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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Apr 21. 2020

민법 제216조, "인지사용청구권"

제216조(인지사용청구권) ①토지소유자는 경계나 그 근방에서 담 또는 건물을 축조하거나 수선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내에서 이웃 토지의 사용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웃 사람의 승낙이 없으면 그 주거에 들어가지 못한다.
②전항의 경우에 이웃 사람이 손해를 받은 때에는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조문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하게 숲을 보고 옵시다. 우리는 민법 총칙 파트를 마치고, 물권편에 들어와 물권의 종류, 물권법정주의, 부동산과 동산의 물권변동 등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물권 총칙). 그리고 물권편의 제2장인 점유권에 대해 알아보았고, 지금은 소유권의 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위치한 곳은 소유권에 대한 내용 중에서도 제1절, <소유권의 한계> 부분입니다. 소유권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려면 소유권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야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소유권의 내용(제211조), 토지소유권의 범위(제212조), 소유권으로부터 발생하는 물권적 청구권인 소유물반환청구권 등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제213조, 제214조).


이제부터 민법에서 나올 내용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유권이 어떤 제한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앞서 소유권에 관한 내용을 공부하면서 소유권은 법률의 범위 내에서 행사된다고 했는데, 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볼 것입니다.


특히 제216조부터 제244조(제3장 제1절의 끝까지)는 주변의 '토지' 및 부동산 소유자 간의 관계를 주로 규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동산도 아니고, 하필 부동산, 그것도 <토지>에 대해서 이렇게 열심히 규정해 놓았을까?" 이런 물음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토지는 다른 물건과 다르게 유달리 좀 분쟁이 많습니다. 일단 건물은 그래도 눈으로 보기에 이 건물과 저 건물이 딱 떨어져 있잖아요. 그런데 토지는 경계가 칼같이 다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심지어 측량이 잘못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토지 소유권을 행사할 때에도 다른 토지 소유권자와 충돌이 일어날 일이 많다는 겁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모조리 토지에 관해서만 규율하는 것은 아니고, 토지 외의 부동산에 대해서도 내용을 일부 정해 두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서로 가까운, 인접한 부동산 소유자 사이의 관계를 조절하기 위해 마련된 제216조부터 제244조까지의 규정을 상린관계(相隣關係)규정이라고 합니다. 서로 이웃한 사람 간의 관계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상린관계규정에 의하여 토지소유자 등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상린권(相隣權)이라고 합니다. '상린'이라는 단어 참 생소하고 어려운데, 일단은 학계에서 이렇게 쓰고 있으니 저희도 어쩔 수가 없네요. 알고는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216조는 '인지'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총칙에서 처음 공부했던 인지(법률혼이 아닌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를 아버지가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는 것)와는 다른 뜻입니다. 여기서의 인지(隣地)는 '이웃 인'에 '땅 지'의 글자로, 서로 인접하거나 이웃하는 땅을 말합니다.


제216조제1항에 따르면, 토지소유자는 경계나 그 근방에서 담장, 건물을 만들거나 고치려고 할 때에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웃한 땅의 사용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A라는 땅의 소유자입니다. 영희는 그 땅의 바로 옆에 있는 B라는 땅의 소유자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이제 상린관계규정이 적용될 것입니다.


철수는 자신의 땅인 A에 건물을 하나 갖고 있었는데, 그 건물의 한쪽 벽면이 무너져 불가피하게 수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건물을 수리하기 위해서 자재 등을 가져다 둘 공간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B 땅을 어느 정도 써야만 합니다. 철수가 나무판자와 벽돌 몇 개를 가져다 두는데 B 땅의 경계를 조금 넘었습니다. 그때 영희가 뛰쳐나옵니다. "내 땅에 어디 벽돌을 2개나 놔둬! 절대 안 돼! 내가 소유자이니, 소유물방해제거청구권을 행사하겠다! 네 건물이 무너지건 말건 내 알 바 아니야."


이건 조금 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216조제1항은 철수가 최소한 그런 경우에는 영희에게 맞서 그 땅을 쓸 수 있도록 청구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이를 인지사용청구권이라고 합니다. 물론 조심하여야 할 것이, 제1항은 '쓸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고 '쓸 것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하고 있으므로, 철수가 당연히 영희의 땅을 당장 맘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영희가 계속 반대할 경우 청구권을 행사하여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철수에겐 또 다른 제한도 있습니다. 만약 B 땅이 농사로 쓰는 것도 아니고 영희가 직접 살고 있는, 주거하는 땅이라면 철수는 영희의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합니다. 솔직히 영희가 매일 밥 먹고 씻고 살고 있는 곳인데 바로 몇 미터 앞에서 공사 인부들이 막 돌아다니고, 벽돌 여러 장 가져다 놓고 이러면 되겠습니까. 민법에서는 어느 정도 융통성을 부리려고 한 듯합니다.


또한, 제2항에서는 만약 제1항에 따른 철수의 청구권 행사로 영희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철수가 이를 보상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영희의 땅을 남이 사용하는 건데, 손해는 당연히 갚아 주어야지요. 어쨌건 남의 땅 쓰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인지사용청구권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법에는 이런 규정이 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이를 주장하면서 남의 땅을 막 쓰다간 큰일 납니다. 기왕이면 늘 주인과 협의하는 것이 좋겠지요. 내일은 생활방해에 관한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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