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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Nov 06. 2019

민법 제125조, "대리권수여의 표시에 의한 표현대리"

제125조(대리권수여의 표시에 의한 표현대리) 제삼자에 대하여 타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그 대리권의 범위내에서 행한 그 타인과 그 제삼자간의 법률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제삼자가 대리권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오늘부터는 표현대리에 대하여 공부할 겁니다. 중요하면서도 또 복잡한 내용이 좀 나오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표현대리를 공부하기에 앞서 무권대리의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권대리(無權代理)란, 한자를 직역하자면 권한이 없는 자가 대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정당한 대리권이 없는 자가 맘대로 대리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무권대리는 일반적인 대리와 달리 본인에게 효과를 귀속시키면 안될 것처럼 느껴지실 것입니다. 누가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본인을 대리해 버렸는데 그 효력을 인정해 주는 것은 좀 그렇지요. 그런데, 무권대리 중에서도 모든 무권대리행위가 다 본인에게 효력이 없다고 하기는 좀 애매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표현대리의 이론이 나옵니다.

우선 아래의 두 사례를 비교해 봅시다.

[사례1] 철수는 A 부동산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옆집의 영희는 철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철수의 대리인인 척 행세하면서 A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사례2] 갑돌이는 B 지역에 있는 부동산을 사고 싶어서, 을돌이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여 "B 지역"에 있는 부동산을 매입하는 대리를 맡겼다. 그런데 을돌이는 마음대로 C 지역에 있는 부동산을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해 버렸다.


사례1과 사례2는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사례1의 경우 철수는 애초에 영희에게 대리권을 준 적도 없습니다. 부동산을 팔 생각도 없고요, 철수는 그냥 피해자인 겁니다.


따라서 영희가 제아무리 거짓말을 하고 다녔더라도 철수는 잘못이 없고, 영희가 저지른 법률행위의 효과는 영희에게 귀속되지 철수에게 귀속되지 않습니다. 철수는 여전히 A 부동산의 소유자입니다. 영희가 나중에 사기죄로 처벌이 되건 또다른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하건 철수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보통 ‘무권대리’라고 하면 탁 떠오르는, 그런 사례입니다. 이런 사례에서는 본인(철수)를 철저하게 보호해 주어야 겠지요.


반면 사례2는 어떨까요? 이건 갑돌이가 을돌이에게 “최소한 대리권을 주기는 준” 사례입니다. 일단 을돌이는 갑돌이의 대리인이 맞습니다. 문제는 을돌이가 갑돌이가 준 대리권의 범위(“B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할 것”)를 벗어나서 대리행위를 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을돌이와 거래한 상대방(매도인) 입장에서는, 갑돌이의 인감이 떡하니 찍힌 위임장을 들고 나타난 을돌이를 정당한 대리인으로 신뢰했습니다. 거기에 매도인은 을돌이가 B 지역의 부동산 매입만을 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례1에서의 거래 상대방도 억울한 건 맞는데, 사례2에서는 좀 더 억울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례2]도 무권대리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을돌이는 어쨌거나 C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할 대리권은 없었던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것도 어찌보면 무권대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무권대리라고 해서 무조건 본인(갑돌이)에게는 효과가 귀속되지 않는다고만 주장해 버리면, [사례2]의 경우처럼 꽤 억울한 거래상대방(매도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표현대리의 이론은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무권대리 중에서도, 일부는 본인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지우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바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결국 표현대리란 쉽게 설명하면, 이미 벌어진 대리행위에 분명히 문제가 있기는 있는데, 실제로 대리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관이 있고, 대리를 맡긴 본인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 등 특별한 경우에는 억울한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하여 예외적으로 본인에게 법률효과를 귀속시키는 제도입니다.


표현대리 제도는 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리권이 있는 것과 같은 ‘외관’(바깥으로 드러난 모양)이 있고, 그러한 외관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 본인이 어느 정도는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면, 그 무권대리행위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합니다. 이를 외관책임설이라고도 부릅니다(김용덕, 2019).


그런데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표현대리와 무권대리의 관계는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표현대리는 정당한 대리권이 없는 사람이 저지른 짓도 어떤 요건이 갖춰지면 본인에게 법률효과를 귀속하게 하는 제도이니까, 그러면 무권대리라고 볼 수도 있겠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표현대리는 결국 본인에게 법률효과를 귀속하게 하는 것이잖아. 그러면 결론적으로는 [표현대리권]이라는 대리권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러면 대리권이 있기는 있는 것이니까 무권대리가 아니라 유(有)권대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둘 다 나름대로 타당한 생각입니다. 실제로 학설에서도 표현대리를 무권대리로 볼 것이냐, 유권대리로 볼 것이냐를 놓고 의견 다툼이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의 통설은 표현대리를 무권대리의 일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판례는 유권대리에 관한 주장 가운데 무권대리에 속하는’ 표현대리의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여 이와 유사한 취지입니다(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권대리’ 중에서 어떤 것들은 특별히 취급되어 본인에게 법률효과를 귀속시킬 수 있는 표현대리로 인정받지만, 나머지 것들은 본인이 아니라 멋대로 행위를 한 사람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결자해지(結者解之)로 취급된다고요. 씨를 뿌린 사람이 거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무권대리에는 표현대리와 표현대리가 아닌 것이 섞여 있는 셈인데, ‘표현대리가 아닌 것’을 묶어 협의의 무권대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법학에서 ‘협의’란 ‘좁은 의미’라는 뜻입니다. 반대의 의미로 ‘광의’(넓은 의미)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대략 그림으로 단순하게 그려 보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권대리와 표현대리 간의 관계에 대해서 학자들이 열심히 논의하는 이유는, 나중에 공부하게 될 무권대리에 관한 규정(제130조 이하)을 어떻게 적용할지 논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제130조 이하를 공부할 때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표현대리라는 말 자체는 도대체 일상에서 쓰지를 않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민법에 ‘表見代理’라는 말이 있다. 대리인이 대리권 없이 행한 대리 행위는 무권대리(無權代理)로서 본인에게 그 효력이 없지만, ‘본인에게 일정한 귀책사유(歸責事由)가 있고 또 외관상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는 본인이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돼 있다. (중략) 짚이는 데가 있어서 일본 사전을 뒤적여보고는, 이 용어가 일본 용어를 베껴온 것임을 알았다. 일본어로 ‘효오켄다이리(ひょうけんだいり)’라고 읽는다. 그렇다면 우리 발음으로는 ‘표견’이 옳다. ‘表見’은 ‘겉으로 보이는(おもてにみえる)’이란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그 어원을 잘못 유추하여 ‘表現’이란 말과 같이 보았고, 또 見은 現과 고금자(古今字)의 관계이기도 하므로 그것을 ‘현’이라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일본어일 따름이다.
출처: 고대신문


