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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Oct 16. 2019

민법 제110조, "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제110조(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①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②상대방있는 의사표시에 관하여 제삼자가 사기나 강박을 행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③전2항의 의사표시의 취소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오늘 공부할 내용은 어제보다는 좀 쉽습니다. '사기'라는 표현, 익숙하실 겁니다. 일상에서 "사기 치지마!" 이런 표현 자주 쓰지 않습니까? 비슷한 뜻인데 법학에서 사기란 다른 사람에게 그릇된 관념을 가지게 하거나 그러한 관념을 강화 또는 유지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합니다. 어려운 표현으로는 기망행위(欺罔行爲)라고도 합니다. 속일 '기'에 그물 또는 잡는다는 뜻의 '망'을 씁니다.

그리고 제110조에는 '강박'이라는 표현도 나오는데요,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닙니다. '강박'(强迫)이란 강할 '강'에 다그칠 '박'의 한자를 씁니다. 즉 다그치듯이 심하게 강요한다는 겁니다. 


사기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영희가 가진 땅이 몹시 탐납니다. 그래서 영희를 찾아가 무서운 말과 행동으로 협박하여, 영희로 하여금 그 땅을 철수 본인에게 싼값에 팔도록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이 경우 영희는 땅을 팔겠다는 자신의 의사표시가 사기 또는 강박(이 사례의 경우에는 강박이 될 것입니다)에 의한 것임을 이유로 그 취소를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110조제1항에 따라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는 요건을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먼저 사기나 강박의 행위가 있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기나 강박의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땅 주인이 실수로 자신의 땅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었고, 매수인이 그로 인해 땅을 사고 후회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땅 주인의 행위가 '사기'인 것은 아닙니다. 매수인을 속이려는 고의는 없었고 실수였기 때문입니다.


강박의 경우에도 고의는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행위의 결과 상대방이 공포심을 느끼고 그로 인하여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어야 합니다(인과관계).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철수가 협박을 했지만 영희는 전혀 겁이 나지 않았고, 그냥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철수에게 땅을 파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하여 계약을 맺은 것이라면 제110조는 적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판례도, “강박에 의한 법률행위가 하자 있는 의사표시로서 취소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 무효로 되기 위하여는 강박의 정도가 극심하여 의사표시자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완전히 박탈되는 정도에 이른 것임을 요한다.”라고 하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대법원 1996. 10. 11. 선고 95다1460 판결).


그런데 여기서 잠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어제 공부한 '동기의 착오' 부분에서, 동기가 상대방에 의해서 유발된 경우에는 제109조가 적용될 수 있다고 했었던 것 기억하십니까?

그러면 그러한 경우에 제110조를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왜 굳이 제109조를 적용하였던 것일까? 상대방이 동기를 그릇되게 유발하는 경우도 일종의 '사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동기의 착오를 유발하게 한다고 해서 그게 다 '사기'(기망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고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도 잘못 알고 실수로 그랬을 수도 있거든요. 따라서 고의에 이른 정도는 아닌 경우라면 제109조를, 고의에 의한 '사기'가 발생한 경우라면 제110조를 적용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의 판례는,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란 타인의 기망행위로 말미암아 착오에 빠지게 된 결과 어떠한 의사표시를 하게 되는 경우이므로 거기에는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가 있을 수 없고, 단지 의사의 형성과정 즉 의사표시의 동기에 착오가 있는 것에 불과하며이 점에서 고유한 의미의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와 구분되는데, 이 사건의 경우 피고 A은 신원보증서류에 서명날인한다는 착각에 빠진 상태로 연대보증의 서면에 서명날인한 것으로서, 결국 위와 같은 행위는 강학상 기명날인의 착오(또는 서명의 착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의사와 다른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의 서면에, 그것을 읽지 않거나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기명날인을 하는 이른바 표시상의 착오에 해당하므로, 비록 위와 같은 착오가 제3자의 기망행위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라 하더라도 그에 관하여는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에 관한 법리, 특히 상대방이 그러한 제3자의 기망행위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가 아닌 한 의사표시자가 취소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민법 제110조 제2항의 규정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에 관한 법리만을 적용하여 취소권 행사의 가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라고 하여 제110조와 제109조의 차이점을 비교하고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4다43824 판결).




제2항에서는 상대방이 있는 의사표시의 경우(상대방이 없으면 그냥 제1항을 적용하면 됩니다), 제3자가 사기나 강박을 한때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런 겁니다. 위의 사례를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철수는 옆집에 사는 최미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미인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목돈을 굴릴 곳을 찾고 있는 최미인에게 자신이 좋은 매물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철수는 영희를 찾아가 강박행위를 하여, 싼값에 자신의 땅을 최미인에게 팔도록 만들었습니다. 위의 사례와는 달리 이득을 본 것은 겁박 행위를 한 철수 본인이 아니라 바로 최미인입니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이러한 경우도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 만약 최미인(영희의 의사표시의 상대방)이 철수의 겁박 행위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영희와 매매계약을 맺은 것이라면, 영희는 제110조제2항을 근거로 그 매매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최미인은 이러한 사정을 전혀 몰랐던 경우에는 그녀에게는 사실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으니까(너무 아름다워 철수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 죄라면 죄일 것입니다), 제110조제2항을 근거로 매매계약을 취소할 수는 없습니다.


제3항은 제1항과 제2항에 따른 취소는 그 사정을 모르는 선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의사표시의 효력 발생 시기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9.10.16. 작성

22.12.2.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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