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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Feb 20. 2020

민법 제191조, "혼동으로 인한 물권의 소멸"

제191조(혼동으로 인한 물권의 소멸) ①동일한 물건에 대한 소유권과 다른 물권이 동일한 사람에게 귀속한 때에는 다른 물권은 소멸한다. 그러나 그 물권이 제삼자의 권리의 목적이 된 때에는 소멸하지 아니한다.
②전항의 규정은 소유권이외의 물권과 그를 목적으로 하는 다른 권리가 동일한 사람에게 귀속한 경우에 준용한다.
③점유권에 관하여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191조는 물권에 관한 [총칙]의 마지막 조문입니다. 어제까지 우리는 물권을 부동산에 관한 것과 동산에 관한 것으로 나누어서 알아보았습니다만, 오늘 볼 제191조는 이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191조는 부동산과 동산 모두에 적용되는 조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물권 역시 당연히 사정에 따라서는 소멸할 수 있습니다. 물권이 없어져 버리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다만, 우리 민법의 물권 총칙 파트에서는 '혼동'의 사유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유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전에, 일단 '혼동'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보고 가도록 합시다.


혼동(混同)이라는 단어는 일상생활에서는 이것저것 뒤섞여서 헷갈린다, 라는 뜻 정도로 사용됩니다만, 법학에서는 조금 다르게 사용됩니다. '섞일 혼'에 '같을 동'의 한자를 쓰는데, 이는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법률상의 지위나 자격이 동일인에게 귀속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김준호, 549면). 이렇게 말하면 어려우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돈이 좀 급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아들에게 급히 연락을 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좀 불효자여서, 아버지인 철수에게 그냥은 돈을 못 빌려주겠다고 하면서, 철수가 돈을 제대로 갚을 것인지 당최 믿을 수가 없으므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철수가 가진 100평의 토지에 저당을 잡자고 합니다. 즉, 저당권을 설정하기로 한 것입니다(아직 구체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저당권' 역시 민법이 정한 물권의 한 종류라는 것을 제185조에서 알아본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철수가 자기 땅을 담보 잡혀서 돈을 빌렸다고 단순히 생각하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철수의 아들은 철수의 토지에 대한 저당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철수가 돈을 갚기 전에 그만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철수의 땅은 상속되어 (불효자이긴 하지만) 아들에게 소유권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아들은 (사망한) 철수의 토지에 대한 '저당권' 뿐만 아니라 '소유권'도 갖게 됩니다. 이 경우 사실상 소유권 외의 저당권은 아들이 가지고 있어 보아야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땅에 저당 잡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례를 대입해 제191조제1항을 다시 읽어 보면, "동일한 물건(토지 100평)에 대한 소유권과 다른 물권(저당권)이 동일한 사람(철수의 아들)에게 귀속한 때에는 다른 물권(저당권)은 소멸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제1항 단서는 무슨 말일까요?


위의 예를 확장해 보겠습니다. 철수가 돈을 갚을 때가 되지 않은 상태이고 사망하지도 않았다고 합시다. 철수의 아들은 여전히 철수의 토지에 대한 저당권자이고 철수는 여전히 땅의 소유권자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급히 현금 투자를 할 일이 생겨, 자신이 가진 '저당권' 그 자체를 담보로 하여 다시 김투자라는 사람에게 돈을 빌렸습니다(이처럼 저당권에 대해서 질권을 설정하는 것은 권리질권의 일종이 되는데요, 이 역시 추후에 다루는 것으로 하고 일단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내용 이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철수가 사망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아들이 철수의 땅을 받게 되어 소유권자가 되었으므로, 제191조제1항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혼동'으로 저당권을 없애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 저당권을 담보로 해서 권리를 가지고 있던 김투자의 입장은 굉장히 곤란하게 되어 버립니다. 돈을 갚지 않은 것은 철수인데, 뜬금없이 김투자가 피해를 입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191조제1항 단서는 원래는 혼동으로 소멸하여야 할 물권이 제3자(사례에서는 김투자)의 권리의 목적이 된 경우에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하여, 제3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2항은 물권 중에서도 소유권 외의 권리에 대해서도 혼동의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저당권, 전세권 등 다른 물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공부한 후에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제1항만 보더라도 '혼동'이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3항은 점유권에 대해서는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점유권에 대해서는 일전에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이는 물건에 대한 점유에 의하여 발생하는 권리이므로, 논리상 다른 물권과 양립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소유권자가 물건을 점유하고 있다면 점유권을 가져서 이상할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점유권은 다른 물권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껏 '혼동'에 의해서 물권이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공부하였는데요, 그러면 '혼동' 이외에 민법에 적혀 있지 않은 다른 소멸 사유는 무엇이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목적물의 멸실이 있을 겁니다. 철수가 가진 볼펜이 벼락을 맞아 없어져 버렸다면, 볼펜에 대한 철수의 소유권도 당연히 소멸합니다. 소유를 하고 싶어도 소유의 대상이 있어야 하지요.


또한, 전에 민법 [총칙]에서 공부하였던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물권이 소멸하기도 합니다. 다만, 전에 공부했던 대로 소유권은 소멸시효의 대상이 되지 않고(제162조제2항), 그 외에 앞으로 공부할 다른 몇몇 물권들도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 경우가 있어 실질적으로 소멸시효에 걸리는 물권은 지상권 및 지역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추후에 해당 파트에서 상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62조(채권, 재산권의 소멸시효) ①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②채권 및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은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그 외에도 물권의 '포기' 역시 소멸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철수 본인이 스스로 '볼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겠다고 한다면(상대방 없는 단독행위), 누가 이를 말릴 수 있겠습니까? 볼펜에 대한 철수의 소유권은 소멸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철수의 볼펜은 무주물(주인 없는 물건)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물권이 소멸하는 여러 사유, 그중에서도 특히 혼동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내용이 많지만 추후의 논의를 위한 중요한 개념들이 있으므로 꼼꼼히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내일부터는 드디어 '점유권'에 관한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2017, 제2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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