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조(법인성립의 준칙)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 아니면 성립하지 못한다.
오늘부터는 민법의 새로운 장(제3장)에 들어갑니다. 제3장의 제목은 '법인'입니다. 제3장 제1절의 제목은 '총칙'으로, 앞으로 공부할 법인 제도의 중요한 원칙들을 개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법인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민법에도 법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개념 정의는 나오지 않습니다. 법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법률행위의 주체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체가 있고 피가 흐르는, 그런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혼자서 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단체를 만들고 회사도 만들곤 합니다. 예를 들어 10명의 사람이 모여 A회사를 세웠다고 합시다. A회사가 영업을 하려면 땅도 사고 트럭도 사고 기자재도 사야겠지요? 그 모든 물건들의 소유를 A회사가 아니라 10명의 사원 각각의 명의로 하려면 굉장히 불편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법률은 인간 그 자체와는 다른 '단체'를 최소한 법에서만큼은 인간과 유사하게 대접(?)해주는데요, 이것이 바로 법인입니다(엄밀히는 '사단법인'입니다. 편한 이해를 위해서 간단한 예를 들었는데, 또 다른 법인의 형태인 재단법인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게요).
법인이란 말 그대로 "법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현실에서의 인간이 아니라 법적인 인간이라는 거지요. 법인은 주먹이 없어서 여러분을 때릴 수도 없고 눈이 없어서 여러분을 볼 수도 없는 관념적인 존재이지만, 법 제도 하에서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앞으로는 피와 육체를 가진 현실의 인간을 법인과 구별하여 '자연인'이라 부르겠습니다.
법인은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A회사는 땅을 살 수 있고(땅의 소유권이라는 권리의 주체), 영업의 결과에 따라 법인세를 정부에 내기도 합니다(세금을 내야 할 의무의 주체). 그러니까 A회사를 세운 10명 중에 철수가 가장 공이 크다고 해도, 최대 주주라고 하더라도 A회사는 철수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될 수도 없습니다. 철수가 자연인으로서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A회사 역시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주체로서 그냥 A회사일뿐입니다. 그러니까 철수는 A회사의 소유물인 땅과 건물을 자기 것처럼 써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법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법인의 종류는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눌 수 있지만, 여기서는 자주 쓰이는 것 2가지만 공부합시다. 너무 많이 소화시키려면 탈 납니다.
우리 민법은 법인의 종류를 2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정한 목적을 위해 '사람'이 결합한 단체(사단법인), 다른 하나는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바쳐진 '재산'(재단법인)입니다. 전자는 이해가 쉽게 가시겠지만, 후자는 약간 의아합니다. '재산'이 법인이라고? 흔히 뉴스에서 나오는 재단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 평생 열심히 돈을 모은 철수가 나이가 들어 좋은 일을 해보고 싶어 져서, 자신의 재산을 바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입니다.
재단의 경우 사단과는 달리 '사람'이 아니라 '재산'이 주축이 되어서 법인이 설립된 것이기 때문에 사단과는 다른 운영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을 나누어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단법인에서는 아무래도 그 재산을 처음 출연한 사람의 의사가 매우 중요하겠지만, 사단법인에서는 그 법인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의사가 중요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은 서로 다릅니다.
이 말은 여기저기서 자주 들어 보셨을 겁니다. '영리'란 쉽게 말하면 돈을 번다는 것이지요. '영리를 추구한다'라는 표현은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니 이해하기가 편할 것입니다. 영리법인은 말 그대로 돈을 벌어서 그 구성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입니다. 주의할 것은, 영리법인인지 여부는 '구성원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법인이 수행하고 있는 사업의 성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설령 얼핏 보기에 공익적으로 보이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이 구성원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것에 있다면 그 법인은 영리법인입니다.
비영리법인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법인입니다. 예를 들어서 철수가 위에서 설립한 장학재단은, '재산'으로 이루어져 있지 구성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구성원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 원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철수의 장학재단은 재단법인이자 비영리법인입니다. 사실, 모든 재단법인은 비영리법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장학재단에 갔더니, 직원분이 계시던데요? 상담도 해주시던데요? 그 직원도 월급을 받고 일할 텐데, 그러면 구성원이 돈을 받고 일하니까 영리법인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법인에 대해 공부할 때 오해하기 쉬운 것이 법인의 '사원(구성원)'의 개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법인의 구성원으로서의 '사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회사의 '직원'이 아닙니다. 구성원으로서의 사원은 말 그대로 법인을 구성하는 주체로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주주'입니다. 주식회사는 돈을 벌어서 주주들에게 이익을 분배하지 않습니까? 이때의 주주가 바로 사원인 것이지요. 비영리법인에서는 사원총회에서 의결권이 있는 사람이 바로 사원입니다.
