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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Mar 11. 2022

민법 제330조, "설정계약의 요물성"

제330조(설정계약의 요물성) 질권의 설정은 질권자에게 목적물을 인도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단어가 조금 난해합니다. 조 제목이 '설정계약의 요물성'인데, 요물, 요사스러운 동물이라는 말을 들어본 것 같긴 하지만 뭔가 여기서 말하는 뜻은 아닌 듯합니다. 요물성(要物性)은, 직역하자면 대충 '물건'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해 온 '계약'에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계약 당사자 간의 '합의'만으로 계약이 깔끔하게 성립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계약을 낙성계약(諾成契約)이라고 합니다. 단어가 생소하기는 한데, 대충 번역해서 승낙함으로써 성립되는 계약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계약의 형태가 이러한 낙성계약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자신의 만년필을 영희에게 팔기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면, 딱히 철수가 만년필을 영희에게 실제로 건네지 않았더라도 '계약의 체결'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철수가 제안하고, 영희가 승낙함으로써 계약은 간단하게 성립하는 것입니다.


반면, 낙성계약과 달리 당사자의 합의에 더하여 물건의 인도와 같은 별도의 급부가 있어야 성립하는 계약이 있는데 이러한 계약을 요물계약이라고 합니다. 즉,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계약이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고,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물계약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현상광고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부자는 자신이 아끼던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에 광고문을 붙이고, "내 지갑을 찾아 주시는 분께는 사례로 1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연락처(나부자: 010-1111-1111)"라고 써 놓았습니다. 만약 지나가던 김거지가 나부자의 지갑을 찾아 돌려준다면, 나부자는 약속대로 김거지에게 100만원을 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도 계약이라고 하나요?"

네, 계약이라고 합니다. 물론 단독행위라는 학자들도 있습니다(단독행위와 계약에 관하여는 [민법총칙] 파트 참조). 하지만 우리의 다수설은 위와 같은 현상광고도 계약의 일종으로 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위의 사례에서 김거지가 지나가다가 '광고문'을 읽은 것만으로는 현상광고의 계약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령 김거지가 "좋아, 지갑을 찾아서 꼭 100만원을 타야지."라고 결심하고 하루 종일 지갑을 찾아 헤맸다고 하더라도, 계약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거지가 나부자에게 100만원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김거지가 지갑이라는 '물건'을 나부자에게 찾아주는 바로 그 순간부터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물계약입니다.


자, 이제 민법 제330조로 돌아가 봅시다. 질권의 설정은 질권자에게 목적물을 인도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미 공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제188조(동산물권양도의 효력, 간이인도) ①동산에 관한 물권의 양도는 그 동산을 인도하여야 효력이 생긴다.
②양수인이 이미 그 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만으로 그 효력이 생긴다.


질권을 설정하는 계약도 법률행위에 의하여 동산물권이 변동하는 것이므로, 제188조에 따라 동산을 인도하여야 효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제188조로 충분할 같은데, 굳이 우리 민법은 제330조를 따로 만들어 두었을까요? 그래서 제330조의 해석을 놓고 학계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해석에 주의할 점이, 요물계약의 개념 정의는 당사자의 합의뿐 아니라 물건의 인도 등 별도의 급부까지 있어야 '성립'하는 계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공부하는 민법 제330조는 물건의 인도에 따라 계약이 '성립'한다고 하지 않고 '효력이 생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330조에서 명시적으로 "질권설정계약은 요물계약이다"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학자들 입장에서는 입법자의 의도가 궁금하다는 거죠.


어떤 학자들은, 제330조가 우리 민법이 옛날 민법의 의사주의를 버리고 성립요건주의로 전환한 것을 망각하고, 의사주의를 취한 옛날 민법 규정을 그대로 답습한 '입법상의 오류'이므로, 제330조는 추후 민법 개정으로 삭제하여야 하고 따라서 제330조에도 불구하고 질권설정계약을 요물계약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정병호, 2016). 반면, 어떤 학자들은 민법 제188조에서는 동산에 관한 물권의 '양도'라고만 규정했지 '설정'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므로, 제188조에 빠진 부분을 제330조가 채워 주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김준호, 2017), 어떤 학자들은 질권설정계약을 요물계약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설령 질권설정계약을 요물계약으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제330조의 제목이 '설정계약의 요물성'으로 되어 있는 것은 부적절하므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강태성, 2005). 생각하건대, 그냥 나중에 민법을 개정하면서, 제188조에서 '양도'를 '양도와 설정' 정도로 고치고, 혼란을 발생시키는 제330조는 삭제해 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듯싶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학설이 찬성과 반대 의견 등으로 복잡한데, 여기서 모두 이해하실 필요는 없고 그냥 참고로만 알아 두시면 좋을 듯합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그냥 질권설정계약을 했으면, 그 질물(제330조에서는 '목적물'이라고 표현)을 인도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는 내용 자체만 기억하고 넘어가시면 되겠습니다.

*강태성(2005)는 질권의 객체는 '질물'이므로, '질물'이 '질권의 목적'인데, 현행법에서는 '목적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서 의미상 '질물물'이라고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적물'이라는 표현 대신 '동산'이라고 쓰자는 의견인데, 재미로 읽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오늘은 낙성계약과 요물계약의 개념, 질권설정계약의 요물성에 대한 학설의 논쟁 등을 알아보았습니다. 내일은 질권의 목적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강태성, <민법 제2편(물권)의 개정>, 한국재산법학회, 재산법연구 제21권제2호, 2005, 37면.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제23판, 2017, 823면.

정병호, <요물계약 개념의 유래와 현행법상 요물계약설에 관한 비판적 고찰>, 법사학연구 제53호, 2016, 2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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