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조(제한능력자의 상대방의 철회권과 거절권) ① 제한능력자가 맺은 계약은 추인이 있을 때까지 상대방이 그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다. 다만, 상대방이 계약 당시에 제한능력자임을 알았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제한능력자의 단독행위는 추인이 있을 때까지 상대방이 거절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철회나 제2항의 거절의 의사표시는 제한능력자에게도 할 수 있다.
제16조에서는 민법에서 처음으로 '계약'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제2항에서는 '단독행위'라는 표현도 처음으로 나옵니다. 계약과 단독행위란 무엇일까요? 어제 공부한 제15조는 법률행위에 대한 확답 촉구의 내용이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봅시다.
앞서 법률행위란 일정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사실(법률요건) 중에서도 의사표시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공부했습니다(제4조에서 공부한 부분을 참고하세요). 법률요건은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고 했었습니다.
법률요건의 구분
- 법률행위 : 단독행위, 계약
- 법률행위 아닌 법률요건 : 소멸시효, 취득시효, 선의취득, 선점, 유실물습득, 매장물발견, 첨부, 사무관리, 부당이득, 불법행위, 상속 등
이 글상자에서 알 수 있듯이 계약과 단독행위는 법률행위의 하위 범주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계약이건 단독행위이건 모두 의사표시를 하나의 요소로 포함하고 있겠지요? 계약이란, 두 개의 서로 대립되는 의사표시의 합치에 의하여 성립하는 법률행위라고 정의됩니다. 표현이 어려워 보이는데, 의미는 간단합니다.
김땅꾼은 최농부가 가진 땅 1,000평을 전부터 호시탐탐 노려 왔습니다. 그러다가 최농부가 급전이 필요해지자 김땅꾼은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제안합니다. "네가 가진 땅 1,000평을 1억 원에 나에게 팔아라." 이것이 김땅꾼의 의사표시입니다.
이에 대하여 최농부는 "알았다. 그러면 나는 내 토지 명의 등기를 너에게 이전하여 줄 테니 너는 내 은행 계좌로 돈을 입금하여라."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김땅꾼의 '땅을 사겠다'라는 의사표시는 최농부의 '땅을 팔겠다'라는 의사표시와 서로 대립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계약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매매계약이라고 하겠습니다.
단독행위란 1개의 의사표시만으로도 성립하는 법률행위라고 정의됩니다. 위의 사례에서는 의사표시가 2개였습니다("사겠다"라는 의사표시와 "팔겠다"라는 의사표시). 또 예를 들어 봅시다.
최가난은 김부자에게 1억 원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부자는 최가난의 평소 예의 바른 태도가 마음에 들어, 1억 원의 빚을 탕감해 주기로 합니다. 이를 채무면제라고 하는데, 이는 최가난의 의사표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김부자이가 일방적으로 "너의 빚은 오늘부터 없다."라고 의사표시하면, 최가난에게는 이제 채무가 없습니다. 이처럼 채무면제는 단독행위인 것입니다.
최가난이 김부자에게 빚을 면제해 달라고 알랑 방귀를 뀌었을 것이므로, 그것이 최가난의 의사표시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법률에서의 의사표시란 법률효과의 발생을 원하는 법률사실이므로, 일상적인 행위에 불과한 '아첨행위'는 의사표시가 아닙니다.
단독행위에는 위의 경우처럼 의사표시의 상대방(최가난)이 존재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이 없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부자가 길거리에 자신의 멀쩡한 TV를 내다 버리면서 "버리는 물건"이라고 써둔다면, 그건 김부자가 TV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소유권의 포기는 누구 특정한 사람을 정하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따로 없습니다. 단독행위에 대하여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생소한 단어들은 일단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세요.
단독행위의 종류
-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 : 동의, 채무면제, 상계, 추인, 취소, 해제, 해지
-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 : 유언, 재단법인의 설립행위, 권리의 포기
이제 계약과 단독행위의 의미를 알았으므로 제16조를 찬찬히 봅시다.
