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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19. 2023

잡종견 죽이기(소설)

비상

아마도 그 여인의 스트레스는 혼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자서 지내는 억울함에서 오는 것 같았다. 말에는 늘 짜증이 섞여있었고 주로 표현되는 감정은 분노였다. 그녀가 직장에서 얻어가는 벌이를 보자면 풍족함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그녀는 은행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은행의 용역원이었다. 정직원도 아닐뿐더러 고객이든 은행원이든 누구든지 하대를 해도 하소연할 곳 없는 그런 용역원 말이다. 고객으로부터 오는 하대는 견딜 만했다. 그렇지만 은행원으로부터 오는 하대는 견디기 힘들었고 더욱이 분노를 마음에 가득 가지며 살아가는 그녀의 하대는 훨씬 날 난처하게 했다. 나는 항상 분석했다. 그녀의 분노는 어디서 올까? 하고 말이다. 조금 짓궂게 짐작해 보자면 성욕을 채울 수 없어서 오는 분노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이미 성욕을 해결한 것을 넘어 출산을 하여 어엿한 학부형이 되었는데 그녀는 그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채 세월을 허송하고 있었다. 그녀의 또래 친구들이 아이를 키웠다면 그에 준하게 그녀는 개를 키웠다. 그리고 그 개의 존재만이 그녀의 갈증을 달래주는 유일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핸드폰은 그 개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었고 그녀가 남는 시간에 하는 인터넷 쇼핑은 개의 사료라든가 유모차 혹은 간식 및 옷 같은 것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나는 좀처럼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인터넷으로 쇼핑을 할 적에는 만연한 미소를 보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은행에 붙어서 허드렛일을 하며 밥을 벌어먹던 나는 종종 고객들의 잔돈을 바꿔주곤 했다. 고객에게 몇 만 원을 천 원짜리로 교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녀에게 가서 넌지시 부탁을 했다. 그렇지만 일순간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짜증과 분노를 나에게 표출했다.

 

“지금 나 일하는 거 안 보여?”

 

그녀가 일하는 것은 아주 잘 보였다. 그걸 못 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고객의 부탁을 중간에서 들어주려 하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화가 많이 나서 같이 쏴 붙여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나에게 경제의 공급원이 사라질 우려가 있는 탓에 꾹 참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녀의 분노를 그대로 흡수하여 그녀가 키우는 개를 죽이기로 다짐했다. 그녀의 개는 소형 잡종견이었다. 이름은 폴리였고 암컷이었다. 듣기로는 슬개골에 문제가 생겨 대학병원 수의과에서 천만 원을 들여 수술을 해주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직장에서 매일 저녁 아파트 단지에서 개를 산책시킨다고 들었고 잡종견 견주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한다고 들었다. 나는 그 개를 죽일 계획을 면밀히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인터넷으로 저격수들이나 사용하는 복면을 준비했다. 그 복면은 입과 눈만 드러내 놀 수 있었고 내가 누군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쇼핑할 적에 허드렛일을 하는 척 그녀의 자리로 가서 재빠르게 사는 곳 아파트단지의 주소를 외웠다. 그 잡종견을 너무 사랑하는 탓에 하루도 산책을 거를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구체적 거사의 날짜만 정하면 되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아파트 뒤쪽으로는 산이 있었고 거사를 치른 뒤, 산으로 도주하면 방범카메라에는 걸리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고물상 헌 옷함에서 어두운 트레이닝복을 하나 구했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운동화를 고물상에서 마련해 챙겨 놨다. 용역원인 나는 종종 이유 있는 사정만 말하면 관리자의 재량껏 집에 일찍 보내주곤 했는데 거사를 치르는 날 관리자의 아량을 의지하기로 했다.

 


드디어 거사의 날이 다가왔고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 1시간가량 일찍 퇴근했다. 베토벤의 ‘비창소나타’를 들으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복장을 갖추어 입고 복면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그녀의 아파트와 인접해 있는 뒷산으로 올라갔다. 아파트 뒷문 쪽으로 접근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아파트 단지를 면밀히 둘러보고 나의 동선을 반복해서 체크했다. 그리고 잡종견을 던질 아파트 옥상도 답사를 마쳤다. 그리고 한적한 곳을 돌며 그녀와 그녀의 잡종견이 아파트 단지 내에 나타나길 빌고 또 빌었다.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렸지만 좀처럼 그녀가 보이지를 않았다. 내가 알기론 그녀는 단 하루도 산책을 거르지 않았는데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낙담하며 고개를 땅으로 향한 순간,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과 여유로운 표정으로 잡종견을 산책시키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무식하게도 목줄을 하지 않았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나는 으슥한 곳에서 재빨리 달려 나와 전속력으로 잡종견을 향하여 달렸다. 내가 근처에 접근하기까지 그녀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계속 웃고만 있었다. 나는 빛의 속도로 잡종견을 낚아채 올렸고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개를 손으로 들어 보이며 따라와 보라는 듯 잡종견을 흔들었다. 잡종견도 주인을 닮아서 성격이 고약했다. 짖으며 그 작은 입으로 나를 물어보려 애썼지만 철저하게 나의 손아귀로 녀석의 입을 틀어잡았기에 깨갱대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나는 다소 느린 걸음으로 그녀에게 나의 동선을 보이며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한 아파트동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제 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나를 잡기 위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꼭대기로 올라갔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적마다 심장이 쿵딱 거렸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 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선물할 수 있었다. 드디어 맨 꼭대기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난 문이 열려있는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3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녀도 흐느끼며 옥상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히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우리 폴리 죽이지 마세요!”

 

라고 그녀의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잡종견을 옥상 밖으로 던져버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개는 깨갱하며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 짧은 찰나 문인 김해경의 글이 생각났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잡종견은 그대로 바람을 가르고 내려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고 케첩을 짜듯 머리가 깨지며 피가 나왔다.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목소리가 발각될까 봐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그녀는 ‘안 돼!’라는 비명을 외치며 손을 내뻗었고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잠시 후 흐느끼며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땅 아래를 보더니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가지 강렬한 충동이 생겼다. 그 자리에서 도주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난 복면을 벗어 그녀에게 나의 정체를 알리고 싶었다. 가을바람이 시원했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복면을 오래 쓴 탓에 땀이 많이 찼다. 주저앉아 울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며 땀이 가득 찬 복면을 벗어 제쳤다. 그녀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고 아연실색이 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부처님 같은 속 시원한 미소를 그녀에게 보였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다시는 그날의 그런 미소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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