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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박약으로 이별 당한 오르페우스

by 야담

신화 이야기




제우스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아흐레 밤을 함께하며 아홉 명의 뮤즈인 무사이 자매를 낳았다. 그 중 막내 칼리오페는 음악과 시의 여신으로 음악의 신 아폴론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는다. 그 아이가 바로 오르페우스다. 그는 리라를 타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고 헤라클레스의 음악 선생인 리노스와 쌍둥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르페우스는 님프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결혼식에는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가 참석했지만 축복의 횃불은 제대로 타오르지 않고 연기만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이 불길한 징조는 머지않아 현실이 된다. 목동 아리스타이오스가 에우리디케를 쫓다가 그녀가 도망치는 중 독사를 밟고 죽게 된 것이다.



깊은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데메테르 여신의 도움으로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그는 리라를 연주하며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에서 간청하고 감동한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한다. 단, 지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지상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뒤따라오는 아내가 정말 따라오고 있는지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순간 아직 완전히 올라오지 못한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으로 끌려가고 만다.



절망한 오르페우스는 이후 다른 여성들을 거부하며 살아간다. 결국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여인들, 즉 마이나스들에 의해 찢겨 죽임을 당하고 그의 머리는 헤브로스 강으로 던져진다. 뮤즈 자매들은 막내 여신의 아들인 그를 애도하며 장사를 지냈고 제우스는 그의 리라를 별자리에 새겨 거문고자리를 만들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오르페우스는 죽은 뒤 지하 세계에서 다시 에우리디케와 재회했다고 한다.




2. 신화와 문학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는 시간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비극적 구조는 문학 속에서도 반복된다. 금기를 부여받은 인물이 사랑 혹은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감정, 윤리, 존재의 한계를 다룬 문학적 장치로 자주 쓰인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그 대표적인 예다. 파우스트는 금지된 지식과 쾌락을 얻기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한다. 그는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그 대가로 육체적, 정신적 파멸을 겪는다. 지식을 향한 욕망이 결국 도덕과 신앙의 금기를 깨뜨리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는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등장한다. 지킬 박사는 스스로를 두 인격으로 쪼개어 내면의 악을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하이드에게 잠식당하고 파멸한다. 윤리와 과학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 결과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역시 금기와 파멸의 구조를 따른다. 이 소설에서는 신과 도덕을 부정한 급진 사상이 등장하며 그 결과로 무정부적 폭력과 정신적 파탄이 이어진다. 신을 제거하고 인간만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한편, 오드리 니페네거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시간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조건 속에서 사랑이 계속 어긋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주인공 헨리는 유전적 이상으로 인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 이동을 하며 사랑하는 클레어는 예측 불가능한 이별과 재회를 반복한다. 이 소설은 금기라는 명확한 명령보다는 시간 자체가 만든 조건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파괴되고 시험당하는지를 그린다. 이별은 피할 수 없고 만남은 계획할 수 없다. 결국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보다도 기다림, 인내, 체념이라는 복잡한 덕목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품들은 금기를 어긴 결과가 단순한 실패나 죽음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균열과 사회 전체의 도덕적 와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오르페우스 신화와 연결된다. 사랑, 지식, 자유라는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조건과 금기 위에 놓여 있으며 그것을 넘는 순간 반드시 어떤 대가가 따라온다.




3. 세계의 금기 신화




금기를 어기고 사랑을 잃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는 구조는 전 세계 신화에서 반복된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두려움이 문화권을 초월해 비슷한 서사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 첫 번째로 성경 속 롯의 아내가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타락한 도시였다. 신은 그곳을 파괴하기로 결심하고 롯과 그의 가족에게 도망치라고 명령한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 것. 그러나 롯의 아내는 마지막 순간 뒤를 돌아보며 그 자리에서 소금기둥이 되어버린다. 이 이야기는 사랑하던 과거 익숙한 삶에 대한 미련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구원을 받기 위해선 미련조차 버려야 한다는 냉정한 금기다.



두 번째로는 일본의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신화가 있다. 창세신 이자나기는 죽은 아내 이자나미를 되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다. 그는 아내를 데려가려 했지만 이자나미는 지금 내 모습을 절대 보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다리지 못한 이자나기는 몰래 불을 밝혀 그녀의 썩어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친다. 결국 이자나미는 분노하고 이 둘은 저승과 이승을 나눈 채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 사랑은 기다림을 요구했지만이자나기는 그 시간을 버텨내지 못했다. 이 이야기 역시 조건을 어긴 순간 사랑이 파국으로 향하는 구조다.



세 번째로 켈트의 오시안 신화가 있다. 전사의 아들 오시안은 요정 니암과 함께 티르 나 노그라는 불로불사의 낙원에서 지낸다. 시간이 멈춘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던 그는 어느 날 고향이 그리워졌다며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니암은 단 한 가지를 당부한다. 땅에 발을 디디지 말 것. 그러나 오시안은 말을 타고 돌아가던 중 말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 순간 시간이 그를 덮치고 그는 노인이 되어버린다. 그는 니암에게도 돌아갈 수 없고 그와 함께한 젊음 또한 되찾을 수 없게 된다. 시간과 기억이라는 금기를 어긴 대가였다.



네 번째로 한국의 선녀와 나무꾼 설화가 있다. 나무꾼은 목욕하러 내려온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숨긴다. 날개옷 없이는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던 선녀는 그와 결혼해 아이도 낳고 살지만 날개옷을 다시 찾게 되는 순간 하늘로 떠난다. 나무꾼은 뒤늦게 따라가지만 절대 옷을 내어주면 안 된다는 조건을 어기고 결국 그는 선녀를 잃고 만다. 이 이야기는 사랑을 가두고 소유하려 한 자의 몰락을 보여주며 조건의 힘보다 신뢰의 부재가 만든 비극에 가깝다.



