고 있었다. 더욱 동화책이 보고 싶었고 그 속으로 들어가 그 속의 행복들과 손을 잡고 싶었다. 간절히 그러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의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묘한 미소와 함께 계속해서 입에 소주를 털어 넣을 뿐이었다.

 


 

이윽고 크리스마스 전야가 다가왔다. 나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산타클로스가 우리 집 단칸방을 찾아와 주길 간절히 바랬다. 그러면 아버지가 나를 비웃어 준만큼 내가 아버지를 비웃어 줄 수 있고 여전히 나에게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행복이 있노라고 말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정 12시 이전에는 산타클로스가 와주어야 했다. 하지만 벽시계가 자정을 향해 갈수록 단칸방의 공기는 더욱 외로워졌다. 그렇게 나는 산타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랬다. 마음 저 구석에 부정하고 싶던 사실이 말이다. 사실이 아니라 믿고 싶었던 사실이 아버지의 말과 함께 나에게 손을 내밀며 이젠 나를 잡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실망이 가득한 나의 표정을 보던 아버지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장롱을 열어 무언가를 뒤적거리며 꺼내기 시작했다. 책이었다. 이내 그 책을 내 앞에 던지며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

 

여전히 익살스러운 웃음을 취기와 함께 보이는 아버지였다. 책의 이름은 소공녀였고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랬다. 아버지의 말대로 산타는 없다는 사실이 자명하게 나에게 각인이 되었다. 그날의 감정을 다시 짚어보면 행복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 모르겠다. 동화책을 얻었다는 기쁨의 감정 어디와 산타가 없어서 나의 행복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슬픔의 감정  어디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산타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산타는 나에게 여전히 행복은 너에게 손을 내밀고 있노라고 말하러  것이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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