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과의 만남 Nov 05. 2019

민법 제124조, "자기계약, 쌍방대리"

제124조(자기계약, 쌍방대리) 대리인은 본인의 허락이 없으면 본인을 위하여 자기와 법률행위를 하거나 동일한 법률행위에 관하여 당사자쌍방을 대리하지 못한다. 그러나 채무의 이행은 할 수 있다.


좀 어려운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자신의 부동산을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해 대리인으로 영희를 선임하였습니다. 영희는 철수의 부동산을 팔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이런 생각을 갑자기 해봅니다.


'내가 철수의 부동산을 사버리면 어떨까?' 그래서 영희는 매매계약서를 작성합니다. 부동산을 파는 사람은 "철수의 대리인 영희"이고, 물건을 사는 사람은 "영희"입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이처럼 대리인이 '본인'을 대리하면서 한편으로 바로 자신이 법률행위의 상대방이 되는 것을 자기계약이라고 합니다.


자기계약을 무제한으로 허용하게 해주면, 영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철수의 부동산을 생각보다 싼 가격에 팔아 버릴 수 있습니다(바로 영희 자신에게요). 따라서 제124조는 본인의 허락이 있어야 자기계약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철수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영희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부동산을 사겠다고 하면, 두 사람의 계약을 말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이런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철수는 자신의 부동산을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해 영희를 선임하였습니다. 영희는 철수의 부동산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영희와 평소 친하던 친구 민수가 영희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요즘 부동산 투자를 좀 하고 있는데, 괜찮은 매물 없을까? 네가 나를 대리해서 부동산 매입을 좀 대리해 줬으면 좋겠어."


철수의 대리인이자 민수의 대리인이 된 영희는 이런 생각을 해봅시다.

'철수의 부동산을 민수에게 팔아 버리면 어떨까?' 그래서 영희는 매매계약서를 작성합니다. 부동산을 파는 사람은 "철수의 대리인 영희"이고, 물건을 사는 사람은 "민수의 대리인 영희"입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이처럼 대리인이 하나의 법률행위에서 그 행위 당사자 쌍방을 모두 대리하는 것을 쌍방대리라고 합니다.


쌍방대리를 하게 되면, 영희는 철수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주면서도 민수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고려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계약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영희는 자신과 더 친한 민수의 편을 들어, 부동산을 시세보다 싼 가격에 민수에게 팔게 해버릴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제124조는 쌍방대리 역시 본인의 허락이 있어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124조 단서에서는 '채무의 이행'은 자기계약이건 쌍방대리건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는데, 이건 이런 뜻입니다. 보통 부동산 매매에서 나타나는 건데, 철수(매도인)가 민수(매수인)에게 부동산을 팔았다고 합시다. 계약도 체결되었고, 이제 등기만 처리하면 됩니다. 등기신청 같은 것이 생각보다 복잡해서 이러한 업무는 법무사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이전등기의 경우에는 이미 다 결정된 법률관계(계약)에서 채무를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쌍방대리를 할 수 있게 하더라도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미 철수와 영희가 2억원에 부동산을 거래하기로 계약했는데,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를 대리하는 법무사가 갑자기 이것을 3억원으로 변경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법무사 영희는 그냥 철수와 민수 모두를 대리하여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완료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거 하자고 굳이 법무사를 2명 고용할 필요는 없지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예외적으로 허용된) 쌍방대리의 예시입니다.


제124조는 법정대리와 임의대리를 나누고 있지 않으므로, 어떤 대리의 형태이건 간에 적용됩니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례를 법률에서 규율하는 모습을 우리는 이미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기억나시나요? 민법 제64조를 잠시 복습해 봅시다.

제64조(특별대리인의 선임) 법인과 이사의 이익이 상반하는 사항에 관하여는 이사는 대표권이 없다. 이 경우에는 전조의 규정에 의하여 특별대리인을 선임하여야 한다.


[법인] 파트에서 우리는 '이사'와 '법인'의 이익이 서로 충돌할 때에는 이사의 대표권이 배제되고 특별대리인을 선임하여야 된다는 사항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법인의 이사의 경우는 특별대리인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건 우리 민법이 제64조와 제124조에서 모두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문제를 규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해 두세요.


내일부터는 '대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표현대리의 이론을 공부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