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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Jul 10. 2023

민법 제392조, "이행지체 중의 손해배상"

제392조(이행지체 중의 손해배상) 채무자는 자기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그 이행지체 중에 생긴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그러나 채무자가 이행기에 이행하여도 손해를 면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우리는 그동안 채무불이행의 개념과 그 유형 중 하나로 이행지체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이행지체가 있으면, 이행지체에 따른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대략 이행지체의 효과로 강제이행, 지연배상, 전보배상, 책임가중, 계약해제권 등이 있다고 했었고요. 그리고 그 중 '강제이행'은 우리가 이미 제389조에서 공부하였던 바 있습니다. 오늘 공부하는 제392조는 이행지체의 효과 중 '책임가중'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392조를 읽어 보면, 채무자는 자기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이행지체 중에 생긴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고(무과실책임), 다만 채무자가 이행기에 이행을 했어도 손해를 면할 수 없었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규정합니다. "언제는 채무불이행에 채무자의 귀책사유가 있어야 된다더니, 여기서는 또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 무슨 말이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제392조의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채무불이행으로서 이행지체 자체는 성립요건으로 채무자의 귀책사유가 있어야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제392조는 이행지체가 이미 성립한 '이후' 이행지체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도중'에 발생하는 손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390조와 제392조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 것이지요. 적용 시점이 다릅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애매하니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례1과 사례2가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례1. 이행지체 중의 손해?

철수는 자기 생일을 맞이하여 홈 파티를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의 나부자가 갖고 있는 도자기가 너무 예뻐서, 자기 생일 파티 때 하루만 잠깐 빌려서 전시하기로 약정을 했습니다. 감사비 명목으로 돈도 조금 주고요. 그런데 철수는 생일 파티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나부자에게 도자기를 반납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수의 집에 벼락(!)이 떨어져서 나부자의 도자기가 박살 나고 말았습니다.


사례2. 면할 수 없는 손해?

영희는 개인적으로 쓸 공간이 필요해서 최임대가 소유한 건물의 방 하나를 빌리는 계약을 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월세도 내고요. 그런데 영희는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방을 빼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방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그만 영희가 점유하여 사용하던 방도 함께 불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김준호, 2017; 사례 참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요.




먼저 사례1의 경우, 나부자 입장에서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아야 하는데요, 먼저 생일 파티가 끝났는데도 철수가 도자기를 반환하지 않은 것은 철수의 고의 또는 과실에 해당합니다. 철수의 잘못인 것이죠. 그런데 철수네 집에 벼락이 떨어진 것은 철수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으로, 그것 자체는 철수의 과실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수가 만약 나부자에게 이행기에 채무를 이행했더라면, 즉 계약대로 생일 파티가 끝나자마자 도자기를 반환했더라면, 그 도자기는 멸실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도자기가 멸실된 원인을 파고 들어가 보면 애초에 '철수의 이행지체'가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에 우리 민법 제392조 본문은 채무자인 철수가 벼락이 떨어진 것 자체에는 과실이 없더라도 도자기가 박살난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제392조는 "이행을 지체한 채무자는 원칙적으로 그 지체로 인한 모든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규정인 것입니다(문주형, 2020).


사례2를 봅시다. 이 사례는 사례1과 조금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다릅니다. 이렇게 가정을 해봅시다. 영희가 만약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최임대에게 방을 깔끔하게 돌려줬다고 해보죠. 그런데 영희가 방을 돌려줬든 아니든 옆방의 화재는 그것과 상관없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애초에 영희가 낸 불도 아니었으니까요. 방을 영희가 점유하건, 최임대가 점유하건 그 방은 슬프지만 '불타 없어질 방'이었던 것입니다. 여러 교과서에서도 대체로 이처럼 임대와 화재를 예시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희와 최임대의 사례에서는 영희가 제392조 단서에 해당하게 되어, 방이 불타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게 됩니다. 최임대가 너무 억울하지 않냐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일단 영희가 이행지체를 함으로써 발생한 손해(제390조)는 분명히 있으므로 계약기간이 끝난 이후부터 방이 불탈 때까지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당연히 최임대에게 갚아야 하고요, 또 옆방에 불을 낸 제3자와 최임대 간의 법률관계는 따로 또 따져 봐야 합니다.

*만약 최임대와 영희 간의 소송이 발생한다면, 이행지체의 사실은 최임대가 입증하고, 이행기에 이행을 제대로 했어도 피할 수 없는 손해였다는 사실은 영희가 입증하여야 될 것입니다.


오늘은 책임가중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결국 제392조는 이행지체로 인한 책임 외에 이행지체 상태의 도중에 발생한 추가적인 손해에까지 책임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것을 '책임가중'이라는 표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은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1007면.

김용덕, 「주석민법 채권총칙1(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818면(문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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