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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Feb 26. 2020

민법 제194조, "간접점유"

제194조(간접점유) 지상권, 전세권, 질권, 사용대차, 임대차, 임치 기타의 관계로 타인으로 하여금 물건을 점유하게 한 자는 간접으로 점유권이 있다.


자, 오늘은 점유의 유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양이 많으니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점유는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사실상의 지배'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아본 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군산시에 있는 작은 집의 소유자라고 합시다. 소유자인 철수가 집 안에서 커피를 끓여 마시고 있다면, 왠지 집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연해 보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철수가 커피를 사러 집 밖으로 나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건 '사실상의 지배'를 상실한 것으로서, 점유권도 소멸하는 것이 될까요? 그러면 철수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점유권을 잃었다가, 얻었다가 하는 걸까요?


우리의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도대체 '점유'란 무엇일까요? 법학에서 말하는 점유의 의미를 알아보고, 제194조로 돌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판례는 "물건에 대한 점유란 사회관념상 어떤 사람의 사실적 지배에 있다고 보여지는 객관적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사실상의 지배가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물건을 물리적·현실적으로 지배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물건과 사람과의 시간적, 공간적 관계와 본권관계, 타인 지배의 배제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사회관념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합니다(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다14934, 판결). 이러한 판례의 논리를 빌려 유형을 나누어 봅시다.


1. 시간적 관계에 따른 사실상 지배의 판단: 너무 시간이 짧으면 곤란하다.


휴대전화를 어디다가 뒀는지 기억이 안 나서, 옆에 있는 친구의 전화를 약 5초간 빌려 썼다고 합시다. 그러면 내가 친구의 전화를 잠시나마 점유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점유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적 계속성이 필요합니다. 계속성이 없어서 저 정도로는 점유라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2. 공간적 관계에 따른 사실상 지배의 판단: 물리적 지배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 공간에 대해서도 점유가 인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자신의 집을 점유하고 있다고 합시다. 철수는 움직이기를 귀찮아하는 성격이라서, 퇴근 후에는 거실에서 거의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철수의 집 지하실에 있는 오래된 골동품은 철수가 점유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요? 철수는 지하실에는 거의 내려가지 않는데도요?


점유가 맞습니다. 사실 정말 엄격하게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의미로서의 점유만을 따진다면, 철수가 10년 넘게 쳐다도 보지 않고 방치한 지하실 골동품을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철수는 집을 점유하고 있고, 집 안, 지하실에 있는 골동품은 공간적 관계에 미루어 보았을 때 역시 철수가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민법에서 말하는 '점유'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물건의 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판례에서 말하듯이, 물건에 대한 점유는 "반드시 물건을 물리적·현실적으로 지배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판례의 이 문장이 이해가 가실 겁니다. 그러면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 다음 부분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3. 본권관계에 따른 사실상 지배의 판단: 소유권 등 본권을 고려해서 점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이제 이 부분에서 우리는 철수와 집의 관계에서 점유의 문제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철수는 집의 정당한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 소유권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보았을 때 설령 집을 물리적으로 점거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집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일단은 본권의 유무가 점유의 성립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본권이 전혀 없는 도둑에게도 점유는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사회관념상으로는 본권의 유무가 점유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유력한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박동진, 2022). 이 미세한 표현상의 차이를 곱씹어 이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판례는 "사회통념상 건물은 그 부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건물의 부지가 된 토지는 그 건물의 소유자가 점유하는 것으로 볼 것이고, 이 경우 건물의 소유자가 현실적으로 건물이나 그 부지를 점거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더라도 그 건물의 소유를 위하여 그 부지를 점유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3. 11. 13., 선고, 2002다57935, 판결)라고 하여, 건물의 소유자의 경우 물리적으로 그 건물을 점거하고 있지 않아도 그 건물뿐 아니라 그 건물이 세워진 땅에 대해서까지 점유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 논리에 따르면 땅 소유자가 건물 소유자에게 '불법점유'를 이유로 나가라고 할 수는 없게 됩니다.


결국 집의 정당한 소유자인 철수는 감자칩을 사러 슈퍼에 100번을 다녀오건, 며칠간 부산에 여행을 다녀오건 상관없이 집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수가 외출을 좀 했다고 해서 점유권을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가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4. 타인 지배의 인식 및 배제 가능성에 따른 사실상 지배의 판단: 남이 보기에 사실상 지배를 인식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땅에 영희가 매일 밤 새벽에 몰래 가서 점거를 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무도 모릅니다. 나중에 영희는 자신이 그 땅을 수십 년간 '점유'했다고 주장합니다. 타당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지배가 있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가 사실상 지배를 한다는 사실을 타인이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누군가 점유를 방해 또는 간섭할 경우 이를 배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는 있어야 합니다.


