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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랑의 실패는 예언하지 못하는 예언의 신

by 야담

신화 이야기




아폴론은 빛과 음악, 예언을 관장하는 신이지만 그의 사랑은 대부분 비극적으로 끝난다. 그의 연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으며 특히 남성 연인과의 관계는 강한 동성애적 코드를 내포한다. 그는 신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사랑에 실패하며 이러한 반복은 그가 지닌 본질적 결핍을 반영하는 구조로 분석할 수 있다. 그의 사랑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다프네에 대한 것이다. 다프네를 향한 아폴론의 감정은 에로스의 화살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녀는 이 감정을 거부하며 도망쳐 월계수로 변신했다.



그의 남성 연인 중 대표적인 인물은 히아킨토스다. 히아킨토스는 뛰어난 미모의 소년이었으며 아폴론은 그에게 깊은 애정을 품었다. 그러나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바람을 조작해 히아킨토스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아폴론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피로부터 히아신스 꽃을 피워 추모했다. 이 서사는 그리스 신화에서 대표적인 동성애적 비극으로 분류된다.



사포는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으로 레스보스 섬 출신이다. 그녀는 사랑과 감정을 주제로 한 시를 남겼으며 특히 여성 간의 관계를 묘사한 작품이 많다. 후대에는 그녀가 여성 동성애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졌고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출신지에서 비롯되었다. 다만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성적 정체성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사포의 시 역시 성적 관계를 전제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신화와 문학




아폴론의 사랑은 매번 실패로 귀결되지만 감정은 소멸되지 않는다. 잊히지 않는 감정은 고착을 강화하며 불멸의 존재인 신에게 상실은 중단되지 않는 상태로 지속된다. 이러한 정서 구조는 현대 문학에서도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안드레 아치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는 올리버를 떠나보낸 후에도 그의 이름을 되뇌며 감정을 고정시킨다. 이는 아폴론이 히아킨토스를 잃고 그의 피로 꽃을 피운 신화적 구조와 평행적으로 작동한다. 신은 사랑을 멈추지 못하고 인간은 기억을 제거하지 못한다. 감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 정지된 상태로 존재하며 부재는 오히려 감정의 밀도를 강화한다.



애니 프루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히아킨토스의 서사와 유사한 감정 구조를 내포한다. 에니스와 잭은 외부적 억압과 침묵의 구조 속에서 감정을 실현하지 못한 채 헤어진다. 이별은 감정을 종결하지 않고 오히려 불완전한 형태로 고정한다. 발화되지 못한 감정은 구조적 잔여물로 잔존하며 이는 신화적 반복 속에서 유사한 형상으로 재현된다.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서사는 고전적 기록이라기보다 현재에도 유효한 감정 구조로 간주할 수 있다. 감정의 서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동일한 작동 원리를 지속한다.




고찰




아폴론과 사포의 이야기는 동성애적 코드보다 플라토닉한 구조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구도는 아폴론이 에로스의 화살을 맞아 다프네를 향해 감정을 품으나 다프네가 이를 거부하고 월계수로 변하면서 시작된다.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이들은 일반적으로 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예외적인 사례도 존재한다. 아폴론은 신의 위치에 있음에도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프네에게 감정을 쏟는다. 그러나 다프네는 물리적으로 존재를 전환하며 그 감정을 단절시킨다.



인간의 사례도 존재한다. 나르키소스는 에로스의 화살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게 되며 이는 실현 불가능한 감정으로 이어져 죽음에 이른다. 디도는 아이네이아스를 향한 감정에 매몰되어 결국 자살하며 파이드라는 히폴리투스를 향한 감정이 거절당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들은 모두 에로스의 화살이 야기한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아르테미스는 에로스의 화살을 맞았음에도 감정을 거부하며 독신을 유지한다. 이는 화살이 곧 사랑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례로 감정의 발현은 수용의 문제가 아닌 통제와 선택의 영역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로스의 화살은 사랑을 발생시키는 기제라기보다 사랑의 충동을 유도하는 조건으로 보는 해석이 설득력을 가진다.