즉 외부로 보여지기에는 뭔가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리, 그런 대리를 뜻하는 말이 바로 표현대리입니다.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솔직히 이건 좀 표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우리 민법은 이러한 표현대리의 3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오늘 공부할 제125조가 바로 그 첫 번째인 '대리권수여의 표시에 의한 표현대리'입니다.


제3자에 대하여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제125조의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자신의 부동산을 팔겠다고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나부자라는 사람이 철수의 말을 듣고 다가가, "자네 부동산을 팔고 있다고 했나? 그 부동산, 내게 팔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수는 나부자 앞에서 왠지 허세를 부리고 싶어져서, "그러시면 제 대리인인 옆집의 영희를 찾아가서 계약을 하시지요. 이 부동산 건에 관해서는 영희가 제 일을 대리하고 있습니다. 후훗." 이렇게 말하면서 대단한 사장님인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런데 철수는 사실 영희에게 대리권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영희는 이런 사정도 몰랐고요. 철수는 나부자가 자리를 떠난 후, '나중에 영희한테 전화해서 내 부동산 처리에 관해서 대리를 시켜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친구랑 놀다가 그만 전화하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부자는 영희를 찾아와, "철수의 A 부동산을 사고 싶소. 철수 말로는 자네가 대리인이라고 하던데?" 라고 말했습니다. 영희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평소 자신을 무시해 왔던 철수에게 복수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영희는 정말로 자신이 철수의 대리인인 척하며 철수의 부동산을 시세보다 싼 값에 나부자에게 팔아넘기는 계약을 체결해 버렸습니다.


이 사례에서, 철수는 제3자(나부자)에게 자신이 영희라는 사람에게 부동산 매도의 대리권을 수여하였다는 표시를 하였습니다(영희에게 표시한 것이 아니라 제3자에게 표시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리권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나부자는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선의의 거래 상대방입니다.


철수는 다음날 자신의 부동산이 나부자에게 팔린 것을 깨닫고, 사실 영희가 자신의 대리인이 아니었으므로 무권대리에 의한 계약임을 주장하였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제125조에 따라 표현대리가 성립하여 계약의 법률효과가 철수에게 귀속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 부동산은 이제 나부자의 소유입니다.


앞서 우리가 표현대리 제도의 근거를 살펴보면서, 외관책임설에 대해 말씀드렸었는데요. 외관책임설에 비추어 제125조에 따른 표현대리는 대리권이 실제로는 없지만 마치 있는 것과 같은 외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립의 외관’이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김준호, 2017).

따라서 제125조에 따른 표현대리의 성립요건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본인이 제3자에 대하여, 자신이 어느 누군가에게 대리권을 수여하였다는 표시를 하여야 합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대리권을 수여하였다는 표시를 나부자에게 하였습니다.


2. 표시된 대리권의 범위 내에서 실제로는 대리권이 없었던 그 누군가가 대리행위를 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철수가 허세를 부렸다고는 해도, 나부자가 영희를 찾아가서 부동산 매입이 아니라 자동차 매입 계약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적어도 표시된 대리권의 범위 안에서 행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3. 거래의 상대방은 선의이거나 무과실이어야 합니다.

나부자가 사실은 영희가 철수의 대리인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영희와 짜고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라면, 그런 나부자는 법률에 의하여 보호받을 가치가 없습니다. 만약 본인(철수)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면서 제125조에 따른 표현대리의 책임을 면하려면, 상대방(나부자)의 악의나 과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의 요건들이 충족되면 표현대리가 성립합니다. 비록 영희는 철수의 진짜 대리인이 아니었지만, 철수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철수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부동산의 소유권이 철수에게서 떠난다는 것이지 영희에게도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영희는 철수에게 손해배상소송을 당하겠지요. 어쨌건 이 사례에서 유일한 승자는 나부자입니다.

*민법 제125조가 임의대리 뿐 아니라 법정대리에도 적용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설의 논란이 있습니다. 판례와 다수의 견해는 법정대리에는 적용이 안된다고 보는 입장인 듯한데요(김준호, 2017: 312면), 반대하는 견해도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참고문헌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표현대리의 또 다른 유형,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총칙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161면(이균용).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317면.

고대신문, “표현대리와 표견대리”, 2004.5.24.자,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3867 (2022년 12월 7일 확인.)



19.11.6. 작성

22.12.7.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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