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과의 만남 Jul 03. 2023

민법 제391조, "이행보조자의 고의, 과실"

제391조(이행보조자의 고의, 과실) 채무자의 법정대리인이 채무자를 위하여 이행하거나 채무자가 타인을 사용하여 이행하는 경우에는 법정대리인 또는 피용자의 고의나 과실은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로 본다.


우리는 어제 채무불이행과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채무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채무자가 또 다른 사람(제3자)를 이용해서 채무를 이행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제3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채권자는 사실상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결과를 직면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제391조는 이에 관한 조문입니다.


제391조에서는 2가지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법정대리인입니다. 앞서 공부한 적 있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법률의 규정에 의해서 대리인이 된 사람이고, 대표적인 예로 미성년자의 친권자라든지 성년후견인 같은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피용자입니다('사용되어지는' 사람). 채무자가 시켜서, 원래는 채무자가 해야 할 '채무 이행 활동'을 대신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채무자가 부탁해서 그냥 공짜로 일을 도와주는 사람일 수도 있고, 채무자에게 고용된 종업원이나 부하 직원일 수도 있습니다. 돈을 받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채무자의 의사에 따라 채무이행의 행위를 하게 되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제391조를 정리하면, 채무자의 법정대리인이나 피용자가 채무이행 관련 행위를 할 때, 법정대리인이나 피용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것은 채무자 본인의 고의나 과실로 보겠다는 것입니다. 채무자 본인의 고의나 과실로 본다는 것은, 어제 공부한 제390조에 비추어 보았을 때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잘 와닿지 않으니까, 판례가 존재하는 실제 사례 2개를 예시로 살펴보겠습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문장이나 표현은 최대한 일상적인 용어와 단어로 바꾸어 엄밀성은 떨어질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례1. <예술의 전당 화재사건>


국내 공연기획사 A는 프랑스 매니지먼트 회사 B와 계약을 맺고, B 회사 소속의 유명한 아티스트가 2008년 1월부터 2월까지 공연을 해줄 것을 약정하였습니다. 아티스트가 공연을 해주면 A는 공연비를 내주고, A는 공연을 해서 관람료 등 수익을 올리면 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보면 A와 B가 소송전을 벌였나? 싶은데 그건 아닙니다. 문제는 공연 장소였습니다. A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위해서 '예술의전당'과 별도로 오페라극장 대관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A가 섭외한 아티스트의 공연(2008년 1~2월)이 있기 전에, 국립오페라단이 2007년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하다가 그만 화재를 내버렸습니다. 바로 오페라 '라보엠'의 공연 중이었는데요, 극중 주인공이 성냥을 켜서 벽난로에 던지는 장면을 연기하다가 그만 불이 나버린 것입니다. 큰 화재였고,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만 194억원의 재산피해가 나고 말았습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기사도 많이 나왔습니다(중앙일보, 2012)


자, 2007년 12월 오페라극장이 타버렸기 때문에 2008년 1월부터 시작될 공연은 당연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측에서는 공연기획사 A와 약정한 '오페라극장을 대관해줄 채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이에 예술의전당은 A에게 받았던 대관료를 돌려줬지만, A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하라고 하면서 예술의전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원고: 공연기획사 A, 피고: 예술의전당).


이 소송에서 무엇이 문제되었을까요? 바로 제391조였습니다. 원고(공연기획사 A)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피고(예술의전당)이 대관을 못 해줘서 나는 공연을 취소하게 되었고, 손해가 막심해. 그런데 불을 낸 것은 국립오페라단의 공연 도중이었던 건데, 국립오페라단은 피고의 이행보조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지. 따라서 제391조에 따라 이행보조자(국립오페라단)의 과실은 곧 채무자(예술의전당)의 과실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채무자인 예술의전당이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라."


화재도 크고 이해관계자들이 입은 손해도 큰 만큼 소송은 치열했습니다. 1심에서는 A가 졌고, 2심에서는 일부 승소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5년이 더 지난 2013년 8월, 마침내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결과는 예술의전당의 승리였습니다(피고 패소 부분 파기).