재단에 고용되어서 일하는 사람은 재단과 근로계약을 맺고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한 후 월급을 받아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단체를 구성하는 사람으로서 이익을 받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재단법인에서 어떤 직원을 만나셨건 그분은 '사원'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서운할 수도 있겠네요.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하는데 사원이 아니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억울하실 수도 있겠지만 법적인 표현의 차이일 뿐이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사원이건 직원이건 월급은 들어오는 거니까요.
앞서 배운 개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3가지 원칙을 기억해두면 편합니다.
첫째, 법인에는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이 있다.
둘째, 재단법인은 모두 비영리법인이다.
셋째, 사단법인은 영리법인일 수도(흔히 말하는 '영업'하는 회사), 비영리법인일 수도 있다.
이를 간단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인이란 자연인 이외에 법인격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법인의 실체가 사람인가 재산인가에 따라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으로 구별된다. 그리고 법인의 목적에 따라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으로 목적·준거법·강제성·공권력 등을 표준으로 하여 공법인과 사법인 및 중간법인으로 한국에 주된 사무소가 있고 한국 법률에 의하여 설립되는 내국법인과 그렇지 않은 외국법인으로 분류된다(출처 : 대한민국 법원 인터넷등기소).
지금까지 법인의 종류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법인은 이러한 분류 외에도 공법인-사법인의 분류, 일반법인-특수법인의 분류 등 다른 다양한 형태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이만큼만 하는 것으로 하지요. 일단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법은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사단법인 중 특히 영리법인(회사)의 경우에는 민법 말고 상법이라는 법률이 이미 규율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상업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면, 민법 외에 상법이 따로 있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요. 여하튼 상법에서 회사를 따로 규율하고 있는 이유로, 우리의 민법에서는 오직 비영리법인(사단법인 중 비영리법인 + 재단법인)만을 규율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회사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상법을 공부하시면 되겠습니다.
긴 서론을 지나 이제 제31조를 볼까요? 제31조는 법인이 어떤 방식을 통하여 성립되어어야 하는지 천명하고 있습니다. 법인은 '법률'에 의해서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법인은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법인 법정주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회사를 차리고 싶다면, 철수는 '상법'이라는 법률에 따라 회사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철수가 "나는 영리법인인 재단법인을 국내 최초로 론칭하고 싶다."라고 하면서 법인을 설립하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영리법인인 재단법인은 어떤 법률에서도 존재하지 않으며, 법률에 근거가 없으므로 제31조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단체 결성의 자유는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것 아닌가요? 왜 내가 법인을 차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차릴 수가 없죠?"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자유는 무한정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따라 약간은 제한이 가해질 수도 있습니다. 마음대로 법인을 누구나 세울 수 있다고 해볼까요? 위에서 말했듯이 법인은 그냥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법인격'을 가진 또 다른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아무런 규제도, 규율도 받지 않고 마구 생겨난다면, 유령회사가 온 세상에 넘쳐날 수도 있고 어제 거래했던 법인이 오늘 없어져서 거래한 사람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5천만 국민이 모두 각자 자기의 법인을 가지고 거래를 할 수도 있지요.
"나는 친구들과 골프 모임을 만들어야지."라고 하면 그냥 만들면 됩니다. 어떤 제한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 만든 골프 모임을 법인으로 인정받아야지."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법인은 굉장히 법적으로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성립 절차도 까다로운 것이지요. 그러니 너무 억울해할 것 없습니다.
오늘은 법인의 기초적인 개념에 대하여 공부하여 보았습니다. 법인 파트를 처음 시작하는 부분이다 보니 힘이 좀 많이 들어갔고, 공부할 양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일은 조금 덜 공부할게요.
*참고문헌
대한민국 법원 인터넷등기소: 등기용어해설, http://www.iros.go.kr/pos1/pfrontservlet?cmd=PTRMGetListRgsTrmC, 2019. 7. 16.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