제15조의 경우 제한능력자와 거래한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조문이었지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좀 미흡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일단 제한능력자와 거래한 상대방은, 추인을 받기 위하여 제한능력자에게 구차하게 "나와 했던 법률행위를 확정적인 것으로 해주면 안될까? 2월 3일까지 답을 좀 주면 안될까?"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2월 3일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초조하게요. 이미 충분히 '을'이라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이에 민법은 제16조를 두어 추가로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16조에 따르면, 거래의 상대방은 제한능력자 측에서 추인이 있기 전에 자신의 의사표시를 철회해 버릴 수 있습니다(철회권). 왜 하필 '계약'이라고 썼는지 아시겠지요? 제한능력자가 한 단독행위의 경우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의사표시 자체를 한 게 없으므로, 철회할 의사표시도 당연히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1항은 법률행위 전체가 아니라 '계약'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지요.
철수는 컴퓨터 판매점을 운영하다가, 어느 날 가게로 찾아온 미성년자인 영희에게 컴퓨터를 파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철수는 영희가 미성년자인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철수는 당황하여 영희의 부모님에게 '추인해줄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1개월이 넘는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귀찮아진 철수는, 결국 자신의 의사표시("영희 너에게 컴퓨터를 80만 원에 팔겠다")를 철회해 버립니다. 철수의 의사표시가 철회됨으로써 철수와 영희 사이의 계약은 무효가 됩니다.
다만, 철수가 계약 당시에 이미 '영희가 미성년자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계약을 체결했던 것이라면 철수는 철회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제16조제1항 단서). 이미 제15조라는 보호장치가 있음에도 추가로 거래상대방을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 제16조인데, 제한능력자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계약까지 한 것은 불안정한 지위를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의미가 있는 거라고 보는 겁니다. 앞서 우리가 공부한 선의-악의 개념에 따르면, '악의의 상대방은 보호하지 않겠다'라는 민법의 태도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제2항은 제한능력자가 누군가를 상대로 단독행위를 한 경우에,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제한능력자의 이 행위가 언제 취소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있는 것이므로 이를 추인 전에 거절해 버릴 수 있도록 허용해 주고 있습니다(거절권).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왜 제2항에는 제1항 단서와 같은 말이 없지? 그러면 단독행위 당시에 제한능력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도 상대방은 거절을 할 수 있다는 건가?" 타당한 지적입니다. 실제로 이에 대해서 학자들의 논의도 있었고요(왜 제2항에는 단서가 없는지). 대체로 해석은 이렇습니다. 계약에서와 달리 단독행위는 제한능력자가 한 행위를 상대방이 그냥 '수령'만 하는 것에 불과한데, 악의라고 해서 이런 경우까지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가혹하기 때문에 단서조항이 없는 것이라고요. 결국 단독행위의 경우에는 악의의 상대방도 거절권이 있다는 겁니다.
제1항이건 제2항이건 추인 전까지만 철회권 또는 거절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추인이 있어 버리면 그때 이미 그 법률행위의 효력이 결판나게 되므로 더 이상 철회 또는 거절을 할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1항에 따른 '철회'나 제2항에 따른 '거절' 역시 의사표시의 일종입니다. 제3항은 이러한 의사표시를 제한능력자 본인에게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당연하지 않습니다.
제112조(제한능력자에 대한 의사표시의 효력) 의사표시의 상대방이 의사표시를 받은 때에 제한능력자인 경우에는 의사표시자는 그 의사표시로써 대항할 수 없다. 다만, 그 상대방의 법정대리인이 의사표시가 도달한 사실을 안 후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112조가 표현이 좀 어렵긴 합니다만, 의미는 제한능력자는 의사표시를 수령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원칙적으로 제한능력자는 의사표시 수령이 안되는데, 제16조제3항은 특별히 철회나 거절의 경우에는 제한능력자도 그 의사표시를 수령할 수 있다고 정하는 겁니다. 즉 제16조제3항은 제112조에 대한 특칙이 되는 것입니다.
제한능력자의 상대방이 철회 또는 거절을 하게 되면, 그 계약이나 단독행위는 확정적으로 무효가 됩니다. 만약 위의 사례에서 철수가 철회를 해버렸는데 이미 영희에게 80만 원을 받은 상태였다면, 그 80만 원은 부당이득이 되는 것이어서 철수는 그 금액을 영희에게 반환하여야 하겠지요. 부당이득의 법리는 추후에 상세히 공부할 예정이니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은 제한능력자의 상대방에 대한 또 다른 보호 장치를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