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좀 써보려고 마당에서 벼르고 있던 작은나무 한그루를 뽑았다. 어느 순간부터 삐뚜름하게 누워서 자라는 것이 영 눈에 거슬렸던 녀석이었다. 마침 남아공에서 건너왔다가 몇 년을 못버티고 폐업세일을 진행중인 하드웨어 가게에서 삽 한 자루를 막 사오기도 했겠다 생각난 참에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각이 진 삽날을 이용해 주변 뿌리가 번진 땅을 콱콱 찍어가며 깊이 박힌 뿌리들을 잘라낸다. 애꿎은 주변 화초들도 피하지못하고 모가지가 툭툭 찍혀나가버렸지만, 삽날을 박아대는 손길은 무심하게 계속 움직였다.
억세고도 커다란 잎들이 생각보다 쉽게 부러져나간다. 누운 줄기 아래둥치로 새 순이 달려 올라오던 것은 똑똑 끊어 내어 빗물받이 그릇에 담궈두었다. 저대로 두면 아마 며칠내로 자신들의 뿌리를 뻗어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어디에 심을지 생각해 봐야지.
상당히 충동적으로 시작한 터라 입고 나갔던 외출복 차림 그대로인 상태였다. 잎이 툭툭 꺾여 나가면서 풀물이 튀어 베이지색 블라우스 앞섶에도 푸른물이 들었다. 신고 있던 파란 아디다스 슬리퍼도 비에 젖어있던 흙에 푹푹 파묻혀 이미 온통 흙투성이다.
작다고 만만하게 생각했더니 나무 뽑기는 생각보다 버거웠다. 뿌리가 얽기설기 깊에 뻗어있어 여간 성가신게 아니었다. 마치 손으로 이를 뽑을 때처럼 기울어진 반대편으로 단숨에 꺾어본다. 한아름 기둥을 껴안고 낑낑대며 대여섯번 비틀어 힘을 주었더니 마침내 녀석이 뽑혀나왔다. 결국 나무는 쓰러졌고 잘려진 뿌리는 흙 저 아래 그대로 남겨졌다. 그래도, 또 싹이 올라오지는 못할 테니, 그저 죽은 흔적뿐일테지만.
뻐끔이 비어있는 구덩이 주변은 같이 잘려지고 부러져나간 잎과 줄기가 너저분하게 흩어져있었다. 아랑곳 없이 모두를 향해 내려친 내 삽질의 흔적이었다. 서늘한 날씨였는데도 끈적하게 땀이 맺혀있다. 어쨌든 뽑아내었으니,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생각해야지. 날이 어둑해지려는 참이다.
저녁을 먹고 길게 통화하는 중딩 아들에게 한마디 하다가, 무슨 말인지 나중에는 결국 잔소리가 되어 한참 길어졌다. 그냥 진짜 한마디만 할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어 곤란할 때쯤 갑자기 남편을 붙잡고 삶을 거슬러올라가는 한탄과 충고가 뒤섞인 말씀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참 똑 같은 모양새이지 않은가, 지금 이 장면이.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그럴듯한 수습은 포기하기로 하고 몸을 벌떡 일으켜 자러가라 아이를 올려보냈다. 산 만한 덩치에 뿌루퉁한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있자니, 아아… 아들과 또 한발자국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구나.