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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291조, "지역권의 내용"

by 법과의 만남
제291조(지역권의 내용) 지역권자는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타인의 토지를 자기토지의 편익에 이용하는 권리가 있다.


오늘부터는 제5장, "지역권"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역권, 왠지 단어만 보았을 때에는 지상권과 비슷해 보이는데요. 그 의미는 좀 다릅니다. 먼저 정막 대놓고 한자를 직역해 보면, 지역권(地役權)이란 땅(地)을 부릴(役)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흔히 부역(賦役)이라는 말을 쓰는데요, 병역과 같이 공적인 일에 불려가 노동을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요.


그래서 사실 지역권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크게 와 닿지는 않지만, 법적인 개념 자체는 제291조에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법적으로 지역권이란 일정한 목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땅을 자신의 땅의 편익에 이용하는 권리를 말합니다.


"도대체 지상권이랑 뭐가 다른 거죠?"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다르기는 다릅니다. 지상권의 경우 남의 땅 위에 건물, 공작물, 수목 같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남의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고요, 지역권은 "남의 땅으로부터" 내 땅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이해가 안 가니까, 예를 들어 봅시다. 철수는 땅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좋은 땅이기는 하나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도로와 연결이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아래 그림과 같이, 철수의 땅은 도로에 접해 있지 않고 그 사이에 영희의 땅이 끼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로와 접한 부분이 전혀 없는 땅을 소위 맹지(盲地)라고도 부르는데, 참고로만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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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에 농사도 짓고 하려면 도로를 통해서 자재도 들여오고, 트랙터도 왔다 갔다 하고 그래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땅을 제대로 이용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바로 이런 경우에 철수는 '지역권' 제도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영희와 지역권 설정계약을 맺고, 영희에게 돈을 좀 주는 대신 영희의 땅 일부를 통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이처럼 지역권을 설정하였을 때, 이익을 제공하여 주는 토지를 어려운 말로 승역지(承役地)라고 하고, 이익을 받는 토지를 요역지(要役地)라고 부릅니다. 사례의 경우에는 영희의 땅이 승역지가 되고, 철수의 땅이 요역지가 되는 것이지요. 솔직히 잘 쓰지 않는 한자어인데 그냥 이런 단어가 있는가 보다 하고 넘어가시면 되겠습니다. 어쨌건 이 표현을 이용하면, 지역권이란 요역지의 편익을 위하여 승역지를 이용하는 권리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권은 소유권은 아니지만 남의 물건으로부터 사용가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제한물권인 용익물권에 해당합니다. 대표적으로 위의 사례에서처럼 통행을 위해서 지역권을 설정하는 경우도 있고, 농사를 짓기 위해 물길을 끌어 오는 경우에도 남의 땅을 쓸 수 있도록 지역권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목적은 다양할 수 있겠지요.


"네, 지상권과 다른 것은 알겠는데, 그럼 임대차하고는 뭐가 다른 거죠?"

이런 질문도 나올 수 있습니다. 사실 위 철수의 사례에서, 철수는 굳이 지역권 설정계약이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서도 영희의 땅을 빌려 쓰는 임대차계약을 하는 방법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희의 땅 중 일부를 철수가 아예 세를 주고 빌려 써버리는 거죠.


이렇게 되면 지역권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의 땅(일부)을 빌려 쓰게 된다는 점은 같지만, 물권이 아닌 채권관계가 될 것이고 철수는 자신이 빌린 면적 부분은 독점해서 쓸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빌린 땅을 꼭 통행로로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것을 할 수도 있다는 거지요.


반면 지역권을 설정한 경우에는 원래의 목적대로 통행을 위해서만 써야 합니다. 따라서 통행을 하지 않을 때에는 본래의 땅 소유자인 영희가 그 땅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임대차와 달리 지역권의 목적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승역지의) 땅 소유자가 그 땅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지역권의 비배타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역권은 배타적인 지배권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일종의 공동이용권이라고 보기도 합니다(김준호, 2017).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땅을 가진 철수의 입장에서 도로에의 통행을 위해 어떤 방법들을 쓸 수 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물론 원칙적으로 '통행'을 목적으로 해서만 지역권이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도로에의 통행을 예로 드는 것입니다. 지역권과 다른 제도 간의 차이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1. 영희의 땅에 지역권설정을 하고 등기를 해서 땅을 사용한다.

지역권을 이용한 방법입니다. 지역권 역시 부동산물권이기 때문에 등기하여야 합니다(민법 제186조). 그 대가로 영희에게 얼마를 지불할지는 철수와 영희가 알아서 정하면 됩니다. 영희가 자비로운 사람이라면 공짜로 지역권을 설정해 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자기 부동산 등기에 지역권까지 써넣어 주면서 공짜로 해주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2. 영희와 임대차계약을 맺고 영희의 땅 일부를 빌려 쓴다.