5. 점유설정의사

지금까지 점유를 인정할 수 있는 ‘사실상 지배’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그 판단 기준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우리의 통설은 점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실상 지배뿐만 아니라 추가로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려는 의사까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를 점유설정의사라고 부릅니다.

민법에서 명시적으로 점유설정의사를 점유의 성립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계의 통설은 점유설정의사가 점유의 성립에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사자의 집 마당에 주인도 모르게 떨어져 있었던 물건에 대해서 주인의 점유설정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주인이 그 물건을 점유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194조를 봅시다. 제194조는 간접점유의 개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점유는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한 분류로서 우리는 오늘 '직접점유'와 '간접점유'를 공부할 것입니다.


직접점유는 단어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어느 누군가가 직접 점유를 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간접점유는 스스로 직접 점유를 하는 것은 아니나,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점유하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그 물건을 점유한다고 인정받는 것을 말합니다.


어려우니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자신의 부동산(물건)을 영희에게 빌려 주고, 월세로 매달 30만 원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철수와 영희 사이에는 임대차 계약이 존재하겠지요. 제194조에서 말하는 "지상권, 전세권, 질권, 사용대차, 임대차, 임치 기타의 관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부동산을 직접점유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영희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바로 실제 집주인인 철수에게 간접점유를 인정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동산에 대한 점유는 2명이 동시에 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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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굳이 이런 제도가 필요한 걸까요? 직접점유 만으로는 부족한 걸까요? 이러한 간접점유가 필요한 까닭은, 직접점유자(사례에서는 영희) 뿐 아니라 직접점유를 하고 있지 않은 사람(사례에서는 철수)의 이익도 어느 정도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간접점유를 통하여 '점유'의 개념을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면 간접점유는 어떤 경우에 인정되는 걸까요? 제194조에 따르면, 간접점유가 인정되기 위하여는 "지상권, 전세권, 질권, 사용대차, 임대차, 임치 기타의 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러한 관계를 통하여 "타인에게 물건을 점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물건을 점유한다고 해서 간접점유가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간접점유를 발생시키는 관계를 법학에서는 점유매개관계(占有媒介關係)라고 부릅니다. '매개'란 어떤 것 사이, 중간에서 관계를 맺어 준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지요. 제194조에서는 그러한 점유매개관계로서 지상권, 전세권, 질권, 사용대차, 임대차, 임치를 들고 있는데 이는 예시로 든 것이어서 이 중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도 점유매개관계를 성립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만, 간접점유의 성립요건으로서 점유매개관계가 필요하다는 통설에 대하여, 점유매개관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고 사실상의 반환청구력이 있으면 족하다며 비판하는 견해도 있는데(이상태, 2007) 여기서는 다수의 견해로 여겨지는 입장에 따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등법원 판례에서는 이러한 점유매개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요건으로서, "점유매개관계는 ① 간접점유자의 직접점유자에 대한 반환청구권과 ② 직접점유자의 타주점유, 즉 자신의 점유를 간접점유자의 반환청구권을 승인하면서 행사하는 것을 성립요건으로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서울북부지법 2012. 7. 12., 선고, 2011가단34801, 판결 : 항소). 대법원 역시 "점유매개관계는 직접점유자가 자신의 점유를 간접점유자의 반환청구권을 승인하면서 행사하는 경우에 인정된다."라고 합니다(대법원 2012. 2. 23., 선고, 2011다61424,61431, 판결).


판례의 말은 이런 뜻입니다. 간접점유자가 직접점유자에 대해 반환청구권이 있다는 것은, 해당 관계가 종료되면 물건을 돌려줄 것을 간접점유자가 요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철수와 영희 간에는 임대차 계약이 성립해 있는데, 만약 해당 계약이 종료된다면 철수는 당연히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자신에게 되돌려줄 것을 영희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사실 논리상 직접점유자는 타주점유를 할 수밖에 없는데, 아직은 우리가 타주점유를 공부하지 않았으니까 나중에 해당 파트를 공부한 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간접점유가 무엇인지, 점유매개관계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열심히 알아보았는데요, 마지막으로 이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겁니다. "간접점유로 점유권을 인정받으면 뭐가 좋을까?"

이 부분은 점유권의 내용(효과)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추후 해당 파트에서 다시 한번 짚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아주 길고 어려운 내용을 공부하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부분이라 그냥 지나가기가 어려웠고, 또 이번에 길게 공부한 덕택에 앞으로는 조금 더 수월한 민법 읽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내일은 점유보조자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박동진, 「물권법강의(제2판)」, 법문사, 2022, 131면.

이상태, <간접점유의 연원>, 건국대학교 법학연구소, 일감법학(11권), 2007, 2면.




2023.12.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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