그 외에 미로슬라프, 사야와 우카크 등 세계 각국에는 금기를 어겨 벌을 받는 신화가 반복되고 있다. 슬라브 설화의 미로슬라프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랑을 잃는다. 필리핀의 사야와 우카크 이야기에서도 남자는 신비로운 여인을 얻지만 절대로 물어보면 안 되는 조건을 어기며 사랑을 잃는다. 이들 모두는 사랑에 조건이 붙는 구조 그리고 그 조건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서사화한다.



이처럼 세계 각지의 신화는 금기의 존재 → 금기의 파기 → 사랑의 상실이라는 공통된 서사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조건과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를 강조한다. 금기를 넘는 행위는 언제나 인간적인 본능에서 비롯되지만 신화는 그 순간을 경계의 붕괴, 질서의 파괴로 그리며 경고를 남긴다.




4. 고찰




오르페우스 신화의 핵심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보다 금기와 조건이라는 장치의 힘에 있다. 왜 고개를 돌리면 안 되는가, 왜 사랑은 조건을 시험당하는가. 이를 통해 신화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사랑은 절대적인 감정이지만 그 감정은 반드시 인내, 믿음, 통제라는 조건과 충돌한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본 순간은 의심의 발현이자 인간적인 본능이 신의 규율을 이긴 순간이다. 그는 사랑했지만 그만큼 불완전했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조화로움과 혼돈 사이의 균열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디오니소스의 등장이 흥미롭다. 그는 오르페우스를 죽인 장본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음악을 좋아한 신이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이성의 적이다. 본능과 열광의 신이다. 결국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인들이 오르페우스를 찢어 죽이는 장면은 아폴론적 조화의 세계가 디오니소스적 열정에 의해 무너지는 상징처럼 읽힌다. 오르페우스는 신화 속에서 예술가의 대표로서 세상의 질서를 음악으로 유지하려 했으나 그 세계가 무너진 뒤에야 에우리디케와 다시 만난다. 삶에서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죽음을 통해야 비로소 온전히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인간의 감정과 도덕의 경계를 시험하는 방식으로도 작동한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 말을 걸지 말라는 금기, 절대 손을 놓지 말라는 경고. 이는 모두 사랑이 얼마나 조건과 긴장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금기란 신들이 인간에게 준 사랑의 시험이며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인간은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그 실패는 비극으로 끝나기보다,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기억과 망각을 잇는 새로운 문을 연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실패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사랑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구조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신화가 반복적으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이 끊임없이 같은 갈등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늘 시험당한다. 신화는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사랑은 왜 이렇게도 자주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된다. 이는 결국 존재론적 차원의 고통이다. 오르페우스는 단지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보려다 그 한계를 경험하는 상징적 존재가 된다.



신화의 구조는 현대 예술에서도 반복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연인은 서로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 작품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반전처럼 보인다. 사랑을 지키기 위한 조건이 망각이라면 금기는 오히려 기억일 수 있다. 결국 이들은 모든 것을 잊은 채 다시 만나고 관객은 사랑이 감정이 아닌 경험의 반복 속에서 구축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는 오르페우스의 실패 후 재회와 기묘하게 닮아 있다.



어쩌면 오래 함께 사는 부부가 서로를 견디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잊는 능력인 망각이라는 덕목 덕분이다. 모든 상처를 기억한다면 사랑은 너무 빨리 닳아버린다. 기억은 때로 관계를 굳게 하지만 망각은 관계를 계속 흐르게 한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끝까지 믿지 못했던 이유가 기억의 무게였다면 이터널 선샤인은 그 반대로 망각을 통해 사랑의 가능성을 되묻는다. 그리고 현실의 우리는 기억과 망각 사이 어딘가에서 사랑을 유지한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오르페우스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음악에 의탁한 인간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으로 저승의 문을 열었고 노래로 심장을 울렸지만 결국 인간적인 의심 하나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오르페우스의 실패는 예술의 실패가 아니라 예술가가 현실을 견딜 수 없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그를 찢어 죽인 마이나스들은 신화에서 미치광이지만 현실에서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파괴하는 세상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오르페우스 신화는 사랑의 책임이라는 주제도 던진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려 했다. 그는 죽음을 무릅썼고 절망 속에서도 그녀를 다시 보려 했다. 하지만 끝내 조건을 어긴 건 에우리디케가 아니라 오르페우스다. 사랑은 감정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때로는 침묵, 때로는 믿음, 때로는 끝까지 책임지는 의지가 필요하다. 뒤를 돌아본다는 행위는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을 감당하지 못한 의지의 무너짐일 수 있다.



이처럼 오르페우스는 수천 년 전 신화 속 인물이지만 여전히 오늘날의 인간을 닮았다. 감정과 논리 사이에서 방황하며 조건을 믿지 못하고 불안을 참지 못하는 존재. 그는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통해 실패한 사랑이 어떻게 영원한 신화가 되는지 실패했기에 더욱 오래 살아남는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본다.




5. 결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는 단지 눈물겨운 비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신화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형이며 금기를 매개로 사랑의 본질을 되묻는 구조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랑의 감정과 믿음의 조건, 감성과 이성, 질서와 혼돈 사이의 복잡한 균형을 엿볼 수 있다.



신화를 들여다보면 그 결말의 슬픔조차 운명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결국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조건을 초월하지 못하고 불완전하기에 실패한다. 그러나 그 실패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하고 다시 이야기하고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간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타던 그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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