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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Jun 30. 2019

민법 제30조, "동시사망"

제30조(동시사망) 2인 이상이 동일한 위난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실종 파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사실 '부재와 실종'이라는 제목이 달린 제3절에 제30조가 위치하고 있기는 한데, 제30조 자체는 부재와 실종보다는 '사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굳이 부재와 실종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망시점 확정의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제30조를 참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망의 시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가 권리능력을 공부하면서부터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망시점이 확정되어야 상속이 이루어지고, 상속의 순위 같은 것도 사망시점이 바뀜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와 영희는 부부입니다. 둘 사이에는 아들 민수가 있었고(3인 가족), 효자였던 철수는 고령의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아내는 좀 피곤했겠네요. 여하튼 철수는 오랜만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자고 제안합니다. 철수, 영희, 아들 민수가 여행에 참가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탄 비행기가 불행히도 추락하였고, 영희를 제외한 남편과 아들 모두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 불행한 사건에서 영희 외에 2인이 '사망'한 것은 확실합니다만, 누가 먼저 죽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를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앞좌석에 탔던 철수가 먼저 사망했을 수도 있고, 나이 어린 민수가 충격으로 먼저 사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동시사망'에 관한 제30조가 없다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1. 철수가 먼저 사망하고 그 후 아들 민수가 사망한 경우

제1000조(상속의 순위) ①상속에 있어서는 다음 순위로 상속인이 된다.  <개정 1990. 1. 13.>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2.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3.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 피상속인의 4촌 이내의 방계혈족
②전항의 경우에 동순위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최근친을 선순위로 하고 동친등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공동상속인이 된다.
③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제1003조(배우자의 상속순위) ①피상속인의 배우자는 제1000조제1항제1호와 제2호의 규정에 의한 상속인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속인과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그 상속인이 없는 때에는 단독상속인이 된다.


위의 조문을 대충만 읽어 보세요. 상속에 대해 자세히 공부할 건 아니니까 슬쩍 보시면 됩니다. 철수가 먼저 사망하게 되면, 철수의 재산은 누가 상속받을까요? 상속은 사망으로 개시되니까, 우선 철수가 죽는 순간에 제1순위인 아들 민수(직계비속)가 상속을 받고, 제1003조제1항에 따라 동순위가 된 아내 영희(배우자)도 상속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도 곧이어 죽었으니까 다시 민수의 재산(철수에게 방금 물려받은 재산)은 단독 상속인인 어머니 영희에게 돌아갑니다. 결국 영희는 철수의 재산을 100% 다 상속받게 되는 것이지요. 편의상 어린 민수는 부모의 재산 외에 자신이 직접 모은 재산은 전혀 없다고 가정합시다.


2. 아들 민수가 먼저 사망하고, 철수가 그다음 사망한 경우


아들 민수가 먼저 사망하고, 그다음 건장한 철수가 사망하였다고 합시다. 이 경우 아들 민수의 재산에 관한 상속이 먼저 이루어지겠지만 민수는 미성년자라 돈이 없어요. 상속할 게 없습니다(현실이라면 보험금의 문제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맙시다. 머리 아픕니다). 뒤이어 철수가 사망하게 되면 이제 철수의 재산 상속이 개시되는데, 이때 원래 1순위였던 민수가 이미 죽고 없으므로 2순위인 철수의 아버지(영희의 시아버지)와 영희가 공동 상속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 영희는 철수의 재산을 60%만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왜 60%인가 하면, 민법 제1009조에 배우자에 대한 혜택을 50% 더 주도록 정해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계산이므로 직접 조문을 보고 왜 60%가 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의 2가지 사례를 보면 사망시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살아남은 영희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런 종류의 재난상황에서는 누가 먼저 죽었는지 알 길이 없고(예를 들어 철수가 단 5초 먼저 민수보다 죽었다고 해보세요. 이걸 나중에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면 상속 문제로 인한 가족 간의 소송이 빗발치겠지요? 때문에 민법 제30조는 이런 경우에는 '동시에 죽었다'라고 간주해서 다툼의 여지를 줄여 주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철수와 아들 민수가 동시에 죽은 것으로 간주되므로, 영희는 철수의 재산에 관하여 철수의 아버지와 같은 상속 순위가 되고 따라서 철수의 재산을 60% 상속받게 됩니다. 만약 실제로는 철수가 먼저 죽고 민수가 나중에 죽은 것이 팩트라면 영희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제30조를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추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간주'와 '추정'은 다르다고 공부했었지요? 잊어버리신 분은 제28조(실종선고의 효과) 부분을 다시 읽어 보세요. 추정은 간주보다 조금 더 약한 개념이므로, 반증으로 깨뜨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희가 의사의 소견서와 블랙박스 영상 등을 근거로 철수가 민수보다 먼저 죽었다는 것을 보여 주면, 영희는 철수의 재산을 100% 상속받을 수 있게 되겠지요.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여기까지 해서 부재와 실종 파트를 모두 공부하였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소 생소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법인'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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