임대차계약을 이용한 방법입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임차료를 내는 대신 영희의 땅 일부를 빌려 쓰고 그 땅에 통행로를 설치하면 될 겁니다. 지역권과의 차이점은 위에서 설명했습니다. 특히, 임대차계약은 채권관계에 불과하므로 물권인 지역권과 달리 땅 주인이 영희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되면 새로운 주인에게는 주장할 수가 없게 됩니다(즉, 새로운 땅 주인은 이전 주인과 철수가 한 계약 따위 알 바 아닙니다).


3. 영희와 사용대차계약을 맺고 영희의 땅 일부를 빌려 쓴다.

사용대차는 아직 공부한 개념은 아닌데, 계약의 일종입니다. 대충 생각하면 무상으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빌려 쓰고 되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위 임대차와의 차이점은 유상이 아니라 공짜라는 겁니다. 역시 영희가 자비로운 사람이라면 가능합니다.


4. 영희의 땅에 대한 주위토지통행권을 주장한다.

우리는 민법 제219조에서 주위토지통행권을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위토지통행권이란 어떤 땅이 도로와 같은 길에 이어져 있지 않고, 주변의 땅을 지나지 않고서는 길에 나갈 수 없는 등의 요건이 갖추어지면 토지소유자에게 인정되는 법정통행권이라고 했습니다.

제219조(주위토지통행권) ①어느 토지와 공로사이에 그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경우에 그 토지소유자는 주위의 토지를 통행 또는 통로로 하지 아니하면 공로에 출입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때에는 그 주위의 토지를 통행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통로를 개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
②전항의 통행권자는 통행지소유자의 손해를 보상하여야 한다.


이러한 주위토지통행권은 요건이 까다로워 인정받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정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라면 한 번쯤 고려해 볼만 합니다. 지역권과의 차이점은, 지역권은 민법에 규정된 물권으로서 등기할 수 있는 권리에 해당하지만 주위토지통행권은 등기를 할 수 없는 권리라는 것입니다.


또한, 지역권은 예를 들어 땅의 어떤 부분을 통행로로 쓰는지 등기되어 있는 등 그 사용이 특정한 장소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반면, 주위토지통행권은 등기되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통행로의 위치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바뀔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통행로가 있는 땅의 주인이, 그 땅에 원래는 없던 건물을 세워서 해당 통행로가 걸리적거리게 된다면, 주위토지통행권자는 통행지 소유자의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하여야 하기 때문에(제219조제1항 단서), 통행로를 옮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주위토지통행권은 통행을 위한 지역권과는 달리 그 통행로가 항상 특정한 장소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주위토지통행권확인청구는 변론종결시에 있어서의 민법 제219조에 정해진 요건에 해당하는 토지가 어느 토지인가를 확정하는 것이므로, 주위토지 소유자가 그 용법에 따라 기존 통행로로 이용되던 토지의 사용방법을 바꾸었을 때에는 대지 소유자는 그 주위토지 소유자를 위하여 보다 손해가 적은 다른 장소로 옮겨 통행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라고 하여(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8다75300,75317,75324 판결) 같은 입장이므로, 판례문을 읽어 보시고 주위토지통행권의 지역권의 차이를 이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통행을 위한 지역권을 위주로 알아보았는데요, 자주 사용되는 만큼 예시를 든 것 뿐이지 지역권이 이런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웃한 땅에 건물이 올라가게 되면 내 땅에 햇빛이 가려져서 농작물이 말라 죽을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웃 땅 주인과 협의해서, 이웃한 땅에는 향후 햇빛을 가리는 건물을 짓지 않겠다는 지역권을 설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건물을 새로 안 짓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편익'도 편익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건물을 짓지 않기로 한 땅이 승역지, 그러한 무(無)행동으로 인해서 이득을 보는 내 땅을 요역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와 같이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역권부작위지역권이라고 하는데, 참고로 알아 두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지역권의 개념을 알아보고, 다른 개념과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역권의 경우에는 사실 우리가 나중에 배울 저당권이나, 앞서 배운 소유권, 지상권보다 현실에서 훨씬 덜 이용되는 제도이긴 합니다. 아무래도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임대차 등 대체할 만한 편리한 제도가 많이 있기도 하고, 등기를 해야 하는 등 불편한 측면도 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물권법에서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파트이니, 한 번쯤 꼼꼼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지역권의 부종성에 대하여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제23판, 2017, 74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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