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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Sep 03. 2023

폭력의 세월

절망과 위로

나는 왕따였다. 왜소한 체격에 모기 같은 목소리 그리고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눈과 튀어나온 턱이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나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고 있노라면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가 생각나곤 했다. ‘콰지모도’ 말이다. 학급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녀석부터 순차적으로 나를 때리고 착취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나는 개인적인 시간은 거의 없었고 불량 학생들의 심부름을 하거나 그들의 샌드백이 되어 구타를 당해야만 했다. 가장 슬펐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은 내일이 되어도 내가 원하는 소망이라는 것이 날 마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런 고통의 나날들은 3년을 꽉 채워서 진행되어야 했다. 노비와도 같은 비참한 삶을 학급에서 지내다 보니 친구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다른 녀석들도 나를 피했다. 나랑 어울렸다가 피해를 당할까 두려웠던 아이들은 다수의 무리에 합류해서 나를 같이 때리지는 않더라도 무시는 잘했다. 그래야 그들의 면이 섰을 테니 말이다. 가장 치욕적인 경험은 얼굴에 침을 뱉는 행동이었다. 불량하기 그지없던 P는 나의 얼굴에 종종 침을 뱉었다. 그 비참함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위로는 인근 고등학교의 친구였다. 그는 나의 죽마고우였고 나를 유일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 허용하던 친구였다. 우리 학교는 지역사회에서 제법 공부를 하던 학교였지만 친구의 고등학교는 겨우 인문계를 들어가던 학생들이 가 던 곳이다 보니 문제아들이 많던 학교였다. 그 학교 정문에는 초가집같이 남루한 매점들이 몇 개 있었고 그곳에서는 컵라면을 뜨거운 물과 함께 팔았었다. 그곳의 나의 유일한 낙원이었다. 우리 학교의 교복은 제법 예쁘고 명문인 테가 났다. 하지만 내 친구의 고등학교 교복은 촌스럽기가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가득가득한 매점으로 나는 나의 교복을 입은 채로 갔다. 거기에는 내 유일한 친구가 있었고 따뜻한 컵라면이 있었고 같이 곁들여 먹으면 좋은 단무지도 있었다. 처음에 친구를 따라 그 매점에 갔을 때 나는 이방인과 다름없어 아이들의 눈총을 많이 사야 했다. 창피했고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나도 누군가로부터 친밀감을 공급받아야만 산다는 절박함이 그 모든 것들을 이기게 했다. 그 시절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은 ‘왕초’라는 드라마였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컵라면을 먹으며 다 같이 김춘삼을 응원하노라면 그렇게 따뜻하고 행복할 수 없었다. 그 시간만큼은 나도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나의 유일한 친구도 그곳에 있었다. 단돈 천 원이면 가장 기쁘고 즐거운 시간을 50분이나 보낼 수 있었다. 내가 하루 중 인간으로서 살이 있고 따뜻함을 느끼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왕초라는 드라마를 보며 빠져들었고 우리들은 모두 동화가 되었다. 다 같이 김춘삼 패거리를 응원했고 그들의 승리를 보며 그것의 나의 승리인 냥 기뻐하기도 했다. 또한 컵라면의 맛은 어떠한가? 시원하고 매운 국물과 아직 덜 익은 면을 먹노라면 세상의 진미가 부럽지 않았다. 단무지도 고급 단무지여서 라면하고의 궁합이 일품이었다. 무엇보다 같이 웃을 수 있는 무리가 있었고 나의 유일한 친구가 거기 있었다. 다만 바랐던 것은 드라마가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방송을 하길 바랐던 것이었으며 나의 유일했던 친구가 계속 나의 맞장구를 쳐주며 존중받는 인간 대 인간으로 있어주길 바랐다. 그 작은 초가집 같은 매점에서는 나는 노비 같은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불량 학생들의 샌드백이 되어 맞을 일도 없었다. 나의 부모를 욕하거나 나의 자존감을 짓밟는 말들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친구와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다수의 무리들과 같이 웃고 같이 먹고 같이 즐거워하면 될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즐거움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마음의 작은 즐거움의 여운을 남긴 채 다 타버린 재처럼 내 마음에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 정도의 온기라면 내일도 찾아오는 고난은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소의 허탈함이 마음에 찾아들지만 이 정도의 채움이라면 폭행도 심부름도 모욕도 견딜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또 다른 희망은 내일도 이곳에서 모르는 학생들과 나의 친구와 따뜻한 컵라면과 드라마를 보며 다시 한번 나를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초가집 같은 매점의 문을 열고 나가며 스스로에게 말했었다.

 


 

“이제부터 다시 내일이 이 시간이 오기까지 고통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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