아폴론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신이다. 이는 그의 속성이 발산에 가까운 데 기인한다. 내면에 생긴 충동을 내부에서 정제하지 못하고 외부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반복적 상실의 구조로 이어진다. 자신이 사랑한 이들이 비극적인 결말에 도달하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충동을 멈추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폴론은 감정의 방향성보다 성격 구조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이다.



아폴론의 감정적 결핍은 그림자의 개념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그는 빛의 신이며 발산의 속성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발산은 동시에 내부에 어떤 공허를 남기며 이 공허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아폴론의 내면에서 생성된 사랑은 언제나 외부로 표출되며 이때마다 그는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다. 이 반복되는 상실의 패턴은 감정의 누적이 아니라 결핍의 축적으로 작동한다.



이 결핍은 일종의 그림자처럼 작용한다. 고대 신화에서 그림자 창조에 대한 명시적 서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아폴론의 행위와 그 주변에 남는 감정적 잔여물을 통해 그림자의 구조를 유추하는 것은 가능하다. 빛이 강해질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 사랑이 격렬해질수록 결핍도 짙어진다. 그 결핍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감정이 미치지 못한 곳에 생성된 구조적 흔적이다. 아폴론은 이 결핍을 감정으로 채우려 하지만 그 감정은 반복적으로 손실되며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든다. 결국 아폴론의 사랑은 그림자를 동반하며 그 그림자는 그의 존재와 분리될 수 없는 또 다른 형상으로 기능한다.



아폴론은 예언의 신이지만 그의 신탁은 확정적인 미래를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호한 흐름과 해석을 요하는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양자물리학에서 빛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으며 관찰자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진다. 측정이 일어나는 순간 결과가 확정되며 이전까지는 다양한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아폴론의 신탁 역시 단일한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흐름을 감지하지만 방향을 고정하지 못하며 결과보다는 가능성의 지형을 제시하는 존재다. 이 구조는 감정에서도 반복된다. 아폴론의 사랑은 대상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반복적 감정의 진동 안에 갇힌다. 그는 고정된 진실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중첩된 가능성들 사이를 진동하는 파동의 성격을 갖는다.



이와 같은 성질은 인간의 감정 구조와 닮아 있다. 인간 역시 감정의 발생과 소멸을 통제하지 못한 채 반복을 통해 감정을 유지한다. 감정은 늘 상실을 동반하며 이는 감정을 고정된 상태로 남기지 않고 구조 안에 끊임없이 순환시킨다. 따라서 아폴론은 실패한 신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불안정한 구조를 가장 정직하게 체현하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이 추가로 제기될 수 있다. 과연 아폴론은 사랑에 실패한 존재인가, 아니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위치한 존재인가. 그의 비극은 단순한 감정적 좌절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구조 자체가 지닌 불안정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랑은 기대와 욕망, 투사와 결핍이 교차하는 감정으로 순수하게 주어지지도, 온전히 수용되지도 않는다. 본질적으로 사랑은 불완전한 감정이며 그 불완전함을 통해서만 의미를 형성한다. 따라서 아폴론은 사랑에 실패한 신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살아낸 존재로 재해석될 수 있다.



그의 반복적인 감정 실패는 인간의 감정 구조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인간은 사랑하면서 동시에 상실을 예감하며 그 상실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아폴론은 신이라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기능하며 그의 감정은 그 자체로 인간적인 감정 양상에 가까워진다.




결론




아폴론은 결핍을 반복하며 감정을 생성하는 구조적 존재다. 감정은 완결되지 않음으로써 지속되고 그 반복을 통해 구조는 형성된다. 신화는 이 감정 구조를 설명하는 하나의 서사 장치이다. 아폴론은 말하지 않는다. 그는 반복을 통해 감정 구조를 현시한다. 완전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실패와 반복 속에서 감정은 작동한다. 이것이 신화가 현재까지 유효한 방식이며 아폴론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작동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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