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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Aug 12. 2023

구구단 외우는 날

미움의 세월

한참 구구단을 외우던 날들이었다. 1989년 봄으로 기억된다. 아홉 살의 우리는 이제는 곱셈을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며 무지하고 무식한 할아버지 선생 밑에서 구구단을 배웠다. 나이가 많아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선생은 학생의 인권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다 보니 우리들을 마음껏 유린했고 학대했다. 아홉 살이면 몸의 성장이 완전히 이루어진 시기가 아니다. 마음의 성장도 마찬가지였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연약했고 우유처럼 부드럽기만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선생의 체벌 방법이었다. 선생은 40cm가량의 대나무를 비닐 테이프에 말아서 다녔는데 그것의 용도는 가히 가학적이었다. 고통 그 자체만을 선사하기 위한 것 말이다. 그 막대기로 아이들을 때릴 적에는 손바닥을 내려치지 않았다. 양손에 깍지를 끼고 머리 위로 올리면 고사리 같은 손의 손가락뼈를 그 막대기로 내려쳤다. 그 고통은 감히 아홉 살의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눈물이 났으며 마음이 아팠고 더 나아가 선생을 향해 공포와 분노가 치솟았다. 그는 적어도 우리에게 희대의 고문경찰 ‘이근안’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봄에 우리는 그 막대기가 무서워서라도 구구단을 외워야만 했다. 다들 겁에 질려하며 구구단을 외울 때 소피(Sophie)는 이상하게도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여유를 부렸다. 나는 막대기가 주는 공포가 극심하여 도무지 구구단을 외울 수 없었다. 7단 즈음에 가서 막히기 시작했다. 이내 학급의 번호순대로 외우는 시간이 왔고 나의 순서가 되자 나는 무던하게 진행해 나가다가 7단이라는 통곡의 벽 앞에서 좌절을 했다. 선생은 싱글거리며 손가락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명령했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불에 지지는 듯 한 고통이 찾아왔다. 마음에서 분이 차올랐고 눈물이 났다. 그러는 내 앞에서 웃고 있는 그 노년이 선생이 빨리 죽어 버리길 바랐다. 언제가 염을 할 적에 본 삼베수위를 입고 몸이 굳어진 채 누워있길 바랐다. 그렇게 난 구구단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고 그날 방과 후에 남아서 구구단을 마저 외워야만 했다.

 

나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고 몇 아이를 지나 소피의 차례가 다가왔다. 외우는 시간 동안 늘 희희낙락이었던 소피는 교탁 앞에 서더니 가슴 춤에서 구구단이 적혀있는 책받침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무 거리낌 없이 구구단을 읽어내려가던 소피는 위화감이나 위기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그런 소피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늙은 선생은 그 모습을 유심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 시작했다. 소피가 구구단을 다 읽고 다시 책받침을 다시 품속에 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 할 적에 늙은 선생은 소피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소피를 붙잡아 세웠다.

 

“처음부터 다시 외워봐!”

 

소피는 당황했고 선생은 챙겨 온 대나무 막대기를 손에서 흔들거렸다. 소피는 허둥대기 시작했고 숨을 가쁘게 쉬었으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이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어 다시 도전하려 할 때 선생의 명령이 떨어졌다.

 

“손 머리에 올려!”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막대기는 집요하고 무섭도록 소피의 고사리 같은 손을 여러 차례 파고들었다. 뼈와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교실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수차례 들렸다. 우리는 점점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선생의 매질이 멈추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내 막대기는 소피의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고 소피는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잘못했어요!”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한 소피는 실토를 하듯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잘못했다는 말을 토해냈다.

늙은 선생은 여전히 분이 덜 풀린 듯했고 아홉 살의 우리들은 그것이 교육을 가장한 학대인 것을 차마 알 수가 없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애석하게도 시대가 그렇게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어둠 속에 묻고 청년이 되었던 어느 날 나는 길에서 소피를 마주쳤다. 소피는 다방에서 일하는 종업원이었고 짙은 화장 그리고 짧은 치마와 함께 커피 쟁반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희미하게 숫자 같은 문신이 보였는데 구구단을 몇 글자 적어 놓은 듯했다. 우리는 서로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반가운 인사가 아는 척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서로의 모습에 그냥 놀라는 게 다였다. 그리고 노년의 선생은 내가 더 어른이 되었을 때 버스에서 발견한 적이 있었다. 이전보다 더 노쇠했고 거동도 불편해 보였다. 그렇게 죽음을 점점 맞이해야 하는 그의 인생이 너무나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그날, 나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입을 열어 그 노년의 선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찰나였지만 선생의 마음을 후벼 팔 언행을 하고 싶었다.

 

“그때, 진짜 잘못은 누가 했나요?”

 

라고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선생 그리고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선생들이 미워지는 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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