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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Apr 02. 2020

민법 제210조, "준점유"

제210조(준점유) 본장의 규정은 재산권을 사실상 행사하는 경우에 준용한다.


또 어려운 단어가 나왔네요. '준점유' 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점유권'은 한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건 물건(동산과 부동산)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인데요, 점유권에 관한 장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제192조에서도 '물건'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제192조(점유권의 취득과 소멸) ①물건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는 점유권이 있다.
②점유자가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상실한 때에는 점유권이 소멸한다. 그러나 제204조의 규정에 의하여 점유를 회수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먼저 제210조에서 말하는 '재산권'의 개념을 천천히 봅시다. 재산권이란 경제적 가치가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는 '물권' 역시 재산권의 일종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소유권은 당연히 경제적 가치가 있는 권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재산권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물권, 다른 하나는 채권, 다른 하나가 바로 제3의 재산권이라고 불리는 지식재산권입니다. 예전에는 지식재산권, 지적재산권이라는 표현이 섞여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지식재산권이라는 용어로 통일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특허청, 2005).


물권과 채권에 대해서는 우리가 총칙 파트에서 공부한 적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익숙하실 테지만, 지식재산권의 경우 많이 생소한 개념일 겁니다. 우리의 <지식재산 기본법>에 따르면, '지식재산'이란 "인간의 창조적 활동 또는 경험 등에 의하여 창출되거나 발견된 지식ㆍ정보ㆍ기술,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 영업이나 물건의 표시, 생물의 품종이나 유전자원(遺傳資源), 그 밖에 무형적인 것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제3조제1호)이라고 하며, '지식재산권'이란 "법령 또는 조약 등에 따라 인정되거나 보호되는 지식재산에 관한 권리"(제3조제3호)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지식재산권은 인간의 지적인 창작물에 대하여 법률로서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자, 지식재산권에 대해 공부했으니 이니 제210조도 돌아가 봅시다. 제210조는, 본장(점유권에 관한 장)에서 말하는 점유권에 관한 규정을 <재산권을 사실상 행사하는 경우>에 준용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이건 무슨 말일까요?


위에서 언급하였듯 우리가 공부한 점유의 개념은 '물건'에 대하여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산권 중에는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닌 '권리'는 어떨까요? 권리는 점유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에게 돈을 빌려 주는데, 영희가 빌린 돈을 갚을지 안 갚을지 자신이 없어 영희가 가진 땅을 저당 잡았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 철수는 영희의 땅에 대한 저당권자가 되는데, 이 저당권이라는 권리는 단지 영희의 땅에 대해서 담보를 잡았다는 것일 뿐입니다. 철수는 그 땅에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그 땅을 차지하고 앉아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즉, 저당권은 점유를 수반하지 아니하는 권리인 것입니다.


반면 소유권은 점유를 수반하는 권리입니다. 땅의 소유자인 영희는 비록 저당을 잡힌 땅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으므로 그 땅에서 잠을 자도 되고 점유를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소유권은 점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권리(점유할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210조는 '점유'의 개념을 물건이 아닌 권리에 대해서는 논리상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준점유'라는 단어를 만들어서(준準이란 뜻은 어떠한 사례에 대해 유사하게 따른다는 뜻입니다) 점유 비스무리한 어떤 개념을 창조한 겁니다. 그래서 준점유를 권리점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점유라고 한다면, 재산권에 대한 사실상의 행사를 준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배'가 아닌 '행사'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는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논리에 의한다면 점유를 수반하는 권리인 소유권이나 지상권, 전세권, 임차권 등의 경우 제210조를 적용할 필요가 없고(그냥 점유 제도를 활용하면 되니까), 점유를 수반하지 않는 나머지 재산권(임차권을 제외한 채권이나 지역권, 저당권, 광업권, 어업권, 지식재산권 등)이 제210조의 적용 대상이 된다는 것이 통설의 견해입니다. 여기서 지역권이니 뭐니 아직 공부하지 않은 부분들은 일단 무시하고 넘어가도 괜찮습니다.


이런 개념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권리는 물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가시적으로 '소지'하고 다닐 수는 없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사람이 권리를 갖고서 그 권리를 사실상 행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마치 정당한 소유권자가 아닌 사람이 시계를 점유하고 있어도 점유권을 인정하여 주는 것처럼, 권리의 경우에도 정당한 권리자가 아니더라도 그 권리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 점유는 원래 물건에 대해서 적용되는 것이나, 권리에 대해서도 유사한 시스템을 운영해 보자는 취지인 겁니다.


이처럼 준점유가 인정되면 점유 제도에서 인정되었던 권리 적법의 추정이나 선의의 점유자의 과실 취득 같은 규정이 준용되게 되므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제210조의 규정에서 다루는 권리의 대부분은 사실상 점유의 규정이 적용되기 어렵거나(예를 들어 금전채권), 지식재산권과 같이 이미 다른 법률에서 물권적 청구권 등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가처분 제도라는 다른 좋은 대안이 존재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준점유 제도는 사실상 법정책적인 중요성을 상실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김형석, 2019).


지금까지 점유권에 대하여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내일부터는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소유권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물권1(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553-554면(김형석).

특허청, '지식재산권' 용어 통일 필요성, 2005. 5



2023.12.29.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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