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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게 죄는 아니잖아, 응 죄야

사랑은 죄, 감정은 잘못, 존재는 실수

by 야담

우리는 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질까? 고대 신화 속엔 인간과 신, 인간과 동물, 심지어 신과 동물 사이의 사랑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이런 금지된 사랑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문명, 자연과 이성 사이의 오랜 갈등이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다. 이 글은 히폴리토스, 비블리스, 스미르라 이야기를 중심으로 금기의 사랑이 만들어내는 신화적 비극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신화 이야기



히폴리토스



히폴리토스는 테세우스와 아마존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아마존족은 남성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사냥과 순결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여성 전사 집단이다. 히폴리토스는 이들의 피를 이어받은 듯, 여성이나 연애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삶에 몰두했다. 아르테미스를 지극히 숭상하며, 사랑과 쾌락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업신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히폴리토스의 아버지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과 파시파에 사이에서 태어난 딸, 즉 아리아드네의 동생인 파이드라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을 경멸하는 히폴리토스를 응징하기로 하고 파이드라에게 에로스를 보내 황금 화살을 쏘게 만든다. 그 화살은 파이드라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여 어느 날 갑자기 며느리인 그녀가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히폴리토스는 그녀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파이드라는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이고 결국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범하려 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자결한다. 유서를 본 테세우스는 아들의 말을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세 번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약속을 했던 포세이돈에게 복수를 청한다. 포세이돈은 괴물을 보내 히폴리토스의 전차를 전복시키고 그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한때 아테네의 이상적 군주로 추앙받던 테세우스는 이 일로 인해 상징적 몰락을 맞고 아테네의 통치 체계 역시 왕권에서 귀족 정치, 그리고 민주 정치로 이행하게 된다. 사랑을 거부한 자가 사랑의 여신에게 벌을 받고 진실을 알 수 있었던 자가 이를 외면한 끝에 자신마저 몰락하는 이 이야기는 감정과 질서의 균열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블리스



비블리스는 아폴론의 아들이자 크레타의 왕이었던 밀레토스와 하백의 딸 키아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남매 중 하나였다. 그녀의 오빠는 카우노스였다. 유년 시절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블리스는 오빠를 이성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녀는 스스로의 감정에 괴로워하며 억누르려 하지만 금기라는 자각은 그 감정을 더욱 키울 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카우노스에게 편지를 보내 고백한다. 하지만 카우노스는 충격에 휩싸여 그녀를 거절하고 그녀 곁을 떠난다. 비블리스는 죄의식과 외로움 속에서 그를 뒤쫓아 방황하게 된다. 도시를 떠돌고, 산을 넘고, 물길을 따라가며 카우노스를 찾아 헤매던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어느 숲에 다다른 그녀는 결국 쓰러지고 더는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마르지 않았고 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계속 흘러내렸다. 그렇게 그녀는 비블리스의 샘이 되었다. 여기서 샘은 감정의 끝, 말할 수 없는 슬픔의 물리적 형상이 된다. 금기를 넘은 감정은 끝내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못한 채 자연물로 흘러내리고 만다.



스미르나(미르라)



스미르나는 키프로스 왕 키니라스와 왕비 켄크레이스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로 미르라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며 아프로디테보다 낫다고 자랑했고 이로 인해 분노한 아프로디테는 복수를 결심한다. 다시금 에로스가 소환되고 그는 스미르나의 마음에 아버지를 향한 욕망을 심는다.



스미르나는 충격과 혼란 속에서도 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유모의 도움을 받아 신분을 숨긴 채 아버지와 동침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임신 사실이 드러났고 진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분노에 휩싸여 그녀를 죽이려 한다. 스미르나는 도망쳤고 아프로디테는 그녀를 몰약나무로 변신시켜 목숨을 구해준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나무껍질 속에서 그녀가 잉태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가 바로 아도니스다. 아프로디테는 그 아기를 상자에 넣어 지하세계의 여신 페르세포네에게 보낸다. 절대 열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페르세포네는 상자를 열고 아기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 이 아기를 둘러싼 두 여신의 다툼은 결국 아도니스의 죽음과 변신으로 이어진다. 그는 사슴 사냥 도중 멧돼지에게 찢겨 죽고 피로부터 아네모네가 자라난다.



스미르나는 사랑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저주받은 형태로 떠안은 자였다.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잃은 채 나무가 되었고 그녀의 감정은 자신과는 무관한 새로운 신화를 낳았다.




2. 신화와 문학




히폴리토스 신화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짓 고발과 순결의 왜곡이라는 주제로 지속적으로 변주되어왔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히폴리토스는 가장 유명한 각색이며 리들리 스콧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도 비슷한 서사가 반복된다. 황제 코모두스는 자신이 배제한 자를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며 히폴리토스처럼 무고한 자가 희생되는 비극의 구조를 따른다.



