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조(비영리법인의 설립과 허가) 학술, 종교, 자선, 기예, 사교 기타 영리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 또는 재단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 이를 법인으로 할 수 있다.
앞서 우리는 제31조에서 법인의 개념과 종류 등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어제 우리 민법에서는 영리법인이 아니라 비영리법인에 대하여 규율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영리법인에 관련하여서는 '상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민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32조는 본격적으로 비영리법인(비영리 재단법인, 비영리 사단법인)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제32조는 비영리법인의 설립요건을 정하고 있는 조문입니다. 제32조에 있는 내용을 하나씩 뜯어봅시다. 비영리법인이 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일까요?
"학술, 종교, 자선, 기예, 사교"는 예시를 들고 있는 것이고요, 이러한 것들을 포함해서 그 밖에 "영리 아닌"(=비영리) 사업을 목적으로 하여야 합니다. 즉 구성원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여 그 수익을 구성원들에게 분배하는 법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영리 아닌' 사업이기만 하면 충분하고, 굳이 공익을 목적으로 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비영리라고 해서 모두 공익적인 것은 아님에 주의하세요. 따라서 비영리법인에는 비영리의 '공익법인'도 있고 비영리의 '비공익법인'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서 철수가 자신의 고향 사람들을 모아 향우회를 설립하고, 이를 비영리법인으로 만들었다고 합시다. 향우회가 공익적인 단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제32조는 학술이나 자선 등을 비영리사업의 예시로 들고 있는데, 사실상 학술이나 자선 사업 등은 '사회복지사업법'이나 '사립학교법' 등에 의해서 규율되고 있기는 합니다.
사실 어떤 단체가 법인으로 신청을 했을 때, 영리법인인지 비영리법인지는 설립허가를 담당한 주무관청에서 판단하게 됩니다. 주무관청에서는 단체의 설립 목적이나 사업 내용, 사원의 자격, 출자방법, 자산상태 등을 면밀히 검토해서 "구성원에게 이익을 분배하는가?"를 판단하게 됩니다. 다만, 설령 비영리법인으로 허가를 받았더라도 그 '비영리' 법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부수적으로 영리행위를 하는 것은 가능하긴 합니다. 비영리법인의 본질에 반하지 않는 정도면, 가능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학술단체인 비영리법인이 전시회를 개최하고, 그 과정에서 입장료를 받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이지요(김용덕, 2019).
이때의 설립행위는 제32조가 아니라 나중에 배울 제40조에서 등장합니다만, 비영리법인의 설립요건 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보고 지나가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요점은 '정관'이라는 것을 작성해서 여러 명의 설립자들이 기명날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사단법인의 경우는 정관 작성이 곧 설립행위가 되는 것이지만, 재단법인에서는 설립행위에 정관 작성 + 재산 출연행위가 포함된다는 차이점이 있다는 겁니다. 재산 출연에 대해서는 향후 공부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정관 작성에 초점을 두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40조(사단법인의 정관) 사단법인의 설립자는 다음 각호의 사항을 기재한 정관을 작성하여 기명날인하여야 한다.
1. 목적
2. 명칭
3. 사무소의 소재지
4. 자산에 관한 규정
5. 이사의 임면에 관한 규정
6. 사원자격의 득실에 관한 규정
7. 존립시기나 해산사유를 정하는 때에는 그 시기 또는 사유
정관이란, 단체의 목적·조직·업무 집행 등에 관한 근본적인 권한과 책임 등을 정한 규칙입니다. 정(定)은 "정하다"라는 의미이고요, 관(款)은 한자로 "항목"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직역하자면 "항목이나 내용을 정한 것"이라는 뜻이지요.
아까 본 것처럼 철수가 향우회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철수가 만들었다고 철수 마음대로 해서는 될까요? 철수와 함께한 여러 명의 고향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철수는 마음대로 자기가 회장이 되거나 회장의 임기를 10년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이에 향우회 회원들이 모여서 일종의 규칙을 정하는 겁니다. 회장은 회원의 과반수가 모여서 투표를 하여야 하고, 그중 최다 득표자가 되어야 하며, 임기는 2년으로 한다, 이런 식이지요.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정관이라는 게 결국 자기들끼리 입을 맞춰서 정한 거 아닌가? 언제든 바꾸면 그만인 것인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아니오, 매우 중요합니다. 법인의 정관은 법인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로, 엄격하게 규율되는 것입니다. 그냥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서 정하고 단톡방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그런 게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의 판례는 "사단법인의 정관은 이를 작성한 사원뿐만 아니라 그 후에 가입한 사원이나 사단법인의 기관 등도 구속하는 점에 비추어 보면, 그 법적 성질은 계약이 아니라 자치법규로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이는 어디까지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그 규범적인 의미 내용을 확정하는 법규해석의 방법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지, 작성자의 주관이나 해석 당시의 사원의 다수결에 의한 방법으로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대법원 2000. 11. 24., 선고, 99다12437, 판결)라고 하여, 정관은 단순히 사인 간에 뜻이 합치되는 계약이 아니라 '자치법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법인은 자연인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법인격으로서 법률행위도 하고, 또 큰 법인인 경우에는 중요한 (거액의) 거래도 많이 하게 될 텐데, 그 내부규칙을 자기들 마음대로 언제든 바꿔서야 쓰겠습니까. 그랬다가는 법인의 내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불의의 피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인을 설립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엄격한 요건을 지켜서 정관을 작성하고, 나중에 정관을 바꾸고 싶어도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합니다.
제32조에 따르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철수가 향우회를 만드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이지만, 이것을 "비영리법인"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소관 부처에서 OK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주무관청에서 철수의 향우회 법인 신청을 거부하면, 철수는 어쩔 수 없이 법인이 아니라 그냥 모임의 형태로 향우회를 운영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때의 허가는 주무관청의 재량에 달린 것이어서, 원칙적으로 철수는 이에 대항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약 "주무관청의 법인설립 불허가처분이 사실의 기초를 결여하였다든지 또는 사회관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다는 등의 사유가 있거나, 주무관청이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판단과정에 합리성이 결여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사정이 있는 때"(대법원 1996. 9. 10. 선고 95누18437 판결)에는 철수가 주무관청의 불허가를 가지고 소송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로는, 철수의 허가를 담당한 공무원이 옛날부터 철수와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이어서 그 신청의 불허가를 해버린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여하튼 이제 주무관청의 허가까지 무사히 받은 철수의 향우회는 비영리법인이 될 마지막 단계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단계는 제33조에서 배울 것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주석민법[총칙(1)], 한국사법행정학회, 제5판, 2019, 662-6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