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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Apr 29. 2020

민법 제218조, "수도 등 시설권"

제218조(수도 등 시설권) ①토지소유자는 타인의 토지를 통과하지 아니하면 필요한 수도, 소수관, 까스관, 전선 등을 시설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경우에는 타인의 토지를 통과하여 이를 시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하여 이를 시설할 것이며 타토지의 소유자의 요청에 의하여 손해를 보상하여야 한다.
②전항에 의한 시설을 한 후 사정의 변경이 있는 때에는 타토지의 소유자는 그 시설의 변경을 청구할 수 있다. 시설변경의 비용은 토지소유자가 부담한다.


제1항을 읽어봅시다. 낯선 단어들이 눈에 띕니다. 수도(水道)는 말 그대로 물이 흐르는 길이고요, 소수관(疏水管)은 '트일 소'의 글자를 쓰는데, 물을 보내는 송수관, 배수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표현이 참 옛날스러운데 '까스관'은 예상하다시피 '가스관'을 의미합니다. 민법이 하도 옛날에 만들어진 데다가 이런 표현들이 잘 개정되지 않은 상태로 이어져 오는 바람에 보시다시피 놀라운 단어들이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수도나 배수관, 전선과 같은 시설들은 생활에 매우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물과 전기가 없이 생활하는 것은 현대에 거의 어렵지요. 그런데 타인의 토지를 지나쳐서 이런 것들을 부득불 만들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자기 집에 들어오는 배수관을 연결하지 않으면 물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인데, 자신의 집 옆과 뒤로는 모두 절벽이 가로막고 있고, 앞집인 영희의 땅을 통과해서 배수관을 설치하여야만 한다고 합시다. 뭐, 생각해 보면 뒤의 절벽을 다 허물고 배수관을 뒤로 연결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겠지요.


민법은 이러한 경우에 토지소유자에게 시설권(施設權, '시설'이란 설비나 장치 따위를 만들어 놓는 것을 말합니다)을 인정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제1항 단서에서는 시설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하여야 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 토지의 소유자에게 피해가 있는 때에는 이를 보상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요즘 세상에 자기가 자기 손으로 직접 배수관을 놓거나 전선을 설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수도·전기·가스와 같은 공공사업은 한국전력공사나 한국가스공사와 같은 공기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보통은 '도시가스사업법'이나 '전기사업법' 같은 다른 관계 법률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고, 제218조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설치하는 사설수도나 자가용전기시설 등에 적용된다고 하겠습니다(김준호, 2017).


우리의 판례는 "민법 제218조제1항 본문은 “토지 소유자는 타인의 토지를 통과하지 아니하면 필요한 수도, 소수(疏水)관, 까스관, 전선 등을 시설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경우에는 타인의 토지를 통과하여 이를 시설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수도 등 시설권은 법정의 요건을 갖추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고, 시설권에 근거하여 수도 등 시설공사를 시행하기 위해 따로 수도 등이 통과하는 토지 소유자의 동의나 승낙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토지 소유자의 동의나 승낙은 민법 제218조에 기초한 수도 등 시설권의 성립이나 효력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법률행위나 준법률행위라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옆에 있는 땅 소유자가 승낙을 하건 말건 이러한 시설권은 인정되는 것이라고 판결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5다247325, 판결). 얼마 전 공부한 인지사용청구권의 경우,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어 재판을 거쳐서 이웃 토지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했던 것과 비교됩니다. 표현이 어떤 부분이 다른지 확인해 보세요.

제216조(인지사용청구권) ①토지소유자는 경계나 그 근방에서 담 또는 건물을 축조하거나 수선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내에서 이웃 토지의 사용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웃 사람의 승낙이 없으면 그 주거에 들어가지 못한다.
②전항의 경우에 이웃 사람이 손해를 받은 때에는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2항을 봅시다. 제2항에서는, 가스관이나 전선을 설치하고 나서 사정이 변경된 때에는 다른 토지의 소유자(위의 사례에서 영희)가 시설을 변경할 것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학에서 '사정 변경'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사용하는데요, 일반적으로는 자주 쓰지는 않는 말입니다. 이는 사정(事情) 변경, 즉 어떤 상황이나 형편이 바뀌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상황이 바뀌었다"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놀라운 기술이 개발되어서 아주 싼 값에 철수의 집 뒤쪽에 나 있는 절벽으로도 배수관을 충분히 낼 수 있게 되었다면, 이는 사정 변경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말은 안 되지만 영희의 땅을 지나가는 것보다도 더 싸게 먹힌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영희는 더 이상 자신의 토지에 남의 배수관이 지나가는 것을 용인할 필요가 없고, 철수는 제218조제2항에 따라 자기가 돈을 들여서 배수관을 집 뒤편에 다시 설치하여야 할 겁니다.




오늘은 수도 등의 시설권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민법이 소유자의 권리에 대하여 제약을 두고 있다는 것인데요, 오늘 조문의 경우에도 영희는 자기 땅으로 남의 배수관이 지나가는 것을 허용하여야 하는 것을 통해 소유권이 어느 정도 제약된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영희를 위해 그에 따른 보상에 관한 규정도 두었지요. 당사자 간에 어느 한쪽만 불리하게 하지 않고, 서로 형평을 맞추도록 최대한 노력하려는 것이 민법의 취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일은 주위토지통행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제23판, 2017, 6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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