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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May 09. 2022

민법 제339조,"유질계약의금지"

제339조(유질계약의 금지) 질권설정자는 채무변제기전의 계약으로 질권자에게 변제에 갈음하여 질물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하거나 법률에 정한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질물을 처분할 것을 약정하지 못한다.


오늘 공부할 내용은 '유질계약'입니다. 한자로는 '流質契約'으로, '질'이나 '계약'의 의미는 이미 아실 것입니다. 다만 '유'라는 한자를 왜 사용하였을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사실 법학은 오래 공부하신 분들 중에도 왜 '유질계약', '유저당계약'에서 '유'라는 한자를 쓰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의 '유'(流)는 '흐르다'의 의미는 아니고, '추방하다, 배제하다, 내치다, 귀양보내다, 유배보내다' 정도의 의미입니다. 즉, '질권을 배제하는 내용의 계약'을 '유질계약이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질권의 성질에 반하는 계약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질권의 한 종류'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강태성, 2005). 그렇다면 어떤 계약이기에, 질권을 '내치고 배제하는' 계약이라고 하는 걸까요?


제339조는 질권설정자가 '채무변제기 전'에 계약을 맺어서 질권자로 하여금 변제 대신 질물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하거나,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르지 않고 질물을 처분하도록 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여러 차례 급전이 필요한 철수는 오늘도 돈이 궁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몇 개가 있는지 모를 시계를 하나 가져다가 옆집의 나부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시계에 질권을 설정하고(입질하고), 나부자를 질권자로 하여 100만원을 빌리려고 합니다. 철수는 돈을 빌린 날부터 1년 안에 100만원을 갚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부자가 이런 제안을 합니다. "자네가 돈을 갚겠다고 하지만, 자네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돈을 못 갚게 되면 내가 손해를 보지 않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돈을 갚지 못하면 이 시계는 내가 아예 갖는 것으로 하면 안 되겠나?" 철수는 꺼림칙하지만 돈이 일단 급하니 어쩔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부자가 제안한 조항을 계약서에 넣어서 사인을 합니다.


그러나 제339조에 따르면 이러한 유질과 관련된 계약(조항)은 무효입니다. 변제기(1년 뒤) 전에 계약으로서 질권자(나부자)가 채무자(철수)로부터 변제를 받는 대신에 질물(시계)의 소유권을 취득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 민법에서는 왜 이런 규정을 두어, '마음대로 계약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일까요?


몇몇 학설이 있지만, 제339조의 취지를 채무자 보호에서 찾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즉, 위의 철수 사례에서처럼 채무자는 '을'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고요, 그렇기 때문에 소액의 채무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고액의 물건을 질권자에게 맡기고, 결국에는 그 물건의 소유권을 뺏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고작 돈 몇만 원을 빌리려는 가난한 사람이 급한 대로 자신의 가보를 맡겼다가, 나중에는 그 가보의 소유권을 빼앗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아래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계약은 제339조에 위반하여 무효가 됩니다.

1. 채무의 변제기 이전에 맺은 계약일 것
2. 계약의 내용이 변제를 대신하여 (질권자가) 질물의 소유권을 갖게 되거나, 법률에 정한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질물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 경우

*참고로 여기서 '법률이 정한 방법'이란 우리가 어제 공부한 '경매'나 '간이변제충당' 등의 방법을 의미합니다(제338조).


반대로 생각하면, 왠지 유질계약 같아 보이는 계약이더라도 위의 요건을 모두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그건 제339조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유효한 계약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나부자가 변제기가 지난 후(1년이 지난 후)에도 철수가 돈을 못 갚는 것을 보고, 철수와 상의하여 시계의 소유권을 갖는 것으로 했다면 그것은 제339조에 위반되지 않습니다. '변제기 전'의 계약이 아니라 '후'의 계약이니까요.


지금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339조의 규정이 정의롭고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학자들 중에는 제339조를 삭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채권관계에서 채무자는 '당연히' 약자로 취급하는 논리가 타당한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며, 제339조가 없더라도 채권자가 폭리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나 제104조(민법 총칙 파트 참고)를 통해 규율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김성탁, 2018). 학계에서는 이런 논의도 하는구나, 하고 재미로 알아 두시면 되겠습니다.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한편, 우리의 '상법'에서는 상행위로 인해 생긴 채권을 담보하는 질권에 대해서는 민법 제339조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다시 말해 상법에서는 유질계약을 허용한다는 것), 아직 유리가 상법을 공부한 것은 아니므로, 예외가 있다는 점만 기억해 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상법

제59조(유질계약의 허용) 민법 제339조의 규정은 상행위로 인하여 생긴 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설정한 질권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오늘은 유질계약이라는 독특한 계약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용어 자체는 좀 생소하고 일본 번역체의 느낌이 많이 나서, '질권 전 가계약'이나 '질권 떠넘김 계약' 같은 순화된 용어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기도 합니다(강현철·곽관훈, 2004). 여러분도 어떤 용어가 좋을지, 한번 심심할 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질물 이외의 재산으로부터의 변제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강태성, <유담보계약>, 한국민사법학회, 민사법학 제29호, 2005, 288-289면.

강현철·곽관훈, <한·일 민법전 법령용어와 문장의 비교 및 순화정비에 관한 연구>, 한국법제연구원, 2004.11., 269-270면.

김성탁, <유질계약을 허용하는 상법 제59조의 해석방법론*- 대법원 2017. 7. 18. 선고, 2017다207499 판결 평석 및 관련 쟁점사항->, 법무부, 선진상사법률연구 통권 제83호, 2018.7., 4-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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