비블리스 이야기는 한나 아렌트의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구분을 떠올리게 한다. 비블리스의 감정은 철저히 사적인 영역에 속하며 이 감정이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기에 그녀는 존재 자체가 지워지듯 샘으로 사라진다. 문학적으로는 이처럼 말할 수 없는 욕망의 형상화라는 점에서 롤리타나 채식주의자 같은 작품들과의 접점이 생긴다.



스미르나의 이야기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서 반복되는 근친 상간의 저주와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무의식적 금기 파괴와 그로 인한 운명적 결과는 문학이 인간 조건을 되짚는 주요한 모티브임을 보여준다. 몰약나무로 변한 스미르나는 동시에 언어를 잃은 존재이자 비밀의 기록물이며 이것이 아도니스라는 또 다른 신화의 시작점이 되는 점도 흥미롭다.




3. 각국의 신화




그리스 신화에서 금기된 사랑은 신의 저주나 인간의 경솔함으로 발생하며 근친상간·거짓고발·욕망의 억제라는 주제로 자주 반복된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여신 이슈타르가 거절당하자 복수를 감행하고 이로 인해 친구 엔키두가 죽음을 맞는다. 일본 신화에서도 이자나미와 이자나기가 죽음 이후 재회하는 장면에서의 파괴적인 감정은 질서의 파괴와 연결된다.



기독교의 창세기 또한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를 다룬다. 롯과 그의 두 딸은 인간 사회가 붕괴된 상황에서 혈통 유지를 목적으로 금기를 어기며 이들은 이후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된다. 이처럼 금기는 단순한 윤리적 규범을 넘어서 인간 존재와 사회 질서의 근본을 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4. 고찰




금지된 사랑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구조이자 가장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감정의 형식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본래 자유롭고 자발적인 것이지만 사회는 이를 일정한 경계 안에 가두어야 한다고 여긴다. 이때 그 경계는 윤리, 혈통, 종교, 신분, 성별, 나이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현되며, 금지된 사랑은 이 경계들을 넘는 순간에 발생한다.



왜 인간은 금지를 넘으려 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감정은 규칙보다 먼저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그 사랑이 허용되는지 여부는 감정 이후에야 등장한다. 감정은 인간 내부에서 발생하지만 금기는 외부에서 부과되며, 이 둘 사이의 시간차는 필연적으로 충돌을 낳는다. 즉, 금지된 사랑은 감정과 규범이 부딪힐 때 발생하는 가장 전형적인 서사다.



그러나 모든 금기에는 이유가 있다. 혈연 간의 사랑은 유전학적으로 위험하고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권력 구조를 흔들며 나이차나 성적 정체성의 문제는 사회가 공유한 도덕적 감각과 충돌한다. 사회는 이러한 위험 요소를 방지하기 위해 감정에 선을 긋는다. 그리고 그 선을 넘는 자에게는 응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는 식의 신화적 윤리가 작동한다. 이때의 벌은 단지 개인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의례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처럼 위험하고, 파괴적이며, 결국엔 비극으로 귀결될 사랑 이야기에 끌리는가?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의 감정이 그 자체로 질서에 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유를 원하고 감정은 그 자유의 가장 진실한 표현이다. 신화에서 금지된 사랑은 단지 욕망의 분출이 아니라 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때로는 기존 질서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히폴리토스, 비블리스, 스미르나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모두 사랑의 방식이나 대상, 또는 그 표현이 사회 질서와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거된다. 이때의 제거는 죽음, 샘, 나무와 같은 상징적 전이로 구현되며 이는 인간 사회가 감정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할 때 어떤 식으로 그것을 말소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되면서도 단 한 번도 금지된 사랑이 성공하는 형태로 남겨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서사는 언제나 비극으로 끝나며 그러한 비극은 신화의 감정 규범을 강화하는 동시에 독자에게 감정의 실재성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말하자면 금지된 사랑은 신화에서 감정과 사회 질서가 타협 불가능한 대립임을 증명하는 서사 장치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금기란 사회가 감정을 무조건 배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다룰 준비가 되지 않은 사회의 방어적 질서이며, 때로는 그 질서 자체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유럽의 왕조들이 근친 간 결혼을 지속하면서 결국 몰락한 것도 신화에서처럼 질서를 위해 감정을 통제하려다 오히려 질서가 무너진 사례라 할 수 있다.



금지된 사랑은 인간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생긴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에 대한 이해와 해석 없이 그것을 금기로만 다루려 한 사회가 빚은 구조적 실패다. 따라서 신화는 단순히 사랑을 금하라는 교훈이 아니라 감정과 질서가 충돌할 때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5. 결론




히폴리토스, 비블리스, 스미르나 이 세 인물의 이야기는 단지 도덕적 교훈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금기와 충돌할 때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사회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금지된 사랑이란 결국 우리 안에 있는 말할 수 없는 욕망이자 말했을 때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구조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비브릴스의 샘의 경고문을 가지고도 신들의 영역인 근친 상간을 끊임없이 저지른 유럽의 왕조가 몰락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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