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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Mar 03. 2020

민법 제197조, "점유의 태양"

제197조(점유의 태양) ①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선의, 평온 및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②선의의 점유자라도 본권에 관한 소에 패소한 때에는 그 소가 제기된 때로부터 악의의 점유자로 본다.


단어가 어렵습니다. 점유의 '태양'(態樣)이란 무슨 말일까요? 태양이란 어떠한 모습이나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모양 태'에 '모양 양'의 글자를 씁니다. 사실 과도하게 어려운 표현인데, 실제로 2019년 8월 9일에 정부가 제출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민법이 실제로 개정되었다는 뜻이 아니고, 이렇게 개정하자는 취지로 정부가 안건을 국회에 냈다는 뜻입니다)에 따르면 제197조의 제목을 '점유의 모습'으로 바꾸자고 하고 있습니다. 해당 개정안은 의안정보시스템(http://likms.assembly.go.kr/)에서 의안번호 2021928로 검색하여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197조제1항은 점유의 모습에 대해서 소유의 의사로 선의, 평온 및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건 무슨 말일까요? 이 내용에 대해 알기 위해서 우리는 점유를 나누는 또 하나의 유형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점유는 소유의 의사에 따라서 자주점유(自主占有)와 타주점유(他主占有)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주점유란, 소유(所有)의 의사(意思)를 가지고서 점유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자를 보면, 자주점유라는 단어 자체가 스스로 주인이 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소유의 의사란 무엇일까요? 소유는 무슨 의미인지 대강 아실 것이고, '의사'란 마음속에 품은 생각의 뜻으로 보통 사용하지요. 일단 이렇게 설명을 해봅시다. 점유라고 해서 다 같은 점유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A 부동산의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A 부동산에 살면서 그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영희는 다른 사람의 소유인 B 부동산에 세를 들어 살고 있습니다.


이 경우 철수건 영희건 부동산에 대해 점유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철수는 소유의 의사를 가지고서 점유를 하고 있는 반면, 영희는 소유의 의사로서 점유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주의할 것은 단순히 소유권이 있는 사람만이 소유의 의사로서 점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소유의 의사란 어떤 물건을 '마치 소유자인 것처럼' 배타적으로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입니다. 영희는 처음부터 임차인으로서 B 부동산에 들어왔기 때문에, 스스로 소유자인 것처럼 물건을 지배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나불쌍이라는 사람이 매매계약을 맺고 작은 시골집을 하나 사들여서, 바로 거기서 살기 시작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매매계약은 무효의 계약이었던 겁니다. 무효의 계약에 의해서 나불쌍이 시골집을 사들일 수는 없으므로, 나불쌍은 시골집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불쌍이 지금 하고 있는 점유가 소유의 의사가 없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불쌍은 소유권이 없더라도 일단 소유의 의사를 가지고 점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부동산 매수인이 부동산을 매수하여 그 점유를 개시하였다면 설사 매매계약에 무효사유가 있어 그 소유권을 적법히 취득하지 못한다는 사정을 인식하였다 하더라도 그 점유 자체에 소유의 의사가 없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1992. 10. 27. 선고 92다30375 판결). 이제 소유권의 유무에 따라서 '소유의 의사' 유무를 판단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대략 눈치를 채셨겠지만 타주점유란 자주점유가 아닌 점유, 즉 소유의 의사를 갖지 아니하고 점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197조제1항은 그러니까 이런 말입니다. 점유를 하고 있는 사람은, 일단 자주점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해 준다는 뜻입니다(추정의 의미에 대해서는 민법총칙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소유의 의사]라는 표현은 너무 모호하지 않나요? 말씀하신 거에 따르면 소유자가 굳이 아니더라도 소유의 의사로 점유를 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 사람 마음속에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어떻게 파악합니까?"


맞는 말입니다. 법학자들도 바보는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의 판례는, "취득시효에 있어서 자주점유의 요건인 소유의 의사의 존부는 객관적으로 점유 취득의 원인이 된 점유 권원의 성질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고 점유자의 주관적 내심의 의사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는 것은 아닌바, 철거민들이 각 특정 부분을 무상으로 분배받은 것이 아니라 무상으로 사용할 권한만을 부여받아 이에 주택을 신축하여 점유하여 온 것이라면, 철거민의 위 각 특정 부분에 대한 점유는 점유 권원의 성질상 타주점유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대법원 1995. 7. 14. 자 95다18024 결정),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의사(내심의 의사)에 따라 주관적으로 막 판단해서는 안 되고, 점유를 시작하게 된 원인, 그 권리가 어떤 성질인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처럼 영희가 점유를 하는 원인이 되는 권리가 임대차 계약에 따른 임차권이라면, 임차권의 성질상 영희가 소유의 의사를 가지고 부동산을 점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197조제1항은 자주점유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의, 평온, 공연이라는 특이한 단어도 쓰면서 이 또한 '추정'해준다고 합니다. 각각 무슨 의미인지 하나씩 알아보도록 합시다.


