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조(제한능력자의 상대방의 확답을 촉구할 권리) ① 제한능력자의 상대방은 제한능력자가 능력자가 된 후에 그에게 1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그 취소할 수 있는 행위를 추인할 것인지 여부의 확답을 촉구할 수 있다. 능력자로 된 사람이 그 기간 내에 확답을 발송하지 아니하면 그 행위를 추인한 것으로 본다.
② 제한능력자가 아직 능력자가 되지 못한 경우에는 그의 법정대리인에게 제1항의 촉구를 할 수 있고, 법정대리인이 그 정하여진 기간 내에 확답을 발송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행위를 추인한 것으로 본다.
③ 특별한 절차가 필요한 행위는 그 정하여진 기간 내에 그 절차를 밟은 확답을 발송하지 아니하면 취소한 것으로 본다.
오늘부터는 제한능력자의 상대방을 보호하는 제도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제15조를 읽어 보면 표현이 좀 어렵습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봅시다.
제1항에서 "제한능력자가 능력자가 된 후"라는건 이해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가 시간이 지나 성년자가 된 것이지요. 아니면 피성년후견인이었던 사람이 치료를 받아 정신적 제약이 없어진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제한능력자가 능력자가 되면 (그 사람과 거래한) 상대방은 1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제한능력자인 당신과 거래한 후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한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와의 거래가 언제 취소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당신이 하도 졸라서 인간적인 마음에 거래를 하긴 했는데, 이제 당신이 성년자가 되었으니 잘 되었다. 40일의 기간을 줄 테니, 우리의 거래를 확실히 효력 있는 것으로 못 박아 두겠다는 답을 달라."
이것이 제1항에서 말하는 '추인할 것인지 여부의 확답 촉구'입니다. 추인(追認)이란 추후에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쓸데없이 말이 어렵지만 현행법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제한능력자는 이제 본인이 능력자가 되어 유효한 법률행위를 확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자신이 '제한능력자이던 시절에' 했던 법률행위를 자신이 확실한 것으로 인정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즉, 반대로 생각하면 추인을 하지 않고 그대로 취소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이 정한 기간 내에 (이제는 능력자가 된) 제한능력자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추인을 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법률행위를 확실하게 유효인지 아닌지 못 박아 둘 수 있어 법적인 지위가 덜 불안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한능력자가 능력자가 되는 일이 현실에서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적장애가 하루아침에 치료되는 일도 흔치 않고, 미성년자도 성년이 되기까지 몇 년이나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렇다면 거래의 상대방은 불안과 고민이 깊어지겠지요. 그래서 제2항이 존재하는 겁니다. 상대방은 제한능력자가 언제 능력자가 될지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법정대리인에게 찾아가서 제1항에서와 유사한 '촉구'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한능력자가 여전히 능력이 제한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거래상대방은 제한능력자 본인에게는 추인을 촉구할 수 없습니다. 추인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온전한 행위능력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제한능력자는 단독으로 추인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철수는 이제 갓 성년이 되었습니다(생일은 편의상 1월 1일이라고 합니다). 철수에게 컴퓨터를 전년도 12월 31일에 판 영희는, 이 거래를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이에 2월 10일까지 이 법률행위를 확정적으로 유효로 할 것인지 아닌지 확답을 달라고 합니다. 철수는 고민하다가, 2월 9일에 "이 거래를 취소한다. 추인하지 않겠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가 2월 11일에 영희에게 도착했습니다. 이 경우, 영희는 정해진 기간(2월 10일) 내에 답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추인을 간주할 것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제15조를 자세히 읽어 보세요. 그 기간 내에 확답을 발송하지 아니하면 추인한 것으로 본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도달'이 아니라 '발송'이 기준인 것입니다. 나중에 배우겠지만 참고로만 알아 두실 부분은, 우리의 민법은 의사표시의 효력시점에 대하여 도달주의를 원칙으로 택하고 있는데(제111조제1항), 제15조는 '예외적으로' 발신주의를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현재 거래의 상대방은 사실 추인이 있으면 좋겠지만 거절당할 것도 각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도 다 고려해서 거래를 한 것이겠죠. 그게 제한능력자와의 거래 아니겠습니까?(싫다면, 거래를 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따라서 발신주의를 취하여도 굳이 불측의 손해를 입을 일은 없고, 발신주의를 택하면 도달주의에 비해서 보다 빠른 시점에 법률상태를 안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러한 제도를 두고 있는 겁니다.
이제 제3항을 봅시다. '특별한 절차가 필요한 행위'가 뭘까요? 민법 참 설명 불친절하긴 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950조를 잠깐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950조(후견감독인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행위) ①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대리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미성년자의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에 동의를 할 때는 후견감독인이 있으면 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1. 영업에 관한 행위
2. 금전을 빌리는 행위
3. 의무만을 부담하는 행위
4. 부동산 또는 중요한 재산에 관한 권리의 득실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
5. 소송행위
6. 상속의 승인, 한정승인 또는 포기 및 상속재산의 분할에 관한 협의
② 후견감독인의 동의가 필요한 행위에 대하여 후견감독인이 피후견인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음에도 동의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은 후견인의 청구에 의하여 후견감독인의 동의를 갈음하는 허가를 할 수 있다.
③ 후견감독인의 동의가 필요한 법률행위를 후견인이 후견감독인의 동의 없이 하였을 때에는 피후견인 또는 후견감독인이 그 행위를 취소할 수 있다.
A는 피성년후견인입니다. B는 A의 성년후견인으로, A의 법정대리인입니다. 그런데 후견감독인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B가 자신의 후견인으로서의 지위를 악용하여, A의 재산을 마음대로 써 버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가정법원은 후견인이 제대로 자기 할 일을 다 하는지, 함부로 피후견인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는지 감시하게 하게 위하여 후견감독인이라는 사람을 따로 둘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감시자의 감시자인 거지요. C는 바로 이러한 후견감독인이라고 합시다.
제950조제1항 각 호에 열거된 행위들은 B가 후견인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C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C의 동의 없이 B가 A의 명의로 금전을 빌리는 행위를 하였다면, A나 C는 그 행위를 취소해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A와 거래하였던 D가 제15조제2항에 따라 B에게 추인할 것을 촉구하였다고 합시다. B가 추인하여야 할 행위가 제950조에 열거한 행위에 해당된다면, B는 자기 마음대로 이를 추인할 수는 없고 C의 동의를 받아서 추인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절차를 제15조제3항에서는 "특별한 절차"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후견인이라고 해도 '단독'으로 추인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제3항에서는 촉구기간 내에 확답을 발송하지 않으면 취소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제한능력자의 상대방을 보호하는 제도를 공부하였습니다. 내일은 이에 이어서 또 어떤 보호장치가 있는지 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