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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n 23. 2023

비겁자들

무지의 시대

무지했던 시대였다. 1996년의 선생들과 중학생들은 무지했다. 선생들의 골칫거리는 공부를 안 하고 못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깡패가 되길 꿈꾸며 이리저리 힘을 쓰고 다니는 아이들이 깊은 고민거리였다. 그 아이들은 가출을 했고 같은 반 급우들을 때리고 갈취했으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매년 학기 초에는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선도부원을 뽑았다. 여기서 선생들의 헤아릴 수 없는 무지가 드러난 것이다. 선생들의 머릿속에는 폭력을 자랑으로 여기는 아이들에게 선도부원이라는 감투를 씌우면 그들의 재능이 선량하게 쓰이는 동시에 자신들의 골칫거리인 문제아들이 저절로 해결되리라는 무지하고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내 생각에는 그랬다. 그 문제아들에게 감투를 쓰게 하는 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말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선도부 아이들에게 허락된 재능과도 같은 폭력이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다. 허락되지 않은 신발이나 옷차림을 한 아이들에게 벌을 줄 수 있었고 이름을 적어 도덕선생님에게 보고를 하여 그들의 품행점수를 깎을 수 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높은 경사로를 향해 오리걸음을 하게 했으며 일정 시간 엎드려 벌을 받게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허락된 폭력의 재능을 등교시간에 그렇게 사용하곤 했다. 근본적으로 그 아이들을 두려워함이 학교 교칙을 지키게 하는 큰 원동력 같은 두려움이었기에 선생들은 스스로의 선택을 매우 지혜롭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문제는 선도부의 활동시간이 끝나고 그들이 동일한 급우의 계급으로 내려갔을 때 벌어지곤 했다. 폭력을 재능 삼은 학생들은 같은 반 아이들 중에 몸이 약하거나 지적인 능력이 부족하거나 발육이 덜 된 아이들을 먹이 삼아 온갖 폭력을 행사했다. 재미를 위해 때리기도 했으며 점심시간에 사발면에 물을 부어오게 했다. 만약에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대감마님이 머슴을 멍석말이하듯 그 심부름한 아이들을 개 패듯이 팼다. 집안의 부모님 중에 장애인이라도 있으면 아이들이 보는데서 조롱했다. 놀림당하는 아이의 얼굴이 울상이 되면 그 폭력을 재능삼은 놈들은 만족감을 띠며 웃곤 했다.

 

하루는 내 친구인 톰(Tom)이 다량의 사발면 심부름을 주문받고 무질서한 매점에서 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돌아오다가 많은 라면의 개수 탓에 라면 모두를 바닥에 엎어버렸다. 그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기분 좋은 점심시간을 톰으로 인해 망쳤다는 생각을 했고 기분이 상해 점심시간 내내 톰을 패고 팼다. 톰이 잘못 했다고 빌며 우는 모습을 보여도 아이들의 분노는 사그라 들지 않았다. 배는 고픈데 밥을 못 먹는다는 분함이 그들의 폭력의 원동력이 되어 톰을 때리고 또 때렸다. 그리고 나는 그날 보았다. 선생들은 애초부터 폭력성이 가득한 아이들을 길들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점심시간에 순찰을 돌던 학생과장 선생이 선도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맞고 있는 톰의 모습을 보았다. 학생과장은 선도부 아이들을 향해 준엄한 목소리로 무슨 짓들이냐고 물었고 선도부 아이들은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비겁한 거짓말을 했다. 자기들이 즐겨 피는 담배를 톰이 피운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 담배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했다고 간악한 거짓말을 했다.

 

가장 불쌍한 건 톰이었다.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며 선생에게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학교가 끝나고 뒷산으로 끌려 올라가 기약 없는 폭행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과장의 사실여부를 묻는 질문에 톰은 여생을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들은 선생이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 보고하면 되지! 친구를 이렇게 때리면 쓰나? 너희는 선도부야! 이렇게 개인적으로 힘을 쓰면 안 되는 거 모르나?”

 

학생과장이 그들의 저열하고 비열하고 비겁한 재능인 폭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해 주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내 눈으로 목도했고 그들의 재능은 선생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속될 것을 알았다. 학생과장의 고갯짓에 톰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소 마냥 교무실로 향했다. 아마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했을 것이다. 독립투사들처럼...

 

무지했던 시대였다. 우선 선생들이 무지했고 폭력을 재능으로 알았던 녀석들이 무지했으며 그것을 바라만 보며 분개하지 못했던 나머지 학생들도 무지했고 시대가 그렇게 무지했다.

 

그리고 그 무지는 오늘날도 별반 다를 게 없이 저 위 어른들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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