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조(지역권취득기간) 지역권은 계속되고 표현된 것에 한하여 제245조의 규정을 준용한다.
우리는 예전에 취득시효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가물가물하다면, 취득시효에 관한 제253조 파트를 복습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우리가 제245조, 제246조에서 공부하였던 것은 ‘소유권’의 취득시효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와 유사하게 지역권 역시 시효로 취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지역권이 없는 경우에 지역권을 시효로 취득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①첫째, 어떤 요역지(편익을 받고 있는 땅)이 있는데, (이 말은 근처의 다른 땅, 승역지에 지역권이 이미 설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요역지를 시효취득함으로써 지역권을 함께 취득하는 것입니다.
즉, 엄밀히는 지역권을 시효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땅’ 자체를 시효취득함으로써 지역권도 함께 얻는 것입니다. 땅을 얻으면 지역권도 따라온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우리가 공부한 제292조에 따를 때 자연스러운 결론입니다(지역권의 부종성). 복습 겸 한번 다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②두 번째 방법은 원래 자기가 갖고 있는 땅(따라서 땅 자체를 시효취득할 필요는 없음)에 지역권을 새로이 취득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②의 방법이 제294조에서 규율하고 있는 내용이며, 위 ①의 방법은 제294조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취득시효의 법리에 따라 해결하면 됩니다(김준호, 2017).
그런데 제294조는 지역권은 “계속되고 표현된” 것에 한해서 제245조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아직 확실히는 모르지만 뭔가 제한이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봅시다.
제245조(점유로 인한 부동산소유권의 취득기간) ①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②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자가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선의이며 과실없이 그 부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소유권을 취득한다.
먼저 ‘계속된’ 지역권이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지역권이 중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표현된’ 지역권이라는 것은 지역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외부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요역지에 햇빛이 잘 들게 하기 위하여 승역지에 높은 건물을 세우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지역권”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 이러한 지역권은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권리가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외부에서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건물이 없으니까, 일단 지역권은 잘 지켜지고 있기는 한데 제3자는 그런 사정을 눈으로 보고서는 알 수가 없지요. 땅이 텅 비어 있으니까요. 이것은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지역권이라고 할 것입니다.
반면에 통행로가 있다면, 누구라도 ‘아, 이 땅에는 저 땅과 연결되는 길이 나 있구나’라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는 지역권이 ‘표현’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통행을 하기는 하는데 통로 없이 그냥 그때 그때 다니기만 하는 경우라면(간헐적으로만 통행하는 경우), 이는 권리의 내용(통행을 하는 것)이 때때로 중단되는 등 ‘계속’되지 않는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통로를 개설하고 통행을 하여야 ‘계속’된 지역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땅에 과수원을 일구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익은 과일을 떼어다 팔려고 보니까 자기 땅이 도로랑 연결이 안 되어 있습니다. 이에 철수는 자기 땅 옆에 있는 영희의 땅에 판자를 대어서 통로를 개설하고, 무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습니다. 20년이 경과한 후, 영희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자신의 땅에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그런데 웬걸, 생각도 못한 통로가 큼지막하게 나 있고, 철수가 그 통로를 이용해서 과일을 가득 실어 옮기고 있었던 겁니다.
영희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자기 땅에 설치한 저 흉물스러운 통로를 치우라고 합니다. 그럼 철수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통로를 안 없애도 됩니다. “저는 통행지역권을 시효취득했으므로, 통로를 치울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겁니다(추가로 등기를 해야 하는 요건이 있긴 한데, 이 부분은 여기에서는 중요한 건 아니니 해결되었다고 대충 넘어가겠습니다).
제294조는 제245조의 규정을 준용하고 있으니 이걸 조합해서 생각해 봅시다. 철수는 ①지역권을 행사하려는 의사로, ②평온, 공연하게 ③20년간 지역권을 행사해 왔으므로, ④등기를 함으로써 지역권을 취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245조에서는 ‘소유의 의사’가 요건인데 여기서는 지역권에 관한 규정이니까 지역권을 행사하려는 의사로 해석하면 됩니다. '준용'의 의미에 대해서는 민법총칙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의 판례는 계속되고 표현된 지역권이라는 개념을 학설에서보다 좀 더 엄격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먼저 “민법 제294조의 규정에 의하여 지역권은 계속되고 표현된 것에 한하여 민법 제245조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통행지역권은 요역지의 소유자가 승역지 위에 도로를 설치하여 승역지를 사용하는 객관적 상태가 민법 제245조에 규정된 기간 계속된 경우에 한하여 그 시효취득을 인정할 수 있다.”라고 하고 있어(대법원 1992. 9. 8. 선고 92다20385 판결), 소위 ‘객관적 상태’가 제245조에서 정하는 기간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 “민법 제294조에 의하여 지역권을 취득하려면 그 지역권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행위가 계속되고 표현된 것에 한하여 민법 제245조의 규정이 준용된다 할 것이므로 요역지의 소유자가 타인의 토지를 20년간 통행하였다는 사실만으로서는 부족하고 요역지의 소유자가 승역지상에 통로를 개설하여 승역지를 항시 사용하고 있는 상태가 민법 제245조에 규정된 기간 계속한 사실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하여(대법원 1970. 7. 21. 선고 70다772,773 판결), 이익을 받는 땅(요역지)의 주인이 통로를 개설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굳이 요역지의 소유자가 직접 통로를 개설하여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일부 비판도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문헌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통행권이나 통행지역권은 모두 인접한 토지의 상호이용의 조절에 기한 권리로서 토지의 소유자 또는 지상권자 전세권자등 토지사용권을 가진자에게 인정되는 권리라 할 것이므로 위와 같은 권리자가 아닌 토지의 불법점유자는 토지소유권의 상린관계로서 위요지 통행권의 주장이나 통행지역권의 시효취득 주장을 할 수 없다.”라고 하여(대법원 1976. 10. 29. 선고 76다1694 판결), 땅을 마음대로 불법 점유한 사람은 지역권의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판례의 태도가 좀 엄격하다고 볼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지역권을 시효로 취득하는 것은 상당히 큰 이익이 때문에 그런 판례의 입장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위 사례에서의 철수와 같이 지역권을 취득하는 경우에는 무상(!)의 지역권을 얻게 됩니다. 공짜로 남의 땅을 오갈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는 것인데요, 그렇기에 20년, 평온, 공연 등 까다로운 요건들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제294조는 제245조 전체를 준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245조제1항뿐 아니라 제245조제2항에 따른 등기부 취득시효도 가능하다는 점, 알고 넘어가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요건 역시 제245조제2항에 따른 요건을 준용하여야겠지요.
오늘은 지역권의 취효시득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실제로 지역권의 시효취득이 적용되는 가장 흔한 사안은 ‘통로를 개설한 통행지역권’과 ‘수로를 개설한 용수지역권’이라고 합니다(홍동기, 2019). 왜 하필 통로와 수로가 꼭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앞서 계속성과 표현성의 측면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지역권의 취득과 불가분성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제23판, 2017, 749면.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물권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204-206면(홍동기).
2024.1.11.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