대법원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민법 제391조의 이행보조자로서 피용자라 함은 채무자의 의사 관여 아래 그 채무의 이행행위에 속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제391조의 이행보조자가 되려면, 채무자의 채무이행행위에 속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대법원 2013. 8. 23., 선고, 2011다2142, 판결).


그런데 국립오페라단의 경우 물론 예술의전당과 대관계약을 맺고 오페라극장을 사용했지만, 그건 자기네 공연을 하기 위해서 계약을 맺고 극장을 이용했던 것이지 '공연기획사 A와 예술의전당 간의 대관계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즉, 국립오페라단은 '공연기획사 A와 예술의전당 간의 대관계약'에서의 채무 이행행위와는 무관하므로, 이행보조자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러 사람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은 위 대법원 판결의 사건과는 별개로 화재를 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술의전당의 보험사였던 삼성화재와 오랜 구상금 소송을 벌여야 했으며, 결국 수리비의 일부인 수십억 원을 부담하게 되고 말았습니다(아시아경제, 2012). 공연기획사 A와 예술의전당도 오랜 소송을 벌여야 했고요. 여러 모로 슬픈 사건입니다.


사례2. <리조트 승마체험 사건>


위 사건은 조금 옛날 사건이었는데 이번 사건은 비교적 최근 것입니다. 2014년의 일입니다. C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C는 인터넷에서 D라는 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는 리조트 숙박권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단순한 리조트가 아니라 "숙박권 구매 시 무료 승마체험 가능!" 이렇게 광고가 되어 있었습니다. C는 리조트에서 숙박을 했고, 리조트 측에 "광고에서 봤던 승마 체험을 하고 싶다." 이렇게 전달했습니다.


리조트 이사는 고객 C의 요청을 받고, 당시 리조트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 잠시 머무르던 촬영팀 승마교관 E를 찾아가 부탁을 했습니다. 여기 리조트 고객 중에 승마 체험을 원하는 분이 있는데, 간단하게 지도 좀 해줄 수 있겠냐는 겁니다. 승마교관 E는 딱히 리조트 직원도 아니고 별로 상관없는 사람이었지만 호의로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C가 E와 함께 승마를 하던 도중 낙마를 하여 부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교관 E가 구보를 시키려고 했는데, 도움닫기를 하려고 할 때 C가 손잡이를 놓치고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C는 부상을 입어 입원했고, 리조트 법인 D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졌고, 대법원 판결은 2018년에 나왔습니다.


여기서는 승마교관 E가 법인 D의 이행보조자에 해당되는지가 관건이었는데, 대법원은 리조트가 "이 사건 계약에서 객실 제공과는 별도로 무료 승마체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하였으므로, 이용자의 수준에 맞게 말과 안전장비(헬멧, 신발)를 제공하고,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말조련사 등 안전요원을 배치하여 적절한 안전교육과 수준별 승마 지도를 제공할 계약상 의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피고의 이행보조자인 승마교관 E는 "원고를 상대로 미리 안전장비 착용 여부 등을 확인하고 안전에 관한 주의를 촉구하며 원고의 능력과 신체 상태를 적절하게 확인하여 승마를 지도할 책임이 있는데도 이를 게을리한 잘못"이 있으므로, 채무자인 영농조합법인 D도 과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8. 2. 13., 선고, 2017다275447, 판결).




오늘은 이행보조자와 그의 고의, 과실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위 사건들은 유명한 판례로, 한번 읽어 보시면 이행보조자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일은 이행지체 중의 손해배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중앙일보, "무대 위 성냥불 하나가…70억 배상금 '폭탄'", 2012.12.6., https://www.joongang.co.kr/article/10261480#home, 2022.8.18. 확인

아시아경제, "국립오페라단, 예술의전당 화재 수리비 48억 내야", 2012.2.9., https://cm.asiae.co.kr/article/2012020906451499799, 2022.8.18. 확인

매거진의 이전글 민법 제390조,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