'선의'라는 단어는 우리가 전에 민법총칙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공부하기를 법학에서 사용하는 '선의'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착한 의도'라는 뜻이 아니고, 어떠한 사실을 알았느냐, 몰랐느냐로 판단하는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개념을 적용한다면, 여기서 '선의로 점유'한다는 말은 본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점유한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 '악의로 점유'한다는 말은 본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점유한다는 뜻이 됩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나불쌍이 매매계약이 무효임에도 불구하고 무효인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이 진정한 소유자라고 착각하고) 점유를 하고 있다면, 이는 나불쌍이 선의의 점유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길어지네요. 제197조제1항은 선의점유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온, 공연이라는 단어도 쓰고 있습니다. 평온(平穩)이란, 보통 일상생활에서는 평화롭고 조용한 상태를 말합니다. 다만 법학에서는 그 의미 그대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고 폭력이 동반되지 아니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공연(公然)이란,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뜻으로, 점유의 사실을 남에게 숨기거나 하지 않는 점유가 바로 '공연한 점유'가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점유의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는 경우 이를 은비(隱庇)점유라고 합니다. 은비란 어려운 한자어이긴 한데 숨긴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판례는 "평온한 점유란 점유자가 그 점유를 취득 또는 보유하는 데 법률상 용인될 수 없는 강포행위를 쓰지 아니하는 점유이고, 공연한 점유란 은비의 점유가 아닌 점유를 말하는 것이므로 그 점유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자로부터 이의를 받은 사실이 있거나 점유물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당사자 사이에 법률상 분쟁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만으로는 곧 그 점유의 평온·공연성이 상실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2. 4. 24., 선고, 92다6983, 판결)이라고 하고 있으니 각각의 의미를 공부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제197조제1항에 따르면, 어떠한 물건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을 '선의'로 점유한 것뿐만 아니라 평온하고 공연하게 점유를 하였다는 것이 추정됩니다. 따라서 어떤 물건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 선의가 아니라 악의로 점유하고 있다, 혹은 폭력에 의하여 점유를 하였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출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공부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이런 규정을 두고 있는 걸까? 왜 점유만 하면 자주점유뿐만 아니라 선의, 평온, 공연한 점유까지 추정하여 주는 것일까?"


사실 제197조는 나중에 배울 취득시효와 관련하여 주로 사용됩니다. 꽤 어려운 내용이라 여기서 모두 알아볼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만 맛을 보고 지나가겠습니다.

제245조(점유로 인한 부동산소유권의 취득기간) ①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②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자가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선의이며 과실없이 그 부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소유권을 취득한다.


우리는 민법총칙에서 시효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지요. 시효란, 일정한 상태가 어떠한 기간 이상 지속되게 되면 그것이 진실에 부합하는지를 떠나서 그 사실 상태를 존중하여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총칙에서 주로 배운 것은 소멸시효였습니다.


민법 제245조에서는 또 다른 시효의 형태인 취득시효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특정한 점유의 상태가 오랜 기간 계속되는 경우에 그 상태를 존중하여, 권리를 취득한 것으로 보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제245조제1항에 따르면 자주점유(소유의 의사로 점유) 및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20년간 점유한 사람은 그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의 취지와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해당 파트에서 알아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일단 이런 제도가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제245조와 제197조를 함께 보세요. 제245조제1항은 소유권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진 조문입니다. 그래서 아무 점유에 대해서 이런 것을 인정해 줄 수는 없고 자주점유, 평온 및 공연한 점유에 대해서만 인정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제197조는 이러한 점유 취득시효의 요건인 소유의 의사, 평온, 공연(제245조제1항에서는 '선의'는 요건에서 빠져 있습니다만 제2항에서는 선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을 점유에 의하여 추정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그러한 추정이 뒤집히지 않는 한) 점유자가 점유 취득시효를 통하여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이 보다 용이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제197조를 두고 있는 걸까요? 일각에서는 점유 취득시효제도에 추가하여 '점유에 여러 가지 추정을 덧붙이는'(특히 소유의 의사뿐 아니라 선의, 평온, 공연한 점유까지 추정하는) 형태의 입법은 우리나라가 일본 민법으로부터 특히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본 민법은 프랑스 민법을 조정하여 들여오면서 당시 프랑스 민법에는 없는 평온, 공연한 점유까지 추가하였는데요, 이는 점유를 보호하기에 좋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왜 하필 선의, 평온, 공연한 점유까지를 모두 점유에 추정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체계적인 분석 없이 일본 민법이 확장하였고, 우리나라 민법에서 이를 다시 받아들인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최병조, 1996). 어느 의견이 타당한지는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설명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자주점유, 선의, 공연, 평온의 개념에 제도의 연혁까지 체크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권법의 경우 기초 개념이 많고, 그러한 개념이 있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이 나중의 발판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내일은 점유계속의 추정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최병조, "부동산의 점유취득시효와 점유자의 소유의사의 추정: 민법 제245조 제1항, 제197조 제1항 및 양 조문의 관계에 관한 역사적,비교법적 고찰",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 제37권, 1996, 135-14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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